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교환
밤에 흐르는 물
‘비평 교환’은 서로 다른 장르의 필자가 동일한 주제를 둘러싼 질문들을 각자 풀어나가면서 동시대 문화예술의 지형을 그려보는 지면입니다. 이번 호에서는 ‘다른 수역에서(in other waters)’를 주제로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거나 밀려나 있는 존재들과 경계를 넘는 소리 경험에 주목합니다.
소리를 채집하기 시작한 건 6년 전부터다. 전문 필드 레코디스트가 되고 싶은 것은 아니었고 개인적으로 조용히 해보고 싶은 공부가 있었다. 그 당시 갖고 있던 문제의식은 이런 것이었다. 인간 세계에서는 시각문화가 강력하고 역사도 그렇게 펼쳐져왔는데 만약 청각문화에 접근한다면 인류학자는 연구 방법에 어떤 변화를 주어야 할까? 그 고민 과정에 우선 녹음기가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즈음 구매한 소형 녹음기로 자연스럽게 소리를 채집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일상에서 듣는 모든 소리를 녹음했다. 반려견이 코 골며 자는 소리,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 비 오는 날 보일러실에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등 익숙했던 소리가 녹음기를 거치면서 생경해지는 순간을 자주 경험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숲이나 바다 같은 인간의 영역에서 멀어지는 곳으로 녹음을 확장해 가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인류학이나 문화연구는 인간의 생산력으로 만든 문화적 산물(음악, 미술 등)이나 문화 자체를 연구하지만, 나는 그 반대편으로 가서 문화의 다른 얼굴들을 보고 싶었다. 그것은 영화 〈인터스텔라〉의 책장 뒤편 같은 곳을 보고 싶은 것과 같아서 내가 가진 녹음 기술과 지식으로는 정보를 얻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류학이 연구자의 주관적 분석을 어느 정도 용인한다는 점에서 연구 과정에 조금 더 관대함을 베풀어 구성적 상상력을 허용한다면 보다 즐거운 실험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인류학자 클리포드 기어츠는 『문화의 해석』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어떤 단상 위에 놓여 있고 그 단상 아래에는 코끼리가, 코끼리 아래에는 거북이가 있고, 거북이 아래는 또 다른 무수한 거북이들의 연속이라고. ‘문화’라는 추상적인 개념 아래에 다양한 시차로 흐르는 무수한 의미의 그물망을 설명하고자 든 예시이다. 나는 이 그물망을 해석하는 여러 방법 중 녹음 행위가 가진 가능성을 보고 싶었다. 녹음된 소리는 하나의 텍스트로서 분석하는 사람의 상상력과 이를 토대로 한 주관적 가설을 가능하게 해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이어지는 글은 그 가능성을 탐색하는 과정으로, 녹음 행위와 소리를 둘러싼 허구의 이야기로 구성되었다.
주꾸미 낚싯배 위에서 생각에 잠겨 있던 M은 내가 녹음하고 있다는 것을 잊고 또 말을 해버렸다. 주말마다 바다낚시를 즐기는 M은 주꾸미가 걸려 올라올 때의 손맛을 좋아해 종종 나(S)를 데리고 바다로 나간다. 잡은 주꾸미로 선상에서 라면을 끓여 먹는 재미를 알게 된 지도 이제 4년이 되어간다. 그동안 잡은 주꾸미 수만큼 배 위에서 채집한 바닷소리도 꽤 많이 모였다.M: 있잖아. 우리 둘 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 지치고 더 이상 사람들 틈에서 살아가기 힘들어지면 한적한 시골에 가서 우렁이 키우며 사는 거 어때?
S: 에헤이, 녹음할 때 옆에서 소리 내면 안 된댔잖아.
M과 나는 연안부두 근방의 인천항 선착장에서 처음 만났다. 나는 주로 인천항 제1부두에서 제8부두 사이를 오가며 항구를 드나드는 뱃소리를 녹음하다가, 일반인 출입이 제한되는 부둣가보다 배를 더 가까이서 보고 싶어 4년 전부터는 좀 더 아래에 있는 여객터미널 방향으로 이동해 녹음을 이어갔다. 주말마다 선착장 근처를 돌며 소리를 채집하다 보면 낚시를 마치고 들어오는 배들의 소리가 저만치서부터 들려오곤 했다.
