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근 달이 뜬 밤. 나무둥치 위에 두더지가 뜰채를 들고 있고, 땅속 굴에는 땃쥐가 촛불을 밝힌 채 차를 마시고 있다. 주변에는 새총, 밧줄, 풍선 등이 흩어져 있다.

땃쥐는 밤이 되면 잠을 잘 수 없었어. 창밖이 캄캄해지면 괜히 누군가 숨어 있는 것 같았고,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기만 해도 가슴이 콩콩 뛰었거든.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당겨도 마음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어.
  어느 날 밤, 땃쥐가 두더지에게 말했어.
  “두더지야, 나는 밤이 무서워. 달이 조금만 더 가까이 있으면 좋겠어.”
  땃쥐 말에 두더지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어. 자작나무 위로 둥근 달이 환하게 떠 있었지. 두더지는 씩 웃으며 말했어.
  “걱정 마. 내가 저 달을 따다줄게.”
  “저렇게 멀리 있는데 어떻게?”
  “나만 믿어.”
  두더지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어. 땃쥐는 두더지가 달을 따오면 유리병에 담아 침대 밑에 둬야겠다고 생각했어. 달빛이 반짝인다면 잠이 들 수 있을 것 같았지.
  그날부터 두더지는 땃쥐를 위해 달을 따러 다니기 시작했어.
  두더지는 장갑과 모자를 챙겼어. 늪지대를 건널지도 모르니까 장화도 신었지.
  땃쥐에게 달을 따다줄 생각에 두더지의 발걸음이 빨라졌어.

  달 따러 가자
  달 따러 가자
  은쟁반 같은 달을 따다
  땃쥐 집 창가에 걸어둬야지!


두더지는 어깨에 뜰채를 메고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며 한참을 걸었어.
  얼마쯤 걸었을까.
  숲이 어스름해지더니 옅은 주황빛 달이 산 뒤에서 조금씩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거야. 두더지는 모자를 고쳐 쓰고 떠오르는 달을 올려다봤어.
  둥근 달이 어두웠던 숲을 환하게 비췄어.
  ‘달을 따가면 땃쥐는 이제 밤을 무서워하지 않을 거야.’
  두더지는 달님에게 두 손을 앞으로 가지런히 모으고 인사했어. 예전에 할머니가 가장 깨끗한 떡갈나무 잎사귀에 옹달샘 물을 담아 두 손 모아 기도하는 걸 여러 번 봤어.
  “달님, 저에게 내려와줄래요? 우리 땃쥐에게 달님을 데려가야 하거든요.”
  하지만 달은 아무 대답이 없었어.
  그저 조용히 하늘에서 숲 구석구석을 비추고 있을 뿐이었지.
  두더지는 달을 따는 게 어쩌면 조금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고 생각했어. 괜히 따다주겠다고 했나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한 게 아닌가 소심한 마음도 들었어.
  그렇지만 두더지는 땃쥐에게 꼭 달을 따다주고 싶었어. 땃쥐가 밤마다 작은 소리에도 놀라고 무서워서 잠들지 못하는 걸 봤거든. 잠 못 드는 밤이면 우울하게 창밖을 내다보거나 뭔가를 작은 노트에 긁적이는 것 같기도 하고, 털이 빠지고 눈이 퀭한 게 점점 아파 보였어.
  ‘달빛만 있다면 땃쥐가 잠을 잘 잘 수 있을 텐데……’

