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계절을 넘게 대기하고 있다가 들어온 학원이었지만, 적응이 쉽지 않았다. 선생님의 강의 속도는 너무 빨랐고, 문제를 이해하는 것도 어려웠으며, 문제를 이해시키기 위한 말을 이해하는 건 더더욱 어려웠다. 학원에 들어갈 때에 물음표를 한 더미 안고 들어갔다면, 학원을 나올 때는 물음표를 세 더미 끌고 나오는 꼴이었다. 이게 맞나, 싶은 자괴감이 들던 차였는데, 오늘은 좀 달랐다. 선생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에 조금도 멀미가 나지 않았고, 다 알아먹었지? 라는 습관적인 후렴구에도 네, 다 알아먹었어요. 라고 마음속 대답을 할 수 있게 수업 시간을 채웠다. 주변에 앉은 아이들과 겨우 행과 열을 맞춰 앉아 있구나, 나도 마침내 그렇게 되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비로소 안도감이 찾아온 하루였다고나 할까.
  왜 여기 와 있지? 학원 건물 앞에서 그 아이의 뒷모습을 보았을 때 처음 든 생각이었다. 자퇴생인데. 학교 밖 청소년이 왜 우리 학원 앞에 와 있는 거지? 하는 의문점이 자꾸 들었다. 학교를 안 다닌다고 해서 학원 앞에 오면 안 된다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러던 차에 걔가 내 이름을 부르며 손을 흔들었으니,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율! 왜 그렇게 놀라고 그래. 누가 보면 내가 못 올 데라도 온 줄 알겠다.”
  아니, 솔직히 올 데보다는 못 올 데에 더 가깝지 않나. 내가 듣기로 너는 대학도 안 갈 생각이라며. 라는 말은 하지도 못하고. 어, 어. 하고 얼버무렸다.
  “바다 보고 싶지 않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닌 게 아니라, 수업 진도를 따라가는 틈틈이 나는 바다를 떠올리며 바다에 가고 싶다는 그런 생각을 끊임없이 했기 때문이다.
  “바다 보러 가자.”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걔가 운전하는 SUV의 조수석에 올라탄 채였다.
  “율, 너 미세먼지 심한 날이면 바다 보러 가고 싶다고 그랬잖아. 그래서 내가 이렇게 마음을 썼지. 어때, 나 좀 감동 아니냐?”
  “어, 그렇긴 한데…… 나, 일단 엄마한테 전화를 해봐야 할 것 같은데.”
  솔직히 말하자면 좀 겁이 났다. 학원 수업이 끝난 시각이 저녁 7시. 집에 가서 해야 할 오답노트 정리와 숙제도 많았고, 여기서 바다까지는 아무리 짧게 잡아도 두 시간은 넘게 걸릴 텐데, 왕복이면 대체 나를 집에 몇 시에 데려다주겠다는 건지…… 약간 두려운 것도 사실이었다. 본인이야 학교를 그만두었으니까 집에 몇 시에 들어가든 상관이 없겠지만 나는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이 차는 대체 어디서 난 거고, 운전을 제대로 할 줄 아는 건 맞는 건지, 여간 불안한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런저런 속생각을 내보이며 내려달라고 하는 건 어쩐지 더 내키지가 않았다. 그러다가 얘가 내게 어떤 협박을 한 것도 아닌데 나는 왜 이렇게까지 겁을 먹고 있나, 얘가 학교를 다닐 때만 하더라도 나와는 나쁘지 않은, 아니 꽤 평온한 관계를 유지했던 것 같은데, 아니 그러다가 반이 달라지면서 자연스럽게 조금 소원해지고 또 멀어지긴 하였지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맞네. 너희 엄마 기다리시겠네.”
  “어, 그니까……”
  “그럼 전화해보면 되겠다, 지금.”
  “어? 어.”
  하필 핸드폰 배터리 잔량이 빨간색이었다. 나는 저전력 모드로 바꾼 후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심 엄마가, 바다라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평소처럼 역정을 거칠게 내주길 바라면서.
  “바다? 답답했나보네. 중간고사도 끝났겠다, 바람 쐬고 와.”
