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공공성에 관한 이번 기획은 웹진 《비유》 77호에 실린 글 「보이지 않는 협상들」에서 출발했습니다. 연희문학창작촌 행사에서 나누었던 웹진 《비유》의 공공성에 대한 이야기가 다양한 갈래로 이어지는 것을 보며, 공공성이란 결코 닳고 닳은 소재가 아니라 여전히 유효하고, 더 탐구할 구석이 많은 주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호 ‘문학하는 사람들’에서는 공공성의 개념과 양상, 형식, 매체를 아우르며, 이 시대에 우리가 논의해야 할 공공성에 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1. 텍스트힙의 양면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텍스트’와 ‘힙하다’의 합성어인 ‘텍스트힙’은 “젊은 층이 일종의 유행처럼 책을 소비하는 방식”으로 풀이된다. 몇 년 전부터 책에서 마음에 드는 페이지나 밑줄 그은 부분 혹은 자신이 책 읽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서 SNS에 올리는 일명 ‘독서 인증샷’이 유행하더니 점차 책과 독서를 내세운 콘텐츠가 다양해졌다. 함께 모여 책을 읽거나 시를 낭송하고 필사(筆寫)를 즐기며 북페어에 참여하는 등 책과 관련한 활동을 SNS 게시물로 올리고 공유하는 현상을 두루 망라한 용어가 텍스트힙이다. 텍스트힙의 중심에는 문학 텍스트가 있는데, 문학이 이토록 역동적이고 감각적인 행위로 표현될 수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하지만 여기 동참하는 젊은 세대들이 독서보다는 책 읽는 이미지를 전시하거나 소비하는 데 더 관심을 둔 건 아닌지 의심스러운 마음도 없지 않다.
  어느 시인의 걱정처럼 비주류 장르인 시 안에서 ‘힙’이라는 기준, 즉 “예쁜 책”인가 “못생긴 책”인가를 기준으로 힙한 텍스트와 그렇지 않은 텍스트가 구분되고, “책을 읽는 나보단 책을 읽는 나를 전시하는”1) 듯한 현상은 텍스트힙의 진정성을 질문하게 한다. 또한 텍스트힙을 빌미로 “팔릴 만한 상품을 잘 정제해서 어떤 질문도 하지 않는 맹탕의 언어들을 엮어 내”2)는 출판 시장의 기이한 행태가 못마땅한 것도 사실이다. 프레드릭 제임슨에 따르면 사용가치에 대한 기억이 흐려지고 오로지 교환가치만 일반화되어버린 사회에서 시뮬라크럼(simulacrum)이 탄생한다.3) 원본 없는 이미지를 말하는 시뮬라크럼의 한 단면으로서 텍스트힙은 문화적 생산물의 교환가치만이 전면화된 시대에 아무도 읽지 않는 문학이 처한 위기를 증명하는 듯하다. 이제 ‘문학’은 주체의 내면을 채우는 정신적 자원이 아니라 상품으로서 독서 이미지를 만드는 소재에 불과하다는 걸 인정해야 할 때인가? 텍스트힙은 독서붐이 아니라 “책에 대한 태도가 바뀌는 거”4)라는 한 평론가의 지적은 책을 굿즈와 같은 상품으로 대하는 태도에 대한 비판이지만 그것은 텍스트힙의 본질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 현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이다.

