만날 수 없는데 보고 싶을 땐 어떡해야 할까요?
  동경이는 한 달 전에 이사를 왔어요. 마당에서 바비큐 파티도 할 수 있고 텐트를 치고 놀 수도 있고 바로 앞에 바다가 있다는 아빠 말에 넘어가서요. 그 말은 사실이었어요. 하지만 현실과는 조금 다른 사실이었어요.
  “제 이름은 동경이예요. 어디 가면 친구들 있어요?”
  “느 친구들은 학교에 가야 만나지. 여는 전부 할모니야. 이름이 동개라고?”
  “아뇨! 동경이요! 이, 동, 경!”
  마을회관에 가봤지만 동개라는 별명만 얻었어요. 학교는 지금 방학이에요. 친구가 있어야 파티를 할 거 아니에요. 아빠가 헌 집 고치는 일을 끝내면 마당에서 둘이 밥을 먹었어요. 텐트는 모기장이 되었고요. 바다는 어떻게요? 바다는 바다인데 들어갈 수 없는 바다였어요. 파도가 세고 모래보다 바위가 더 많은 거친 바다였거든요. 근처에만 가도 으르렁거리는 맹수 같은 바다였어요. 바다는 동경이를 환영해주지 않는 걸까요?
  “어디 가니?”
  집을 고치느라 바쁜 아빠가 나무 문짝을 들고 동경이에게 물었어요. 괜히 아빠와 말하기 싫어요. 동경이는 3학년 형들처럼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걸어요. 아직 대문이 달려 있지 않는 동경이네 집을 지나면 파란 지붕 집과 빨간 지붕 집이 나와요. 파란 지붕 집 할머니와 빨간 지붕 집 할머니는 베스트프렌드래요.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빨간 지붕 마당 빨랫줄에 널어둔 오징어 한 마리가 사라져서 파란 지붕 할머니가 의심받았거든요.
  “느 아니니? 오징어에 환장하잖니!”
  “나 아니비! 봤데? 먹었다 한들 새 널린 오징어 가지고 그러니!”
  사실 파란 지붕 할머니가 오징어를 연탄불에 구워 먹는 걸 봤어요. 하지만 동경이는 솔직하게 말할 수가 없었어요. 동경이도 다리 두 개랑 몸통 살 하나를 얻어먹었거든요. 불에 구운 반건조 오징어를 누가 못 본 척 지나갈 수 있겠어요. 그런 사람이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강인한 것’ 숙제에 적어 내겠어요. 이제 이전 학교 숙제는 내지 않아도 되지만요.
  “어? 뭐지?”
  동경이는 빈집 앞을 지나다 걸음을 멈추었어요. 마을에는 버려진 집들이 많아요. 어떤 집은 울타리도 허물어지고 문도 뜯어가서 뻥 뚫린 방만 덩그러니 있어요. 멀리서도 방 안이 보이죠. 동경이는 거기서 무언가를 발견했어요. 하얗고 동글동글한 게 꼭 눈뭉치 같았어요. 지금은 여름인데요. 동경이는 가까이 가보았어요. 무언가는 가슬가슬한 지푸라기에 싸여 있어요.
  깨지기 쉬운 건 무엇인가요? 작지만 그 속에 커다란 꿈을 품고 있는 것은요?
  “알이다!”
  동경이가 알을 발견했어요. 눈뭉치 같은 알이 거기 있었어요. 눈을 크게 뜨고 알 한 번 보고, 주변을 한 번 보고, 다시 눈 크게 뜨고 알 한 번 보고, 주위를 둘러봤어요. 빈집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고양이나 새, 닭도요. 오직 동경이와 알 뿐이었어요. 손에 땀이 났어요. 티셔츠에 손을 문지르고 알에 갖다 대봤어요. 조금 차요. 알은 찬 곳에 있으면 안 되는데요. 동경이가 입김을 불어요. 세게 분 탓인지 알이 흔들렸어요.
  “미안해!”
