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과학, 대중문화로 소비되다

우리나라에서 대중문화로서의 과학에 대한 소비는 최근 십여 년간 눈에 띄게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먼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과학자가 늘어났고, ‘과학 커뮤니케이터’로서 유튜브나 대중을 대상으로 한 행사에서 활동하는 이들도 부쩍 많아졌다.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과학책의 출간 종수와 판매량 변화다. 예스24의 2019년 통계에 의하면, 2014-2018년 사이 자연과학 분야 판매량이 매년 꾸준히 증가해 총 50% 가까이 늘어났으며, 출간 종수 역시 31% 증가했다.1) 교보문고의 2020년 통계에서는 과학 분야와 SF소설 판매량이 2011-2020년 사이에 두 배 이상 늘어났는데, 과학책의 인기가 십여 년째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2)
  사실 최근의 인기는 오히려 그간 우리나라에서 누구나 ‘즐기는 것’으로서의 과학에 대한 관심이 매우 낮았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과학책의 인기를 다룬 한 기사는 눈에 띄는 변화로 두 가지를 짚는다. 유명 베스트셀러 번역 위주였던 과학 분야에서 국내 작가가 쓴 책의 종수와 판매량이 늘어났다는 점, 그리고 주 독자층이 청소년과 중년 남성에서 젊은 여성으로 변화했다는 점이다. 즉 과거에는 소수의, 다소 유별난 사람만이 과학에 관심을 가졌다면, 이제는 좀 더 폭넓은 층이 관심을 갖게 되었다. 같은 기사는 사람들이 과학책을 찾게 된 이유에 대해 한 출판사 대표의 견해를 전한다. 20세기 사회의 주류 담론이 철학이나 문학, 사회과학이었다면, 현대에는 “과학이 분석의 준거틀”이 되었다는 것이다.3) 이 해석에 완전히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더 많은 사람이 과학에서 즐거움과 감동을,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보인다.


2. 대중의 과학 이해

대중이 과학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개념은 언제부터 생겨났을까? 1825년 시작된 영국 왕립연구소(Royal Institution)의 크리스마스 강연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가장 오래된 과학 강연 시리즈로, 대중을 위한 과학 강연의 시초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대중의 과학 이해(public understanding of science)가 국가적으로 중요한 과제가 된 것은 상대적으로 최근의 일이다. 1985년 영국 왕립학회 특별위원회는 대중의 과학 이해 개념과 필요성, 정책적 제안 등을 담은 보고서를 발표하고, 일상생활 속에서 과학적 이해를 높임으로써 과학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고 다양한 사회적 의사 결정을 공고히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보고서는 영국의 대학, 연구기관, 미디어 등에서 대중의 과학 참여 프로그램을 개설하고 지원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유럽과 세계 주요 국가들의 과학 대중화 정책에도 영향을 끼쳤다.4)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대중의 과학 이해에 대해서 단순히 과학자 집단이 대중에게 지식을 쉽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되었다. 그런 취지에서 ‘이해’라는 단어 대신 ‘참여’(engagement)라는 단어를 더 적극적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EU의 정책적 강조에 힘입어 과학자들이 최신 연구의 흐름과 성과를 공유하고, 과학기술과 관련된 사회적 의사 결정이나 연구개발 과정에 대중을 참여시키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개인 혹은 집단이 ‘과학자본’(science capital)을 키워야 함을 강조하기도 한다. 과학기술을 이해할 수 있는 소양, 과학기술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 과학기술과 관련된 활동을 할 수 있는 자원과 환경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특히 더 많은 청소년이 과학기술 관련 직업을 선택하도록 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3. 호기심의 방부터 핸즈온 전시까지, 과학관의 역사