텍스트힙에 대한 유감 반대편에는 책을 더 이상 고독한 사유의 도구가 아니라 정체성의 언어로 보아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젊은 세대들을 중심으로 확산되는 텍스트힙은 불안정한 시대의 감각을 조율하는 하나의 생존 방식이자,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감정적 기술이요, 새로운 공동체를 구성하려는 의지의 표명이라는 입장은5) 텍스트힙에 국한되지 않는 문학에 대한 발상의 전환을 시도한다. 텍스트힙이 실제 국민독서율 증진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텍스트힙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문학에 대한 태도의 변화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텍스트힙은 책/문학의 시뮬라크럼을 생산하고 이를 SNS에 퍼트림으로써 책/문학에 대한 태도를 바꿔놓았다. 문학성과 대중성이 환원되고 문학작품의 내재적 가치는 독자들의 취향에 맞게 변형·유통되었다. 텍스트힙에 휘말린 문학은 스펙터클화되는 동시에 누구나 사용할 수 있고 공유할 수 있는 대상이 되었다. 이것이 일종의 굿즈처럼 한때 빛나는 유행에 불과할지, 활기를 잃은 문학 생태계를 전환하는 동력일지 아직 단정할 수는 없지만 새로운 독자들의 진정성이 문학성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간과하면 안 될 것 같다. 의심 가득한 어조로 무엇을 읽었는지 캐묻기보다는 문학의 공공성 담론의 연장선에서 문학은 왜 공유되어야 하는가를 묻기로 한다. 텍스트힙과 결합된 문학이 회복 불가능한 공허에 빠지리라는 불안과 불만을 잠시 미뤄두고서 말이다.



2. 연결되고-반응하는 ‘우리’

마셜 매클루언은 인쇄 매체가 인간에게 독서능력을 선물했다고 말했다. 독서능력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거리두기와 관여하지 않는 특성인데 그로 인해 인간은 반응 없이 행동하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는 게 인쇄 매체에 대한 그의 통찰이다.6) 이에 비하면 텍스트힙의 주체들은 독서능력이 가져다준 선물을 거부한 채 연결과 반응을 자신들의 태도이자 정체성으로 삼는 뉴미디어 시대의 새로운 독자들이다. 이들은 세계를 잘라내듯 문장을 잘라내 의미를 파편화하는 동시에 텍스트를 매개로 다른 사람과의 연결을 열망한다. 문학성이라는 문학장의 권위에 기대기보다는 자신과 연결된 이들의 관심과 반응을 중시하며 디지털 공간과 현실을 넘나들며 타인과 연결되기를 기다린다. 굿즈를 사는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는 소비자인 동시에 문장과 이미지를 매개로 타인과 연결되고-반응하는 ‘우리’가 텍스트힙의 주체이다.
  이들 덕분에 문학은 문장 단위의 파편으로 공유되며 타인과의 접촉면을 만들더니 마침내 개인의 내면을 벗어나 공유 가능한 감각으로 상상되기 시작했다. 고독한 개인의 취미생활이었던 독서가 인증과 공유를 통해 함께 경험하는 놀이가 된 것이다. 텍스트힙을 만들어가는 주체들에게 문학은 그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 서로를 잇는 연결점으로서 삶을 공유하게 만드는 매개이다. 이 사실은 문학을 도구화할 우려와 함께 문학의 공공성이라는 가능성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두 가지 모두 가능하지만 나는 후자에 기대를 거는 쪽이다. 텍스트힙에는 약 십 년 전 문학장의 화두였던 문학의 공공성 담론이 요구한 바가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십 년 전에도 문학은 위기였다. 문학의 위기를 문예지, 출판사, 대학, 인문학에 걸친 문학판 공동의 위기로 인식하자는 제안은 문학이 “공공적 가치와 삶을 연결하는 통로”가 되어야 한다는 비평적 전망으로 이어졌다.7) 위기 담론의 확산 이후 문예지들이 가장 먼저 실제적인 변화를 시도했다. 메이저 출판사가 발행하던 문예지들은 혁신호를 발행했고,8) 《쓺》 《베개》 《더 멀리》 등 독립문예지들이 창간되었다.9) 기존 문예지가 디지털 매체로 전환되거나 새로운 웹진이 창간된 것도 이 무렵의 중요한 현상이다. 예를 들어 2017년 12월 창간된 서울문화재단 연희문학창작촌에서 발행하는 웹진 《비유》는 “읽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고, 쓰는 사람이 읽는 사람이 되는, 의자 바꾸기 놀이”10)를 지향함을 표명하면서 독자와 문학 전문가 집단의 경계를 허물고, 읽고 쓰는 누구나 평등한 위치에서 문학을 나누어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독자와 문학 전문가 집단의 경계를 허물고, 읽고 쓰는 누구나 평등한 위치에서 문학을 나누어야 한다는 지향을 밝혔다. 문학의 공공성이라는 문제의식이 문학 생산 주체들에 의해 구체적으로 실현되기 시작한 것이다.