언젠가부터 나는 M이 탄 배의 소리를 알아듣기 시작했다. M이 탄 배에서는 모터가 돌면서 ‘드르륵’ 하는 특유의 긁는 소리가 났는데 이 소리가 녹음기와 헤드폰을 통해 증폭되면서 M이 가까워진다는 것을 귀가 먼저 알게 되었다. 그 소리가 들리고 몇 분이 지나면 얼굴이 시커멓게 탄 아저씨들 틈으로 하얗고 예쁜 얼굴의 M이 주꾸미를 넣은 지퍼백과 낚싯대를 들고 내리며 나와 눈이 마주치곤 했다.
정오가 지나자 햇빛이 머리 위로 강하게 내리쬔다. 이런 날은 넓은 챙모자에 쿨토시, 장갑, 자외선 차단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눈만 빼꼼히 내놓은 채 배 위에 오도카니 앉아 주꾸미를 기다린다. 에기3)를 살살 흔들며 바람에 바닷물이 일렁이는 소리를 듣다 보면 사주에 물이 많아 마음속 깊은 곳에 흐르는 내 진심을 알아주는 이가 세상에 아무도 없을 거라던 철학원 선생님의 말이 종종 생각난다.M: 바닷소리는 맨날 같은 소리 같은데 왜 같은 소리를 매번 녹음해?
S: 음…… 예전에 어떤 음악가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 음악은 노이즈라는 바다의 물방울 같은 거라고. 노이즈라는 바다에 음악이라는 물방울. 그 말이 나한테는 인간의 문화인 음악이 알고 보면 소리의 세계에서는 엄청 작은 것에 불과할 수 있다는 말로 들렸거든. 마치 지구 밖으로 카메라를 쭉 빼면 여러 행성이 나오고 거기서 카메라를 더 쭉 빼면 여러 은하계가 나오고 하는 그런 장면 같달까? 매번 같은 소리를 녹음하는 것 같지만 채집한 걸 스펙트로그램1)으로 펼쳐 보면 모양이 다 달라. 같은 소리가 아니라는 거지.
M: 잘은 모르겠지만…… 약간 이런 거랑 비슷한가? 저번에 우리 아침 일찍 좌구산2)에 갔을 때 말이야. 그때 새소리 엄청 들었잖아. 그러다가 산 위에서 어르신이 틀어놓은 노래가 점점 들려왔고. 그때 노랫소리가 뭐랄까…… 나비 같았어. 아침 산을 유유히 배회하는 나비. 그 노래 김수희의 〈애모〉였는데. 우리 부모 세대에선 유명한 노래잖아. 근대 무대가 숲이어서 그랬을까, 어르신이 노래를 크게 틀어서 볼륨이 작지도 않았는데 참 소박하게 느껴졌어.
S: 음, 그건 왠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불규칙한 숲 소리에 비하면 〈애모〉는 인간에게 너무 익숙한 코드와 리듬을 품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닌가 싶기도 해. 음악은 인류 문화의 산물이지 자연의 산물은 아니니까. 사람도 자기 구역에 있을 때 더 강해지잖아. 〈애모〉도 숲보다는 오히려 무대 위나 노래방에서 불릴 때 그 존재가 강해지지 않을까. 나는 오히려 그때 새들이 〈애모〉를 듣고 어떤 소리로 여겼을지 궁금해. 새로운 소리를 내는 숲 친구 정도로 생각했을지 아니면 자신과 다른 이질적인 존재로 여겼을지.
M: 아까 그 음악가 말대로라면 음악은 바다의 물방울 같은 거니까, 새들도 〈애모〉를 숲의 소리 중 하나로 여기지 않았을까? 만약 정말 그렇다면 새들은 영이 엄청 맑은 것 같아.
S: 응. 그 관점에서 보면 소리에 대한 관념적인 경계가 없는 거니까. 문화가 인간의 사고에도 영향을 많이 주잖아. 근데 숲의 세계는 적어도 ‘이것은 숲의 소리다, 아니다’라는 사고의 틀 없이 의미구조가 시작되는 거니까. 소리에 대한 인식이 맑다고 할 수 있지. 근데 그건 새들이 〈애모〉를 숲의 소리 중 하나로 여겼을 때 이야기이고, 반대로 이질적인 존재나 위협으로 여겼다면 얘기가 달라져. 그렇게 되면 〈애모〉는 숲에 어울리지 못하는 존재가 되겠지. 네 말처럼 산을 나비처럼 배회하는 낯선 타자가 되는 거야.