현대의 과학관은 특히 대중의 과학 이해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그러나 과학관의 주요 목적과 기능은 시대에 따라 변해왔다. 과학관의 초기 형태로 여겨지는 호기심의 방(cabinet of curiosities)은 부유한 귀족이나 왕립학회 같은 단체가 수집한 각종 과학기구와 도서, 그리고 식민지에서 수집한 자연 표본과 물건을 선보이고, 보관하고, 연구하는 장소였다. 이곳에 초대된 귀족과 과학자들은 과학적 발견과 주장의 증인이 되어주었다. 16세기에 등장하기 시작한 호기심의 방 컬렉션 중 규모가 대단히 커진 것들은 공공박물관이 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영국박물관(1753)이 왕실과 귀족, 그리고 자메이카 주지사의 주치의로 지낸 한스 슬론(1660-1753) 경의 수집품을 기반으로 설립된 기관이다.
  산업혁명 이후 기술의 발전과 국가의 성장이 뚜렷하게 연결되기 시작하면서, 대중이 기술의 가치를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1851년 개최된 런던 만국박람회와 이후 유럽과 북미 주요 도시에서 유행처럼 개최된 박람회(exposition)에서는 특히 거대한 생산기계나 전기 같은 새로운 기술들이 전시되었다. 관람객들은 박람회에서 새로운 기술이 주는 스펙터클을 경험하는 동시에, 기술이 가져다주는 힘을 목격했다. 독일 뮌헨의 ‘독일 박물관’(Deutsches Museum, 1903), 미국 시카고의 ‘그리핀 과학산업 박물관’(Griffin Museum of Science and Industry, 1933) 등은 이러한 산업전시의 흐름에 영향을 받아 설립된 과학관이다. 이들 과학관에서는 과학기기나 자연사 표본보다는 국가의 기술과 산업 발전상을 보여줄 수 있는 전시가 주를 이루며, 대중에게 기술 발전의 편익을 교육하려는 목적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우리에게 익숙한, 체험을 통한 과학교육이 과학관의 주요 목표가 된 것은 20세기 후반이다. 1969년 샌프란시스코에 개관한 ‘익스플로라토리움’(Exploratorium)은 관람객이 직접 작동하며 전시물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핸즈온(hands-on) 전시와 이를 통한 학생들의 과학교육을 특히 중요한 목표로 삼았다. 익스플로라토리움 건립을 이끈 물리학자 프랭크 오펜하이머(1912-1985)는 냉전 시기 매카시즘의 영향으로 대학을 떠나 과학 교사로 일했는데, 이때의 경험이 이 새로운 과학관의 접근 방식에 영향을 끼쳤다. 수집품이나 산업기술의 모형이 아니라, 돌아가는 바퀴를 이용해 원심력을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체험전시물처럼 과학기술의 기본 원리를 신체 감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개발된 전시품이 주를 이뤘다. 익스플로라토리움의 성공은 전 세계 과학관에 큰 영향을 끼쳤다.


4. 우리나라 과학관의 역사

1927년 우리나라에도 과학관이 생겼다. ‘은사기념과학관’은 일본 천황의 결혼 25주년을 기념하며 하사한 은사금으로 남산에 있었던 옛 조선총독부 건물을 개조하여 만들어졌다. 전시실의 1층에는 전기, 기계, 가전제품 등 일본의 주요 정부기관과 기업체로부터 기증받은 전시물들을 포함해 당시 일본이 자랑하던 최첨단 산업기술이 전시되어 있었다. 2층에는 기초과학에 대한 내용과 조선의 동식물이 전시되었다.5) 총독부와 신사, 사찰 등이 위치한 왜성대에 자리잡고 있었다는 사실이 보여주듯, 은사기념과학관은 재조선 일본인과 조선인을 대상으로 일본의 기술력을 선전하고, 식민권력을 강화하려는 의도가 명백하게 드러나는 기관이었다. 그러나 조선인들에게 앞서가는 산업기술을 접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간이기도 했다.
  광복 이후 과학관은 아주 긴 시간 동안 침체기를 겪었다. 1945년 광복과 함께 은사기념과학관은 ‘국립과학박물관’으로 이름을 바꾸어 재개관했으나, 한국전쟁 중 불에 타서 건물과 대부분의 소장품이 소실되었다. 1962년에 종로구 와룡동에 ‘국립과학관’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지만, 전시 규모나 내용이 매우 빈약해 언론에서도 자주 이를 비판할 정도였다. 1969년 그 소속이 문교부에서 새로 만들어진 과학기술처로 이관되면서, 국립과학관은 비로소 각종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을 실질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6)
  이 시기 국립과학관은 국민의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의 과학화를 목표로 한 ‘전 국민의 과학화 운동’을 수행하고, 전국적인 산업화의 성과를 선전하는 주요한 기관으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국립과학관은 학생과 일반인의 과학 연구를 선보이는 과학전람회와 발명품경진대회를 매년 개최하여, ‘과학화된 생활방식’의 사례들을 보여주었다. 예를 들어 1979년 시행된 첫 발명품경진대회에서는 연탄가스 중독을 줄일 수 있는 장치를 개발한 고등학생이 일등상을 수상했는데, 이러한 사례는 ‘과학화’된 국민의 모범적인 예로 비쳤다. 또 1979년 개관한 ‘산업기술관’은 전국에서 일어나고 있던 산업단지의 움직이는 축소 모형들을 주요 기술과 함께 전시하여 큰 인기를 얻었다. 과학관의 관람객들은 산업화의 간접적인 목격자로서 초대된 것이었다.
  우리나라 과학관은 1990년 대전 대덕연구단지로 이전하며 더 체계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했다. 새롭게 문을 연 ‘국립중앙과학관’은 이전보다 다섯 배가량 넓어진 전시 공간을 갖고 있었고, 대덕의 여러 연구기관과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이점이 있었다. 1992년에는 ‘과학관육성법’이 시행되어 과학관의 기능과 역할 등을 정의했다. 이 법에 의하면 과학관은 “과학기술자료를 수집·조사·연구하여 이를 보존·전시하며, 각종 과학기술교육프로그램을 개설하여 과학기술지식을 보급하는 시설”로 정의된다. 2000년대 이후 과천, 대구, 광주, 부산에 각각 새로운 과학관이 설립되면서 이제 과학관은 누구에게나 가까운 시설이 되었다.7)