  전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말은 내 예상과 달랐다. 아니, 우리 엄마가 원래 이렇게 관대하고 호탕한 사람이었나. 절대 아닌데. 통화 음량이 커서, 아니 차 안이 너무 조용해서, 나와 엄마와의 통화 내용은 전부 들리게 되었고, 운전석에 눕듯이 앉아 있던 얘는 무척 잘되었다는 듯 소리가 나지 않는 박수갈채까지 쳐댔다. 왜 하필 중간고사가 끝이 나서, 나는 애꿎은 원망을 속으로 하며 왼쪽을 곁눈질하였다.
  그런데 면허는 있는 건가, 무면허인 거 아닌가, 그럼 나는 어떻게 되는 건가, 방조죄로 나도 잡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알아챈 것처럼,
  “나 면허 있으니까 걱정 마.”
  하며 웃었다.
  “그럼 이거 네 차야?”
  나도 용기 내어 물어봤다.
  “내가 무슨 돈이 있다고 이게 내 차겠냐. 우리 아빠 차지.”
  “아,”
  실은, 이뿐 아니라 얘에 대해서 궁금한 게 되게 많았다. 가령 왜 학교를 갑자기 그만두었는지, 그러면 지금은 매일매일 무얼 하며 지내는지, 아침에는 몇 시 정도에 일어나는 건지, 방학 때와 지금의 생활이랑 어떻게 다른지, 대학에 가지 않는 대신 어떻게 살 계획인지, 뭔가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 따로 있는 건지, 그 일은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괜찮은 건지, 혹시 불안하거나 초조하거나 그런 느낌은 없는지, 뒤늦게 후회가 들면 어떻게 할 작정인지, 등등이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싶지 않기도 했다. 나는 얘와 가까워지고 싶지 않았다.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입을 열지 않았다. 긴장감으로 잔뜩 경직된 어깨와 허리가 서서히 아파오는 것을 느끼며 어떠한 오기를 담아 전방만 주시했다. 그러다보니 앞쪽의 시야가 굉장히 넓게 트인 느낌이 들었는데 그게 이 차만의 어떤 특징인지, 아니면 그저 순전히 기분 탓인 건지는 나도 잘 알 수 없었다.
  얘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적막 안에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 고요가 불편하지 않았다.
  “아, 미치겠네.”
  갑작스런 말에 나는 뜨끔 놀랐다.
  “왜?”
  “……”
  “왜 그래? 왜 그러는데?”
  답이 없는 반응에 애가 탄 나는 다급하게 다그치듯 반복적으로 물었고 태평한 답을 들었다.
  “으음, 졸려.”
  때와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어딘가 속이 편해 보이는 그 느긋함이 좀 황당했다.
  “어? 그럼 어떻게 해?”
  나는 주변을 황급히 둘러봤다. 차선은 제대로 지키면서 가고 있는지, 지금의 계기판 속도는 적당한지 따위를 확인하느라 마음이 바빴다. 그러고보니 얘는 내비게이션도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이게 무슨 배짱인가, 나는 조마조마하기만 했다.
  “율, 너 혹시 운전할 줄 아냐?”
  남의 속도 모르고 느물느물 웃으며 물어왔다.
  “아니.”
  기어에 붙은 R이라는 알파벳은 어떤 단어의 약자인 걸까, 라고 생각하며 나는 나도 모르게 딱 잘라 답했다.
  “그럴 줄 알았어. 나도 그냥 한 말이야.”
  그냥 한 말이라고 했지만 여전히 불안했다. 그냥 했다는 말이 운전을 할 줄 아냐는 말인지, 졸리다는 말인지, 헷갈렸지만 따지지 않고 괜히 아무 말이나 던져봤다.
  “그런데 이거 무슨 냄새야? 향 좋다. 방향제인가?”
  “아, 그거 모과 냄새.”
  “모과?”
  “응. 뒤에 있어. 두 개. 아까부터 굴러다녔는데 몰랐어?”
  “몰랐어.”
  뒤를 돌아보니 정말로 뒷좌석 위쪽 너머로 동그랗게 큼직한 모과가 두 개 있었다. 차선이 바뀔 때면 데굴데굴 소리를 내며 따로 또 같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진짜 모과야?”
  “응. 진짜 모과. 우리 아빠가 모과 냄새 좋아하거든. 방향제는 인위적인 냄새라서 싫대. 정이 안 간다나 뭐라나.”
  아주 짧은 정보인데도 어쩐지 남의 아빠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고 또 친밀해진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이상해졌다.