  문학의 공공성을 화두로 삼은 당시 담론과 실천은 어떤 결론에 수렴되었다기보다 문학장이라는 중심을 해체하고 담론의 장을 분산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공공성의 조건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치가 서로 이질적이라는 것”이며, 공공의 장을 “복수의 가치·의견 ‘사이’에서 생성되는 공간”11)이라고 설명한 사이토 준이치의 말처럼 문예지 편집자들은 문학장 내부에서 작동하는 동일성, 동질성을 거부하며 이질적이고 다양한 문학이 들어설 수 있는 공간, 즉 차이를 조건으로 하는 담론의 공간을 만들어 나가고자 했다. 그 시도의 성공 여부나 실질적 효과와 별개로 나는 당시의 움직임이 문학성의 권위에 길든 한국 문학장을 잡종화하기 위한 실천이었다고 평가한다. 다만 아쉬운 것은 독자의 역할과 위치의 문제이다. 문학의 공공성이라고 말하지만 작가나 평론가, 문예지 편집위원을 중심으로 진행된 변화 속에서 독자는 어떤 역할을 맡았던 것일까? 잡지를 읽고 소감을 써서 투고하거나 각종 문학 행사의 참여단, 리뷰단, 서포터즈 등으로 호명되는 것만으로 독자의 역할은 충분한 것일까? 독자의 문제를 고려하면 십 년 전 공공성 담론은 위로부터의 개혁과 변화라는 한계를 명확히 안고 있었다. 독자들은 문예지가 만들어 놓은 틀 안으로 들어와야 하는 손님이었지 틀을 바꾸는 주인은 아니었다.
  그에 비해 텍스트힙을 이끄는 새로운 독자들은 문학 생산을 견인하는 영향력 있는 존재로 여겨진다. 편집자들은 텍스트힙 현상이 고요하고 침울한 출판 시장에 조금이나마 활기를 불어넣었다고 반색한다.12) SNS를 타고 퍼지는 문장들이 책 구매로 이어지는가 싶더니 1998년에 출간된 양귀자의 『모순』은 한국 문학계 최고의 역주행작이 되어 다시 베스트셀러 반열에 들었다. 그 효과가 미미하다고 해도 텍스트힙이 젊은 세대의 독서 붐을 일으켰다는 사실에는 반박의 여지가 없고, 이 사실은 출판사만이 아니라 작가들에게도 고무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13) 제멋대로 읽고 쓰고 전시하면서 사적인 독서 경험을 공통의 것으로 만드는 새로운 독자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문학을 호명하고 그것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며 타인과 소통하고 싶어한다. 서로에게 응답하는 능력을 지닌 그들은 자신이 읽은 텍스트의 한 부분을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개방함으로써 타인과 공유할 수 있는 공공재로 전환시키고, 그것이 누군가를 위한 위로와 격려와 즐거움이 되기를 바란다. 한 철학자의 말을 빌리면, 이들은 자아를 중시하면서도 타자와의 관계에서 자신의 감각과 삶의 방식을 변혁해가는 응답적이고 다차원적인 자기-타자들이다.14) 이들을 문학의 공공성을 실현하는 한 주체로 보자는 나의 주장은 갑작스럽거나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3. 문학 커먼즈 만들기