  동경이가 두 손으로 알을 감싸보았어요. 무릎을 꿇고 몸을 숙여서 귀를 갖다 댔어요. 심장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세상에, 느낌이 와요! 알은 살아 있어요! 동경이는 지푸라기로 알을 조심스럽게 감싸서 품에 들었어요. 빈집을 나서는 발걸음은 신났지만 뛰지는 않았어요. 알을 품고 있으니까요. 동경이는 이 알을 키워도 되냐고 아빠에게 물어보고 싶어졌어요.
  “근데 이거 무슨 알이지?”
  집으로 돌아가던 동경이는 멈춰 섰어요. 밝은 곳에서 알을 다시 보아요. 눈을 크게 뜨고, 깜빡이지도 않아요. 숨도 참았어요. 동경이가 찾은 알은 아주 하얘요. 눈처럼요. 계란보다는 크고 사과보다는 작아요. 한 손으로는 들 수 없을 거예요. 알은 끝으로 갈수록 뾰족한 모양이에요. 동경이는 알에 대해서 아는 것을 다 꺼내보았어요.
  “닭알, 오리알, 공룡알, 박혁거세……”
  동경이는 마을회관으로 걸음을 돌렸어요. 마을 할머니들이라면 이 알이 어떤 알인지 바로 알 거예요.
  “할머니!”
  동경이가 마을회관 앞에서 이렇게 외치자 할머니 다섯 분이 동시에 방충망으로 고개를 내밀었어요.
  “이거 무슨 알이에요?”
  동경이는 품에 안은 알을 최대한 할머니들 가까이 가져가 보여주었어요. 꽃무늬 옷을 입은 할머니가 방충망을 휙 열었어요. 그 옆으로 주름 옷, 분홍 옷, 보라색 옷, 줄무늬 옷을 입은 할머니가 동경이와 알을 번갈아가며 보았어요.
  “이 모냉이 뭐니?”
  “이리 비켜, 어디 보자 이거이……”
  “여 개나 고양이는 아니지.”
  “싱거운 소리를 하메! 개나 고양이가 알을 낳단간?”
  “네? 뭐라구요?”
  할머니들이 뭐라고 하는지 동경이는 모르겠어요. 할머니들끼리 싸우는 것 같아요. 바다 같아요. 우르르쾅쾅.
  “구렁이알은 아이것고.”
  구불구불 줄무늬 옷을 입은 할머니가 한마디를 던졌어요. 다른 건 못 알아듣겠는데 구렁이알이라는 소리만 귀에 쏙 박혀요.
  “구, 구렁이요?”
  동경이는 품에 안은 알이 갑자기 다르게 느껴졌어요. 이렇게 예쁜 알이, 전래동화에서 사람을 잡아먹던 구렁이로 태어날 거라니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동경이는 할머니들이 참외를 먹고 가라고 하는 것도 마다하고 집으로 터벅터벅 돌아갔어요. 바다와 마을 사이에 울타리가 쳐진 길로요. 바다가 하늘에 닿을 듯 파도를 높다랗게 부숴요. 자잘한 물방울들이 동경이 얼굴 위로 떨어져요.
  “너 진짜 구렁이로 태어날 거야?”
  잠시 생각해요. 과연 구렁이를 키울 수 있을지. 알 한 번 봤다가 바다 한 번 봤다가, 알에 물이 묻은 게 보여요. 축축하면 안 되는데요. 티셔츠 속에 알을 넣고 살살 문질러 닦았어요. 동경이는 바닷물이 바위에 부딪혔다 되돌아가는 걸 보아요. 알도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가야 할 것 같아요.
  “잘 지내야 해.”
  동경이는 빈집에 알을 돌려주고 나왔어요. 만난 지 한 시간밖에 되지 않았는데, 기분은 학교 친구들과 헤어지던 날 같았어요. 더 좋은 곳으로 이사 가는 거라고 떵떵거렸지만 혼자가 된걸요. 만약 알에서 태어나는 게 병아리나 새끼 오리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동경이는 병아리, 아니면 새끼 오리와 텐트 안에서 피리를 불고 노는 모습을 잠시 상상했어요.