일렁이는 물 위의 빛과 일렁이는 물소리의 스펙트로그램은 형태는 다르지만 흐름에서는 상동성을 보인다. 소리가 부드러우면 스펙트로그램도 그 부드러운 흐름을 어느 정도 따라간다. 다만 이것은 이미지를 넓게 늘여서 봤을 때의 이야기이고, 기본 설정값으로 보면 부드러운 느낌은 없고 꼭 지표면에 떨어지는 거친 빗줄기처럼 직선 이미지로 가득하다. 표면적으로 보면 선의 집합체인데 확대해서 보면 면의 성질을 가진 흐름의 연속이다. 눈에 보이는 수면보다 보이지 않는 물밑에 끌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S: 물 표면을 봐봐. 일렁이는 모습이 규칙적인 것 같지만 사실 아주 불규칙한 운동이 만들어내는 조화야. 이 물 밑바닥에는 우리가 모르는 물의 흐름이 있어. 그걸 암류(暗流)라고 불러. 암류는 겉으로 드러나는 움직임이 아니어서 맨눈으로는 보기 힘들어. 해상에서 쓰는 단파 대역 레이더4)같은 장비를 사용해야 그 흐름을 읽을 수 있어. 인간의 눈과 귀에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지만 물의 흐름 없이는 인간이 생존하기 어려워. 그 흐름에 인간의 삶과 생활이 종이 한 장 차이로 닿아 있거든. 눈에 보이지 않는데 내 생활 가까이에 있다고 생각해 봐. 꼭 유령 같지 않아? 근데 참 재미있는 게 옛날 사람들은 암류를 정치적으로 불온한 움직임에 비유하기도 했어. 알고 보면 세상을 은근히 변화시키는 힘이었을 수도 있는데 말이야.
M: 단어의 어감이 좀 어두워서 그렇지 세상 돌아가는 걸 잘 담은 것 같은데? 지구상의 어느 나라든 그 사회가 만든 가치체계가 있잖아. 그걸 그물망이라 한다면 여기에 걸러지지 못하고 미끄러져 나가는 부류가 있어. 시간이 지나면 사회는 여러 층으로 두꺼워지면서 그 그물망을 더 복잡한 모양으로 만들어. 그리고 여기서도 미끄러져 나가는 부류가 또 생겨. 사회가 존속하는 한 그물의 형태와 내용이 시시각각 변형되면서 이 과정이 여러 면에서 반복돼. 그럼 미끄러진 부류는 어디로 갈까? 그들은 어딘가에 정착해서 자신의 삶을 살지만 정서적으로는 계속 흐르는 상태에 머물러 있어. 어딘가에 마음 두지 못하고 그렇게 흘러 다니다 보면 그 마음은 수면보다는 물밑을 향하게 돼.
선착장에 가만히 서 있으면 백령도나 덕적도 같은 섬을 오가는 배에 사람들이 타고 내리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그때마다 저 많은 사람이 향하는 곳이 어딘지를 생각한다. 망망대해에 도로 같은 길이 나 있는 것도 아닌데 배에 몸을 싣고 어딘가로 흘러가는 것이 아주 큰 용기처럼 느껴진다. 반대로 생각하면 어디로 흐를지 모르는 삶을, 어찌 되었든 저 배는 물 위에서 길을 찾아 내려야 할 곳에 데려다주는 것이다.
M과 내가 처음 항구에서 만났을 때 우리는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봤다. 이런 서해의 끝자락에서 그것도 아저씨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선착장에서 우리가 만날 확률은 얼마였을까. 언젠가 나는 M에게 나를 만나기 전 주말마다 홀로 바다에 나갔던 이유에 대해 물었다.