참여자들이 공동의 합의를 통해 함께 사용하고 관리하는 자원이 앞서 공공재라고 일컬었던 커먼즈(commons)이다. 그러므로 문학 커먼즈는 좁게는 누구나 자유롭게 접근하고 향유할 수 있는 문학 텍스트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넓게는 링크나 파일을 주고받을 수 있으며 자신의 SNS에 업로드할 수 있는 자유를 전제로 독자와 작가들이 문학적 담론과 창작물을 (재)생산하는 공공의 영역이라고 볼 수 있다. 지식 커먼즈가 연구물을 공공의 자원으로 전환했듯이 문학을 공공의 것으로 만들자는 주장 역시 허황된 이상만은 아니다. 사회학적, 인류학적, 생태학적 커먼즈 담론의 확산과 함께 “언어를 매개로 하며 지식, 규범, 정보, 정동 등 모두와 관계하는 문학”이 “오늘날 가장 중요한 커먼즈”15) 가운데 하나라는 인식은 웹진을 통해 실현되고 있다. 웹상에서 합법적으로 문학 텍스트를 읽고 공유하는 행위는 문학 독자에게는 익숙한 일이다.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문장웹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05년 창간)과 《비유》(서울문화재단, 2017년 창간) 외에도 작가들의 신작을 볼 수 있는 문학 웹진은 누구나 쉽게 검색할 수 있고 그 형태도 다양하다. 문학의 위기와 문학의 공공성 담론 이후 활발해진 매체 전환을 계기로 문학 텍스트에 대한 개방성과 접근성은 크게 확대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문학 커먼즈의 실현은 서로에게 연결되고-반응하는 새로운 독자 공동체, 배제 없는 공유를 가능하게 하는 매체 외에도 작가들의 참여를 필요로 한다. 지식 공유가 가능하려면 생산자의 셀프 아카이빙(self-archiving)이나 오픈 액세스(open-access)에 대한 동의 등 자신의 생산물을 공유하고자 하는 연구자들의 의지가 필수적인 것과 마찬가지이다.16) 물론 작가가 창작에 대한 대가 없이 작품을 공유해야 하는 건 아니다. 창작에 대한 대가는 충분히 보상받아야 하고, 저작권자의 권리도 보장받아야 한다. 창작물에 대한 저작권의 범위17) 안에서 작가 역시 커먼즈에 동참할 때 문학 커먼즈는 질적으로 향상될 수 있다. 연구자들이 스스로 자신의 연구 성과를 공유하고자 의지를 표명했듯이 작가 스스로 자신의 창작물을 소유물이 아닌 공공의 자원으로 간주할 때 문학은 아무리 써도 고갈되지 않는 문화 자원으로 사용될 수 있다. 물론 창작자들로 하여금 자신에게 주어진 저작권을 공공을 위한 자원으로 사용하게 하려면 예술의 공공성을 확대하는 문화 정책적 차원에서 폭넓은 지원이 전제되어야 한다. 아울러 웹진에 공개된 작품의 양적 문제나 접근의 편의성, 웹진의 지속성 문제 등도 공공기관의 지원을 통해 개선할 수 있는 문제이다. 이에 대해선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지원 요구는 문화가 시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하여 가장 중요한 영역 중의 하나임을 인식하고 시민의 문화 활동에 대한 정책적 지원과 시행을 추진하는 건 문화기본법의 기본이념에 의거한다.
  아직까지 문학 커먼즈에 대한 실감이 미미한 이유는, 문학성으로 가시화되는 상징자본18)을 축적한 메이저 문예지에 비해 무료 접근할 수 있는 웹진의 상징자본이 적기 때문이다. 독자들의 관심이 몰리는 문학상 수상작이나 수상 작가들과의 작품 계약 우선권이 메이저 출판사에 묶여 있는 현상도 상징자본의 영향력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이를 해소하는 방안은 상징자본의 축적이 아니라 상징자본을 해체하는 메커니즘의 전환에 있다. 문학성이라는 권위에 기대지 않고 작가와 독자들이 함께 향유하고 만들어가는 문학, 즉 문학 커머닝(commoning)에 대한 참여 의지는 문학의 상징자본을 해체하는 동력이 될 것이다.
