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흑백 한 장에 39원이다
  나는 너에게 줄 시집을 인쇄하고 있다
  101장에 3,939원
  나중에 13,000원에 팔릴 것이다
  인쇄되는 동안

  네가 쓴 시를 떠올린다
  네가 쓴 시는 어렵다

  프린트 가게에서 돌아가는 프린터의 소음이 멈춘다
  가게 컴퓨터에서 한글 문서를 이용할 수 있다
  시를 고칠 수 있다
  프린트 가게의 소음이 다시 시작된다

  너는 어디서 시를 쓰는가?
  네가 일하는 가게 안에서 쓰는가?
  가게 바깥에서 담배를 피우며 휴대폰에 쓰는가?
  쪽지에 써서 컴퓨터로 옮기는가?
  나처럼 정신이 다른 데 팔려버리는가?

  네가 일하는 가게에서 너를 만났지
  나는 다른 이와 함께여서 난처했어
  어려운 건 너의 시가 아니라
  너일지도

  프린트 가게에서 인터넷에 접속해 너의 블로그를 찾는다
  블로그 주소는 너의 인스타그램에 있다
  컴퓨터의 인스타그램에는 다른 이의 계정이 로그인되어 있다
  그가 나눈 흥미로운 DM을 읽어보다 너를 잊는다

  다른 걸 보고
  뽑아서 보고
  390원을 더 쓰고
  너와의 약속에 한 시간 늦고

  나에게 어려운 건 네가 아니라
  너보다 흥미로운 것들에
  흥미를 갖지 않는 것일지도

  (너는 뽑아간 이 시와 시집을 잃어버렸다)

강상헌

2018년 《현대시학》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유원지 왔니?』가 있다.

2026/08/19
8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