나는 M의 삶이 『레이 브래드버리』에 나오는 ‘안개 고동’의 괴물 이야기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깊은 바닷속 밑바닥에서 홀로 백만 년 동안 자신과 같은 동지를 기다려온 괴물의 덧없고 외로운 마음 이야기. 괴물은 백만 년 동안 어두운 바다 아래에서 익룡을 비롯한 시대의 동지들이 땅속으로 들어가 화석이 되는 것을 보며 살다 이제 인간의 시대에 왔다. 바다에서 충돌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울리는 등대의 안개 고동(Fog Horn) 소리를 세상에 마지막 남은 동지의 울음소리로 생각하고 수면으로 올라온 괴물 이야기를 나는 차마 M에게 얘기할 수 없었다.M: 배를 타고 주변을 둘러보면 정말 물만 보여. 지도 앱을 켜기 전까진 거기가 바다 어디쯤인지 알 수 없어. 거기서는 아무 생각이나 해도 괜찮고 또 이렇다 저렇다는 식으로 나를 놓고 재단하는 시선도 없어서 마음이 편해져. 예전에는 항구에 돌아와도 내 마음은 바다 밑에 두고 온다고 생각했어. 어차피 육지에 데려와도 사람들 사이에서 영원히 눈치 보며 겉돌 것 같아서. 근데 언젠가부터 선착장에 도착하면 자꾸 마음이 따라 내려오고 싶어 하는 걸 느껴.
바다에서 나는 신호 소리는 대부분 소리가 길게 늘어지면서 선형적이다. 뿌우우우우-, 휘이이이잉-. 그리고 선형적인 소리에 걸맞게 스펙트로그램도 그렇게 나타난다. 대부분의 신호 소리는 배의 위치를 알리려는 목적이나 안전상의 이유와 연결되어 있다. 인천항에서는 가끔 먼바다에서 온 얇고 긴 불꽃놀이 같은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정확한 소리의 정체는 모르겠지만 운이 좋아 그 소리를 녹음해 스펙트로그램으로 보면 비행기가 하늘을 난 뒤 남긴 자국 같은 선의 흐름을 볼 수 있다. 바다 세계에 인간이 모르는 자연의 문화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 흐름의 속성을 꿈꾸는 세상일 것이다. 인간 세계에 마음 두지 못하고 물밑을 흘러 다닌 M에게 어쩌면 바다는 자신의 기질과 같은 성질을 가진 곳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M은 이제 바다보다는 깊이가 얕은 물에서의 삶을 꿈꾸고 있다. 아마도 깊은 바닷속을 유영하기엔 그동안 너무 어둡고 외로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M은 선착장에서 나를 만난 사건을 확률로 보지 않고 정해진 일이 반드시 일어나야만 했던 어떤 확신으로 여겼다. 그 확신은 ‘영혼이 안다’라는 허술한 표현 외에 별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 감각이다. 그래서 당사자에겐 확실한데 다른 사람이 듣기엔 설득력이 다소 떨어지는 주관적인 확신이 된다.
인간 문화에서는 불투명한 앞날에 대해 약간의 확신을 얻고 싶은 욕망을 사주나 신점을 통해 풀어보곤 한다. 무속인들이 신께 공을 드리러 떠날 때 산과 바다 같은 자연으로 가는 걸 보면 신은 주로 자연의 보이지 않는 세계에 있는 것 같다. 이제 신내림 받은 지 얼마 안 된 신발 좋은 무속인이 모시는 잡신, 점 보러온 사람의 사정을 알아채고 무속인에게 후다닥 이르러 오는 동자신, 신발은 다소 떨어지지만 가장 큰 힘을 가진 바다의 용왕신. 알 듯 말 듯 추상적인 미래에 관해 신이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어떤 경로로, 또 어떤 언어로 들어오는 것일까? 잘 알 수 없지만 기억나는 건 언제나 그 언어가 선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작동하는 언어를 인간 세계에서는 유추만 할 뿐 웜홀 같은 그 세계로 들어가보지 않는 이상 이제 남은 건 영매의 말을 어디까지 믿느냐 하는 확신의 정도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혈관의 맥을 짚는 행위와 유사하다고 생각해왔다. 피부 아래에 흐르는 혈의 박동을 손끝으로 감지해 건강 상태를 유추하는 옛 방식의 의학. 신의 세계는 어쩌면 거주하는 세계만 다를 뿐 알고 보면 의학과 비슷한 주파수를 가진 유사 영역이 아닐지.