  책 읽는 사람이 희귀해지고 책은 안 팔리고 전업 작가로 사는 일은 점점 더 불가능해지는 현실에서도 텍스트힙은 문학이 타인과 연결된 세계를 상상하게 하는 자원임을 시사한다. 이를 계기로 다시 제안하는 문학 커먼즈는, 문학의 권위나 가치를 드높이자는 얘기가 아니라 문학이라는 공유자원을 매개로 삶의 연결망을 만들자는 요청이다. 문학 텍스트의 공유는 가치의 공유 이전에 서로 선물과 답례를 실천하는 세계를 만드는 일이다.19) 누군가가 업로드한 문장을 읽고 공감한 ‘나’는 내가 읽은 문장을 업로드하는 방식으로 답례한다. 이 과정에서 ‘나’와 타인이 함께 존재하는 공공의 세계가 조금씩 열린다. 문학을 공유한다는 건, 공허에 빠지거나 고립되지 않는 삶의 세계에 동참하는 일이다. 사유와 감각의 경험을 선물하고 답례하면서 ‘나’는 내가 소유할 수 없는 ‘우리’의 세계에 접속하게 된다.

장은영

문학평론가. 201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평론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평론집 『슬픔의 연대와 비평의 몫』(푸른사상, 2020) 등을 펴냈다. 제39회 신동엽문학상평론 부문, 제3회 죽비 문화다 평론상을 수상했다. 소설이나 시를 읽는 일이 누군가의 삶을 엿보는 기분을 들게 한다면, 비평을 읽(고 쓰)는 일은 열띤 대화에 참여하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대화가 끝내고 나면 여전히 하지 못한 말들이 입속을 맴돈다.

과연 문학의 공공성이나 문학 커먼즈란 것이 성립될 수 있는 말일까를 계속 고민하는 중이다. 그것은 문학의 대중성과 일치하지 않으며 문학성과 대립하지 않는 새로운 담론의 장일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누군가에게 ‘이거 좀 읽어봐’라고 말한다면, 문학성이 뛰어나서라기보다 그 텍스트를 개인적·사회적·역사적 맥락에서 함께 얘기해보자고 청하는 셈인데, 할 수만 있다면 ‘이거 좀 읽어봐’를 남발하고 싶다. 도둑질이라는 죄책감 없이 웹상에 게시된 멋진 시와 소설을 링크 걸고 싶다.

2026/08/19
80호

1
박지일, 「텍스트힙이라는 '힙'」, 《파란》 2025년 가을호, 8-11쪽.
2
이범근, 「불투명한 삶과 투명한 힙」, 《파란》 2025년 가을호, 12-15쪽.
3
프레드릭 제임슨, 『포스트모더니즘, 혹은 후기자본주의 문화 논리』, 임경규 옮김, 문학과지성사, 2022, 66쪽.
4
이재용, 「평론가 G의 북튜브 몽상 분투기」, 《내일을 여는 작가》 2026년 봄호, 73쪽.
5
최서영, 「텍스트힙, 같이 읽는다는 감각」, 《파란》 2025년 가을호, 16-19쪽.
6
허버트 마셜 매클루언, W. 테런스 고든, 『미디어의 이해: 인간의 확장』, 김상호 옮김, 커뮤니케이션북스, 2011, 310쪽.
7
천정환, 「'문예지'의 공공성」, 《오늘의 문예비평》 2016년 봄호, 91-92쪽.
8
창작과비평에서 발행한 《문학3》이 대표적이다. 2017년 창간한 《문학3》은 2021년 통권 13호를 끝으로 종간되었다. “독자의 활동범위는 소비의 영역에만 머물”러 있었다는 문제의식이 잡지만으로 해소될 수 없기에 『문학3』이 표방한 것은 '문학지+문학웹+문학몹=문학3'이다. “문학의 공공성, 현장성, 실험성” 구현, “삶 속에서 발견되고 실천하는 문학” “종이잡지(문학지), 웹싸이트(문학웹), 현장활동(문학몹)”을 축으로 움직이기가 『문학3』이 내건 목표였다. 창비 홈페이지 바로가기
9
독립 문예지 《더 멀리》를 만들었던 시인 김현은 ‘출판 권력’이나 ‘선생 권력’ 같은 것에서 벗어나 “독자와 어떤 공동체를 이룩해내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내며 후원금과 구독료로 발행하는 독립 잡지들이 한국문학을 변화시키는 ‘이상한 원동력’이 되었으면 하는 전망을 밝힌 바 있다. 그가 말한 ‘이상한 원동력’이란 기존의 문학 시스템을 떠받치던 출판자본, 그리고 거기에 연루되어 성장한 문단 권력과는 변별되는 이질적인 힘, 즉 자본과 권력의 공통적 속성인 자기증식과는 질적으로 다른 분화하는 힘 혹은 무규정적 의지에 대한 표현일 것이다. 김현은 그 힘을 독자와 함께 만드는 ‘어떤’ 공동체에 대한 열망이라고도 설명했다. 김현, 「독립, 상업, 실험」, 《실천문학》 2015 여름호, 218-224쪽.