  “이동경, 어디 갔다 왔어?”
  집에 돌아가니 아빠가 다른 아저씨들과 대문을 달고 있어요. 그 바람에 마당은 오리, 병아리, 알 디딜 틈도 없었어요.
  “몰라요.”
  아빠가 공구를 내려두고 동경이 옆으로 와요.
  “왜 이렇게 기분이 안 좋아?”
  “내 맘 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잖아.”
  다른 아저씨들이 일을 하다 말고 멈추어요. 아빠는 계속하라는 신호로 고개를 끄덕거려요. 일하는 아저씨들이 둘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살금살금 대문을 붙였어요. 동경이는 곁눈으로 대문이 무슨 색인지 확인해요. 동경이가 좋아하는 연보라색이에요.
  “친구도 없고, 바다도 이상하고, 알도 구렁이알이고.”
  동경이가 말했어요. 하지만 대답은 기대하지 않아요. 아빠는 늘 마음을 잘 몰라주거든요. 그런데 엄마는 달랐어요. 동경이 마음을 알아주었지요. 오리와 피리처럼요.
  엄마라면 지금 어떻게 말해주었을까요?
  “이동경, 세상에 이상한 건 없고 다른 것만 있을 뿐이야. 우리가 있는 바다는 조금 다른 바다인 거야.”
  아빠가 목소리 톤을 바꾸어 말했어요.
  “너희 엄마라면 이렇게 말했을 거다. 그치?”
  동경이가 놀라서 고개를 끄덕끄덕했어요.
  아빠가 물어요.
  “근데 구렁이알이라니 무슨 소리야?”
  동경이는 빈집에서 알을 발견했고, 보자마자 알을 키우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마을회관 할머니들이 구렁이의 알이라고 해서 돌려두고 온 것을 이야기했어요.
  “줄무늬 옷을 입은 할머니가 ‘구렁이알은 아이꼬꼬’라고 하셨다고?”
  아빠가 동경이 말을 따라했어요. 대문을 붙잡고 있는 아저씨 한 분이 고개를 흔들었어요.
  “구렁이알이 아니라는 뜻이야. 크기가 올맨했어?”
  “진짜요? 요만했어요! 엄청 하얗구요! 눈뭉치처럼요!”
  동경이는 대문 앞에 찰싹 붙어서 말했어요. 눈은 알처럼 커지고, 햇빛을 받는 물처럼 반짝거렸어요.
  “오리알보다 크면 거위알 아인가 몰라. 어디서 주섰어?”
  “빈집이요! 담벼락도 없고 대문도 없고 방만 남아 있는 집!”
  “아, 거 살던 것이 알만 두고 갔나보네.”
  아저씨의 말이 동경이를 날카롭게 스치고 가요. 종이에 손가락을 베일 때처럼요. 동경이는 물었어요.
  “왜요? 어디로 갔는데요?”
  “모르지 나두. 산불이 빈집에 붙어서 거 지내던 들짐승이고 산짐승이고 사라졌어.”
  “그럼 알은 돌봐줄 가족이 없었던 거예요?”
  “그래. 동개 네가 어미 할래?”
  아저씨가 불쑥 건넨 말에 동경이는 눈물이 날 것 같아요. 동경이가 아빠를 바라보았어요. 아빠는 마음을 말로는 잘 표현하지 못했지만, 얼굴로는 잘 표현했거든요. 아빠가 공구 하나를 집어 들더니 동경이를 보고 윙크를 했어요. 윙크는 엄마가 하지 말라는 것을 둘이서 할 때 보내는 신호였어요. 그러니까, 앞으로 아주 신나고 즐거운 일이 펼쳐질 거라고요. 심장이 발이 달린 것처럼 빠르게 뛰었어요. 어서 빈집으로 달려갈 준비를 해요.
  “근데요 아저씨! 저 이동경이에요!”