주꾸미 낚싯배는 중간에 간식으로 떡볶이를 준다. 불쑥 튀어나온 선장이 떡볶이를 일회용 그릇에 담고 이쑤시개를 두 개 꽂아 건넨다. 우리는 선장이 대화를 들었을까 봐 순간 철렁한다. 둘이 그릇을 손에 든 채 눈알만 데굴데굴 굴리며 선장이 선실로 돌아갈 때까지 기다린다.M: 바닷물이 논에 유입되면 염분 때문에 벼가 말라서 농사를 망칠 수 있대. 그래서 바다 근처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은 방조제에 수문을 만들어서 바닷물이 논에 들어오는 걸 막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수문 밖의 바다가 마음 편했어. 지금도 남들처럼 회사에 다니고, 회사 사람과 점심도 먹고, 회사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로 꽤 진지한 대화도 나누면서 많은 시간을 보내지만 사실 난 알아. 내 마음은 계속 바깥을 흐르고 있다는 걸. 나는 바다와 육지의 경계에서 너를 만난 일이 다이얼을 돌리다 어느 순간 주파수가 딱 맞은 라디오 소리처럼 일어날 일이 정말 일어난 것이라고 생각해. 너를 만나고 내가 마음을 육지로 내려보내기로 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냐면……
선장: 떡볶이 다 됐어요. 어서 먹어요.
S: 오, 네……! 감사합니다!
부끄러운 듯 입술에 힘을 주고 있던 M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S: 마음을 육지로 데리고 오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데?
우리를 환대하지 않을 사람이 많은 세상에 거리를 두는 것이 아니라 친절을 베풀고 싶다는 그녀의 말은 너무 유약하지만, 또 너무나 성찰적인 고백이어서 마음이 동하지 않을 수 없다.M: 논에 사는 우렁이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했어. 우렁이는 밤에 물 밖으로 올라와서 풀 줄기에 알을 낳아. 분홍색 포도송이 같은 알을 하나하나 정성 들여서 내보내. 그 모습이 꼭 풀에게 우리 잘 지내보자며 꽃을 선물하는 것처럼 보여. 나는 여전히 물속에 숨어 사는 사람이지만 가끔은 우렁이처럼 물 밖으로 나와서 그런 친절함을 베풀어 보고 싶어.
S: 그럼 내가 밤에 흐르는 물이 될게. 내가 흐르는 곳이 네가 있을 곳이야. 물 밑에서 지내다 밤이 되면 언제든 올라와 친절하게 말을 걸어줘.
M: 근데 누구에게 말을 걸어야 할지 모르겠어.
S: 우리가 모르는, 우리가 앞으로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이해할 수 없는 모든 것에게.
1. 겉으로 나타나지 않는 물의 흐름. 하천의 밑바닥에 흐르는 물의 흐름
2. 밤에 흐르는 물
3. 일이나 형편이 겉으로 드러나지 아니하고 은근히 변하여 나아가는 기운
이승린
인간적인 것 너머의 세계에 민족지학적 주의를 기울이는 청각적 시도에 관심이 있다.
2025/12/17
76호
- 1
- 소리의 신호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도구 중 하나. 시간의 흐름에 따른 소리 신호의 진폭(소리의 크기)을 보는 것이 파형이라면, 스펙트로그램(spectrogram)은 시간에 따른 소리 신호의 주파수(소리의 높낮이) 변형을 상세히 보여준다. 여기서 진폭은 파형이 아닌 밝기나 색상으로 표현된다. 소프트웨어마다 편차가 있지만 소리가 크거나 또렷할수록 진한 색상으로 표현된다. 또, 주파수가 높을수록(고음일수록) 스펙트로그램의 상단에 표현되고 주파수가 낮을수록(저음일수록) 하단에 표시된다. 본문에 사용된 스펙트로그램에서는 진한 분홍색 또는 진한 파란색으로 표시된 영역이 주파수의 변화를 보여준다.
- 2
- 충청북도 증평군에 있는 산. 명상구름다리와 천문대로 알려진 곳.
- 3
- 주꾸미를 유혹하는 가짜 미끼.
- 4
- HF(High Frequency) 레이더. 송신기를 중심으로 75km 범위 내 해류의 변화를 측정하는 기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