10
1기 편집위원, 「문학 웹진 《비유》를 '비유'로 소개하기」 웹진 《비유》 홈페이지 바로가기
11
사이토 준이치, 『민주적 공공성』, 윤대석, 류수연, 윤미란 옮김, 이음, 2009, 27-28쪽.
12
“… 텍스트힙이요?” 갑자기 찾아온 독서 붐에 대한 출판사 직원들의 솔직 심경 인터뷰”, 민음사TV, 2025년 1월 7일. 바로가기
13
오경진, 「'문학이 힙하다'는 이율배반: '텍스트힙' 열풍에 관한 단상」, A SQUARE, 2025년 4월 21일. 바로가기
14
야마와키 나오시, 『공공철학이란 무엇인가』, 성현창 옮김, 이학사, 2011, 206-208쪽.
15
황정아, 「문학성과 커먼즈」, 《창작과비평》 2018년 여름호, 17쪽.
16
2002년 부다페스트 'BOAI(Budapest Open Access Initiative)' 선언은 모든 학문 분야의 학술 논문을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다. 이 선언에 따르면 이용자들에게는 저작물의 원문 읽기, 다운로드, 복사, 배포, 출판, 검색, 링크, 크롤링(crawling)이 허용되어야 하고, 합법적인 목적이라면 이용자가 이러한 데이터를 기술적인 장벽 없이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BOAI' 선언 이후 한국 사회에서도 오픈 액세스 운동이 추진되었다. 2010년에 한국연구재단이 공적 자금을 지원받은 연구성과물 제공을 정책화하였고, 2018년에는 문헌정보학 분야 학회들이 '문헌정보학 분야 학술 단체의 오픈 액세스 출판 선언'을 발표했다. 그리고 2019년에는 문헌정보학 분야 학회를 포함한 학술 단체와 국문학 분야 학회들이 주축이 되어 지식공유연대를 결성했다. 지식공유연대의 선언문에서는 '학술 지식 생산의 공공성'과 '지식 생산과 활용의 공공적 가치 증진'이 강조되었다.
17
목적물의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지배하는 전면적이고 완전한 물권으로서 대상에 대한 포괄적이고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권리를 말하는 소유권과 달리 저작권은 저작재산권에 속하는 개개의 권리를 포괄하는 용어로 저작자에게 창작물에 대한 완전한 지배를 인정하지 않고 필요한 범위 내에서 제한적으로 부여된 권리이다. 저작권법 제1조의 조항에서 밝힌 것처럼 문화 및 관련 산업의 향상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서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과 함께 저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한 정책적인 권리라고 할 수 있다. 윤종수, 「지식 커먼즈와 저작권법, 그리고 CCL」, 박서현, 정경희 엮음, 『지식을 공유하라: 한국 오픈 액세스 운동』, 빨간소금, 2022, 65-66쪽.
18
고봉준은 문학권력 이면에는 경제 자본과 더불어 상징자본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상징자본은 문학장에서 영향력을 갖는 문학에 대한 특정한 관점이나 미적 이념으로 어떤 작품이 가치있는 작품이며 읽을 만한 작품인지를 결정하게 만든다. 고봉준, 「2000년 이후 문학장의 재편과 '문학권력'론: '문학권력'을 바라보는 하나의 시선」, 《진보평론》 69, 2016, 166쪽.
19
커먼즈(commons)라는 말은 선물과 답례(의무)를 동시에 뜻하는 노르만 단어 ‘munus’에서 왔다. 데이비드 볼리어, 『공유인으로 사고하라』, 배수현 옮김, 갈무리, 2015, 25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