  새로 단 대문에서 끼익 소리가 나서 아저씨가 못 들은 거 같아요. 하지만 상관없어요. 더 중요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빈집은 두고 간 그대로 있어요. 동경이는 일 분 만에 거기까지 가서, 알을 다시 만났어요. 잠깐 떨어져 있었을 뿐인데 왠지 알이 야위어 보여요. 동경이는 지푸라기로 알을 감싸고 품에 안아 들었어요. 귀를 가져다 대보니 아직 심장이 뛰고 있는 것 같아요. 엄마가 된다는 건 어떤 걸까요?
  동경이는 잔소리도 많이 들었고 숙제도 밀리면 안 됐고 가지도 먹어야 했어요. 그런데 엄마가 해준 것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언제나 밝은 곳으로 동경이를 데려갔던 거예요. 축구장, 공원 분수대, 도서관 유리창 자리, 바람 숲, 엄마 등, 엄마를 묻은 자리. 동경이는 알을 품고 빈집을 나서서 바다로 향해요. 비밀 같은 태양이 동경이를 비추고 있어요. 눈이 부시게요.
  “햇볕 따뜻하지?”
  동경이는 더웠지만 알을 위해서 태양 아래 머물러요. 머리카락이 익는 것 같아요. 하지만 알이 아까보다 따뜻한걸요. 바다가 울타리를 넘어 넘실대요. 동경이에게 말 걸고 싶은 친구처럼, 큰 소리로 동개라고 부르는 할머니들처럼요.
  “바다가 이상한 것 같지? 그냥 조금 다른 바다야.”
  동경이가 알에게 말했어요. 바다를 보면서요.

내내 두근두근거리며 손꼽아 기다리는 순간은 어떤 순간일까요?
  “아빠! 동개가 부화하려고 해!”
  드디어 알이 태어나려는 순간이에요. 그동안 동경이는 알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지푸라기를 새로 깔아주고, 빛을 쬐고, 품에 안고 잤어요. 너무 꼭 껴안으면 깨질까봐 폭신한 수건에 싸서 안았어요. 그래도 마음 놓고 잘 수는 없었어요. 빨간 지붕 할머니가 가져다준 초란으로 착각한 아빠가 알을 잠시 냉장고에 넣어둔 일도 있었거든요. 동경이는 이 일로 단단하게 화가 났었지만 파란 지붕, 빨간 지붕 할머니들처럼 아빠를 용서하기로 했어요. 왜냐면 아빠가 동경이 마음에 쏙 드는 방을 선물했거든요! 문짝도 대문처럼 연보라색으로 색칠했어요. 햇볕이 내리쬐는 창 앞에는 상자로 만든 알의 보금자리도 있고요. 지금 거기서 알이 깨어나고 있어요!
  “껍질을 깨고 나오기 힘든가봐 어쩌지?”
  “도와주고 싶어?”
  아빠가 물어요. 동경이는 가만히 알을 바라보아요. 아무도 없는 곳에서도 살아남았고, 무시무시한 밤바다의 어둠에도 하얗게 빛났어요. 무엇보다 새로운 가족을 기다렸어요.
  “아니! 동개는 강인해! 세상에서 제일!”
  동경이가 두 손을 모으고 말했어요.
  “네가 구렁이로 태어나도 사랑할게.”
  동경이가 알에게 속삭였어요. 아주 작게요. 들었나요? 껍질을 부수고 나오는 소리를. 바다 위를 나는 새들이 소식을 물고 움직여요. 부리로 햇살을 콕콕 쪼아요. 뜨거운 빛이 노른자처럼 퍼져요. 세상이에요. 드디어, 동경이의 무엇이 알을 깨고 태어났어요.
  “와아!”
  동경이는 학교 친구들에게 연락했어요. 숙제를 다 했다고요. 세상에서 가장 강인한 게 무엇인지 알았대요.
  그게 뭘까요?

최현진

동화 『나비도감』과 『지금 이 순간』을 썼습니다. 청소년소설로는 『스파클』이 있습니다.

무심코 들인 생명이 사랑하는 존재가 되어가는 걸 보아요. 생활 속에서 작은 기적을 만나고, 지금 여기 없는 친구들을 떠올립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인했던 친구 세희를 위해.

2026/02/04
7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