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색 실리콘 얼음틀에
  다진 양파를 꾹꾹 담았다

  양파는 부서지고 편이 나뉘고
  여기와 저기가 되고

  나는 언 양파처럼 앉아 있었다
  네모난 자리에

  아무도 안 오는 자리에

  살아 있는 줄 몰랐어
  정말 그랬어
  그런 말을 하면서 사람들은 둥글게 멀어진다

  얼어 있는 양파를 끓는 찌개에 넣는다
  얼어 있던 사람은 풀려나지
  나풀나풀

  의자에 앉아
  바르게 앉아
  나풀대는 아이를 고정시키고
  가서 얼어 얼어 얼어

  한 자리에서 꼼짝 않고 하루를 보내고
  얼어버린 머리로
  한 칸에서 일어나 집으로 돌아와
  냉동밥을 해동하는 저녁

  분홍색 살 속에서 하나의 양파가 얼어간다
  냉동실에서 꺼내 탁탁 탁자에 쳐본다

  가끔 땅이 울리고
  나는 들썩인다

  한 자리에 꼼짝 않고 앉아
  혀와 머리가 충분히 얼길 기다리는데

  분홍색 살 속에서 찰랑이는 것이 있다
  뜀틀을 뛰면서
  땀을 흘리면서

  핫둘 핫둘
  틀에 끼워지지 않는 머리를
  계속 움직인다

  네모난 자리에서
  양파는
  자꾸만 동그래지는
  몸을 만진다

손미

2009년 《문학사상》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양파 공동체』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 『우리는 이어져 있다고 믿어』, 산문집 『나는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이상합니까』 『삼화맨션』이 있다. 2013년 제32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얼었다가 녹았다가 풀어졌다가 고정됐다가 위태롭다가, 한 번씩 자그마한 손을 잡고 걷는다.

2025/06/04
7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