며칠 동안 달이 뜨지 않는 날이 계속되었어. 우기가 찾아온 거야. 땃쥐는 빗소리에 잠을 설쳤는지 온몸이 축축해져 있었어.
  “땃쥐야! 조금만 기다려. 내가 금방 달을 따다줄게.”
  “이렇게 계속 비가 내리면 달님도 나타나지 않아.”
  땃쥐가 시무룩하게 말했어.
  두더지는 땅속 깊은 곳에 달이 산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던 기억이 났어. 낮에는 땅속에 잠들어 있다가 밤이면 산 뒤편에서 솟아오른다고.
  “아하! 비가 내려 땅이 포슬포슬하게 풀어졌을 거야!”
  자는 달을 깨우는 건 좀 미안한 일이었지만 두더지는 달을 향해 땅을 파기 시작했어.
  슥슥, 슥슥슥. 슥슥 슥슥슥 슥슥슥슥스스 두더지는 땅속 깊이깊이 구덩이를 파내려갔어.
  땃쥐가 구덩이 속으로 손전등을 비춰줬어.
  “이제 곧 달을 찾을 거야”
  힘껏 땅을 파기 시작했어. 슥슥, 슥슥슥. 슥슥 슥슥슥 둘이 파니까 조금만 더 파면 달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았어.
  하지만 아무리 파도 달은 보이지 않았어.
  커다란 구덩이 속에 갇힌 두더지는 산꼭대기로 솟아오른 흐릿한 달무리를 보고 휴~ 한숨을 쉬었어. 땃쥐는 긴 밧줄을 내려 두더지를 밖으로 끌어올렸어.
  두더지는 새카매진 발바닥을 털자, 피곤이 몰려왔어.
  두더지에게 땅을 파는 건 쉬운 일이었지만, 달을 찾는 일은 쉬운 게 아니었어.
  구덩이 밖으로 나온 두더지는 하늘을 올려다보았어.
  ‘어? 잠자던 달이 깨어났네!’
  두더지는 발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둔덕에 힘없이 앉았어. 땃쥐는 옹달샘 물을 두더지에게 건넸어.
  “땃쥐야, 미안해.”
  땃쥐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어딘가 쓸쓸해 보였어. 며칠째 잠을 못 잤는지 털빛이 노랗게 변해 있었지. 땃쥐는 축 처진 어깨로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갔어.
  “땃쥐야, 걱정 마! 내일은 꼭 달을 따다줄게.”
  두더지는 한참 동안 밤하늘을 올려다보았어.
  그때, 두더지 머릿속에 번쩍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어.
  “그래! 커다란 새총을 만들면 되잖아!”
  다음 날, 두더지와 땃쥐는 숲속을 돌아다니며 질기고 탄탄한 으름덩굴을 한아름 모았어.
  그리고 서로 가까이 붙어 있는 두 그루의 버드나무 사이에 덩굴을 단단히 묶었지. 마치 아주 커다란 새총처럼 말이야.
  밤이 되자 두더지는 달빛 아래 버드나무 앞에 섰어.
  “버드나무야, 나를 저 달까지 날려줄 수 있겠니?”
  버드나무가 살랑살랑 가지를 흔들었어.
  “달까지?”
  “응! 달까지!”
  “좋아. 하지만 줄을 단단히 잡아야 해!”
  두더지는 덩굴 한가운데에 올라섰어.
  그리고 미나리아재비 줄기로 허리를 단단히 묶었지.
  “두더지야, 네가 다칠까봐 걱정돼.”
  땃쥐는 두더지 손을 꼭 쥐었어.
  “걱정 마, 나만 믿어!”
  이제 남은 건 뒤로 물러나는 일뿐이었어.
  두더지는 있는 힘껏 뒷걸음질쳤어. 덩굴은 점점 팽팽해졌고, 버드나무 가지들은 활처럼 휘어졌어. 가슴은 콩콩 뛰고 다리는 후들후들 떨렸지. 땃쥐는 두 손을 모으고 달님을 올려다봤어.

버드나무가 튕겨주는 힘을 박차고 하늘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올랐어, 슝! 하고 아주 큰 소리가 났어. 버드나무 잎사귀 여러 장이 먼지와 함께 흩날렸지.
  누군가 봤다면 거의 달 가까이 갔다고 생각했을 만큼. 쿵! 소리가 나기 전까지는.
  언덕 아래로 데굴데굴 굴러내려오는 두더지를 봤다면 아마 다들 쇠똥구리인가 생각했을 거야. 첫 비행은 두더지 이마에 커다란 혹을 남기고 실패했어.
  그 모습을 본 땃쥐는 얼음주머니로 두더지 이마를 살며시 눌렀어.
  “두더지야, 미안해! 나 때문에……”
  “아냐, 잠깐이었지만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어.”
  혹이 난 이마를 찡긋하며 말했어.
  땃쥐는 창문에 달 레이스 커튼을 뜨기 시작했어.
  그후로 두더지의 달 따기는 계속되었어. 한번은 뜰채를 등에 메고 날아올랐고 풍선을 매달고 날아오르기도 했어. 달에 거의 다 닿을 뻔한 날도 있었어.
  두더지는 발끝을 쭉 세우고 두 팔을 길게 뻗었어.
  “조금만 조금만.”
  하지만 손끝은 허공만 휘저을 뿐이었지. 그걸 바라보는 땃쥐의 마음은 편하지는 않았어. 땃쥐는 매번 자기를 위해 애쓰는 두더지를 위해 날마다 달을 보며 기도했어. 두더지가 무사히 돌아오게 해달라고 말이야. 노란 실로 한 코 한 코 커튼을 짜면서.

“이제 정말 달에게 닿을 것 같아!”
  그런 순간들이 하나둘 지나갔어. 달이 뜨는 날보다 뜨지 않는 날이 많아졌어. 굴참나무 꼭대기를 바라보며 할머니가 했던 것처럼 ‘달님, 달님’ 빌었지만
  바람이 스르르 지나가며 달을 감춰버렸어. 두더지는 한동안 나무 위에 앉아 달이 다시 나타나길 기다렸지만, 찬바람에 이가 덜덜 손이 꽁꽁 얼었어. 턱이 덜덜, 바들바들 다리가 떨렸어. 그러던 어느 날, 두더지는 화가 나기 시작했어.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달님이 어째서 내게는 오지 않는 거야!”
  두더지는 주머니에 넣어온 돌멩이를 꺼내 힘껏 달님에게 던져버렸어.
  그때였어! 창문이 깨지듯 달님의 모서리가 깨지면서 노란 달빛이 우수수수 쏟아지는 거야.
  두더지는 얼른 두 손으로 달빛을 담았어. 반짝이는 빛이 손바닥 위에 담뿍 내려앉았지.
  “달님! 고맙습니다.”
  두더지는 그 빛을 얼른 주머니에 쏙 집어넣고 떡갈나무 아래로 미끄러지듯 내려왔어.
  “이걸 가져가면 이제 땃쥐가 밤을 무서워하지 않겠지?”
  두더지는 땃쥐가 기뻐할 모습을 생각하니 발걸음도 가벼웠어. 여전히 다리가 덜덜 떨리고 위턱과 아래턱이 딱딱 부딪혔지만 말이야.