5. 과학에 대한 ‘기억’을 쌓는 공간

지난 봄, 나는 대전 지역의 한 대학 학보사로부터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과학관에서 전시를 기획하는 일을 하는 나에게 학생 기자는 “인터넷 접속 한 번이면” 과학 원리에 대해 알 수 있는 시대에, 과학관에 방문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물어왔다. 그러니까 지금과 같이 영상이나 AI로 생생하게 과학기술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시대에 과학관이 어떤 존재 가치가 있는지 묻는 질문이었다. 지난 몇 년간 과학 커뮤니케이터와 크리에이터들이 창작해낸 창의적이고 흥미로운 콘텐츠들을 보며, 과학관의 경쟁력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져왔던 터라 이 질문은 더 날카롭게 다가왔다.
  과학관은 이제 과학의 ‘이해’보다는 과학에 대한 ‘기억’을 만드는 공간으로서 더 높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체험전시를 통해 손으로 만지고 귀로 듣는 것은 이 기억의 일부분일 뿐이다. 과학관으로 걸어오는 길의 공기와 풍경, 관람 중간에 먹은 달콤한 아이스크림의 맛까지 모두 과학에 대한 즐거운 기억을 만드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과학자본’ 이론에 따르면 과학에 대한 좋은 기억은 결과적으로 더 많은 사람이 과학기술과 관련된 직업을 선택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과학관의 역사는 시대에 따라 대중의 과학 이해의 목적이 변해왔다는 것을, 또 과학관의 역할도 변해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 사회에서 과학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이 높아진 지금, 우리는 무엇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 대중의 과학 이해를 추구할지 고민해야 할 지점에 서 있는 것이 아닐까. 교육과 이해의 공간에서 과학에 대한 기억을 만드는 공간으로 과학관을 새롭게 이해한다면, 과학이 일상생활에 스며든 즐거움으로 더 사랑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강연실

국립중앙과학관 학예연구사. 과학기술의 역사와 정책 연구자. 과학기술의 전문성과 대중의 관계에 관심을 갖고 있다. 국립중앙과학관 한국과학기술사관 상설전시와 해외특별전 ‘조선의 악기, 과학을 울리다’ 기획에 참여했다. 과학서평서간집 『평행세계의 그대에게』를 공동 집필했다.

매일의 업무에 신경을 쓰다 보면 정작 과학관이 어떤 사회적 역할을 해야 하는지 잊고 지낼 때가 많다. 이 글은 잠시 고개를 돌려 과학 대중화의 현재를 파악하고, 과학관의 변화하는 역할을 고민해보려는 시도이다. 어린이와 어른 모두에게 과학관이 새롭고 다양한 생각을 심어주는 곳으로 거듭나길 바라면서, 이 글을 썼다.

2026/10/07
81호

1
“자연과학, 최근 5년간 꾸준히 성장한 도서 분야로 꼽혀” 채널예스, 2019년 2월 27일. 바로가기
2
“교보문고, 올해 과학책 판매량 역대 최다…1위는 ‘코스모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경향신문, 2020년 7월 20일. 바로가기
3
“왜 과학책 읽는 사람들이 늘었을까요?” 한겨레, 2019년 10월 19일. 바로가기
“과학책 독서시장 넓어지고 깊어졌다” 한겨레, 2019년 10월 19일. 바로가기
4
The Royal Society, “Science for Society: How Society and Science Shape Each Other”, 2026. 바로가기
5
서울역사아카이브, ‘은사기념 과학관안내-경성 왜성대’. 서울역사박물관에는 은사기념과학관의 안내책자가 소장되어 있어 당시 어떤 내용이 전시되어 있었는지 추측해볼 수 있다. 바로가기
6
국립중앙과학관 편집, 『국민이 과학을 만나는 징검다리: 국립중앙과학관 대덕시대 30년: 1990-2020』, 국립중앙과학관, 2020.
7
우리나라는 일정한 자격 요건을 갖춘 시설을 과학관으로 등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2024년 기준 150여개 이상의 시설이 과학관으로 등록되어 있으며, 그중 14개가 국립, 94개가 공립 과학관으로, 국공립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한국과학관협회, ‘2025년(2024년 기준) 과학관 운영 실태조사 결과보고서’, 2025년 11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