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설이 끝나고

  사람들은 뒤늦게 한마디씩 보태고 있다 더 내가 더 잘할 거라고, 그러나 한없이 가벼운 잘함, 현수막이 펄럭이면 이 년 뒤에 나타나게 될 에스컬레이터가 선명해지고

  풍선 하나가 터트려진다

  주저앉은 아이가 생겼다는 뜻이다

  풍선의 주인은 몇 살이 되어야 터트려진 풍선이 가장 슬픈 것이었던 날을 힘껏 흔들게 될까, 좋았다고, 그냥 좋았다고

  그때쯤에는
  에스컬레이터를 다른 것으로 치우겠다는
  사람이 있을 것이므로

  페인트가 반쯤 벗겨진 생각 옆에 피어 있던 맨드라미,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주는 사진을 찍기 위해 연설을 끝낸 사내가 다가가고, 자동차 속에선 선글라스 낀 사람 하나 찌푸린 채, 우리가 질 것 같다는 내용의 통화를 하는, 아이가 그다지 아름다워 보이질 않는

  구경은 정말로 끝났는데, 사람들은 떠나지 않는다

  흐린 표정 아래에서
  부풀고 있는 풍선들

  내미는 사내와 받는 아이들 사이에는 아무 문제 없지, 이건 다 결국 투표할 수 있는 사람들의 문제고, 그들이 아이들을 더 많이 낳는 문제고

  선물이 필요한가요, 더 많은 선물,

  연단 위에 두번째로 올라간 사내가 쉰 목소리를 쏟아낸다 천천히 흔들리다가 이내 굉음과 함께 돌아가는, 에스컬레이터 위에선 아이를 안은 사내와 아이를 낳은 여자가 순서대로 웃고, 재개발 구역이 아니어도 좋아질 수 있다는 믿음, 죽은 새가 이따금 마당에서 발견될 때가 있는데, 슬프지만 내 마당이 깨끗해졌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의 마당 또한 그러해야 합니다, 슬프지만 좋은 일에 대한 수백 년에 걸친 계획이 끊어질 듯 말 듯 쏟아진 후에

  우리는 행복해질 것입니다,

  처음 듣는 부분인데
  이미 녹슬어 있다

  풍선이 터진 이유를 알아차리지 않아도 아이는 눈물을 멈추고, 얼른 집에 가자고 부모를 채근한다 연단 위에선 여전히 말이 쏟아진다 부모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는 좋은 대표가 될 것이다

  그가 뭘 세우지 않아도 아이는 만족할 것이다

한백양

2024년부터 시를 발표하고 있다. 고양이를 키우는데, 이름은 소금이고 겁나게 예쁘다. 뭐 안 이뻐도 나만 볼 수 있으니까, 이쁘다고 말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겁나게 예쁘다. 관찰되지 않은 것들은 대개 예쁜 법이다.

있는 그대로 본다는 말은 무섭다. 있는 그대로 보인다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나는 고작해야 나만큼의 야외를 가질 수 있고, 그것은 활자를 통해 과장되거나 왜곡된 후에도 여전히 나만큼의 야외이다. 있는 그대로 본다는 말은 무섭다. 있는 그대로 보일 거라는 믿음이 한때 내 주변을 떠돌았는데, 골목에 목줄 없는 개가 물고 가서 나무 아래에 묻어놓았다. 개는 곧 차에 치여 죽었으므로, 어떤 나무인지는 알 수 없다. 그것이 가장 무섭다.

2025/06/18
7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