“땃쥐야, 땃쥐야! 내가 달빛을 주머니에 넣어왔어, 이것 봐!”
  하지만 집에 도착해 주머니를 열어보았을 때, 그 안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어.
  달빛은 어느새 주머니 사이로 스르르 빠져나가버린 거야.
  두더지는 잠시 멍하니 서 있었어.
  “분명 주머니에 달빛을 넣었는데……”
  땃쥐는 떨고 있는 두더지를 위해 따뜻한 차를 따라주었어.
  “괜찮아! 두더지야, 난 네가 다칠까봐 걱정했어.”
  둘은 나란히 모닥불 앞에 앉아 차를 후후 불어 마셨어.

그날은 오후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렸어. 두더지는 바짓단에 흙이 묻은 채 축 처진 어깨로 집으로 돌아왔어. 문 앞에서 한참을 서 있다가
  “땃쥐야, 미안해. 달을 따다주려고 했는데 오늘도 못 따왔어.”
  땃쥐는 가만히 두더지를 바라보았어.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저었어.
  “두더지야, 괜찮아. 나는 네가 돌아온 게 더 좋아.”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해!”
  두더지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어.
  땃쥐는 젖은 두더지 머리털을 마른 수건으로 조심조심 말려주었어.
  그때였어, 땃쥐네 집 앞에 작은 웅덩이가 하나 생겼어. 두더지와 땃쥐는 웅덩이 앞에 나란히 서서 자기 얼굴을 들여다보았지.
  두더지가 갑자기 소리쳤어.
  “땃쥐야! 이것 봐! 웅덩이 속에 둥근 달이 담겨 있어.”
  “달이 여기 있었네.”
  두더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어.
  “응. 아주 가까이.”
  땃쥐가 작게 말했어.
  두더지와 땃쥐는 웅덩이 속 달을 오래오래 바라봤어. 달이 조용히 웃으며 흔들리고 있었지.

두더지는 커다란 종이를 펼쳐놓고 둥근 달을 정성껏 그렸어. 동그랗게, 환하게, 아주 밝게. 두더지는 그 그림을 땃쥐에게 건넸어.
  “선물이야. 이제 달은 언제나 네 곁에 있을 거야.”
  땃쥐는 두 손으로 그림을 꼭 받아들었어.
  “예쁘다! 정말 마음에 들어.”
  땃쥐는 집 벽 한쪽에 두더지가 그려준 달 그림을 조심조심 붙였어. 달빛이 방 안까지 따라 들어온 것처럼 작은 집이 환하게 밝아졌지. 바람에 덜컹거리던 창문 틈에 땃쥐가 짠 노란 커튼을 쳤어. 바람이 불어와도 이제는 춥지 않았어. 땃쥐는 작은 찻주전자에 물을 끓였어. 찻잔에 따뜻한 물을 붓자 돌돌 말려 있던 메리골드 꽃이 천천히 피어났지. 마치 아주 작은 달 꽃 같았어. 둘은 담요를 덮고 앉아 따뜻한 차를 후후 불어 마셨어.

임수현

2016년 《창비어린이》에 동시, 2017년 《시인동네》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동시집 『외톨이 왕』 『오늘은 노란 웃음을 짜 주세요』 『코뿔소 모자 씌우기』『고슴도치 선크림 바르기』를 냈다. 문학동네 동시 문학상, 창비 좋은 어린이책 우수상, 권태응 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 『아는 낱말의 수만큼 밤이 되겠지』, 그림책 『천사가 느껴질 때』, 청소년시집 『악몽을 수집하는 아이』가 있다. 

이 동화는 「두더지와 땃쥐 이야기」라는 동시에서부터 출발했다. 시로 써놓고 한참을 들여다보는데 그 사이에서 이야기가 잠들어 있었다. 행과 행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이야기를 꺼내보았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들려는 시도가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한 곳으로 이끈다고 믿는다. 달을 따오는 행위가 사랑의 실험이 아니라 사랑의 다정함으로 나아가는 길이면 좋겠다. 거기 있음으로 모두가 안심할 수 있는 달처럼.
잠 못 드는 아이를 위해 이야기가 발명되었다면, 이야기를 듣다가 스르르 잠이 들면 좋겠다. 그리고 그 잠이 좋은 꿈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그런 이야기를 계속 써보고 싶다.

2026/10/07
8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