  “아무튼 너도 운전할 줄 알아서 나랑 교대해주면 좋을 텐데. 그래서 번갈아 운전하면서 바다에 가면 좋을 텐데, 그치.”
  모과 냄새를 의식하고 있던 잠깐의 적막이 지난 후 얘가 또 이런 이야기를 꺼내며 하품을 했다. 나는 뭐라 답을 해야 좋을지 알지 못해서 조금 머뭇거리다가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 그러면 좋을 텐데.”
  좋긴 개뿔, 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졸리면 그냥 유턴해서 집으로 가자고, 각자의 방구석으로 돌아가서 편히 누워서 자자고, 라는 말은 하지도 못하고, 아, 고속도로에 이미 타버렸구나, 고속도로에서는 유턴이 안 되지, 여기서 유턴을 하면 역주행으로 너 죽고 나 죽고 뉴스에 나겠지, 하는 이상한 생각만 자꾸 들었다.
  “그런데 혹시 여기 핸드폰 충전할 잭 같은 거 있어?”
  어느새 밖은 완전히 깜깜해져 있었다. 그러자 더 불안해져서 언제 꺼질지 모를 핸드폰이 신경 쓰였다. 조심스레 액정을 확인하자 그 불안을 약 올리듯 이미 전원이 나가버린 후였다.
  “응. 있지. 왜? 배터리 없어?”
  배터리가 없는 게 아니라 아예 꺼졌어, 라는 말도 하지 못하고,
  “응. 충전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라고 말했다. 왜 아까부터 계속 이렇게 온순한 모양새인지 나도 나 자신을 잘 모르겠다. 나는 얘가 무서운가. 아니면 어려운가. 알 수 없었다. 다만 바다는 정말 되었고, 집에나 가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사실은 집을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여기.”
  까만색 케이블의 충전 잭이 나에게 다가왔다.
  “아, 고마워.”
  하나도 고맙지 않았다. 그 잭은 내 핸드폰 기종과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만히 그것을 손에 들고만 있자,
  “왜, 안 돼?”
  라고 물어왔다. 나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어떡하냐.”
  전혀 걱정스럽지 않은 듯한 저 빈말. 째려보고 싶었지만 참았다. 괜히 쿨한 척만 했다.
  “뭐, 어쩔 수 없지.”
  “그러게. 뭐 어쩔 수 없겠네.”
  문득 얘가 마치 낙오를 자처한 사람처럼 운전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내 느낌을 간파한 것처럼, 혼잣말을 하듯 물어왔다.
  “내가 너무 느리게 가나?”
  그러나 주변에는 속도를 비교해볼 만한 차가 아예 없었다. 완만하게 꺾어지는 도로를 전세 낸 것마냥 우리뿐이었기에 적당한 답을 할 수도 없었다. 다행히 얼마 후 다시 차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나의 근심과 달리, 또 걔의 우려도 무색하게 모든 차들이 어슷비슷한 빠르기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아가고 있었다. 시름을 놓기가 무섭게 또 얘가 기다란 하품을 해서 나는 아무 말을 다시 꺼냈다.
  “그런데 너 저녁은 먹었어?”
  “응. 먹었지.”
  “뭐 먹었어?”
  “순두부찌개.”
  “순두부찌개 좋아해?”
  “응. 너는?”
  “나? 나는 뭐 그냥저냥.”
  “너는 뭐 싫어하는데?”
  내가 싫어하는 게 뭐였더라.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도 잘 모르지만 싫어하는 것도 잘 몰랐다.
  “나는 청국장은 싫은 것 같아.”
  “그래?”
  “응.”
  “왜? 냄새 때문에?”
  “아니 뭐, 몰라. 그냥 싫어.”
  하지만 기억을 해보니, 당장 지난 주말에 청국장을 먹었었다. 그냥 먹은 게 아니라 꽤나 맛있게 먹었다. 밥을 두 공기나 비벼 싹싹 긁어 비웠다. 대화는 뚝뚝 끊기다가 또 정적이 흘렀다. 졸음운전이 정말 위험하다는, 음주운전보다도 훨씬 더 위험하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불현듯 나서 나도 모르게 손바닥에 땀이 났다.
  “근데 왜 갑자기 먹는 이야기를 했어? 너 배고파?”
  걔가 물었다. 배고파서 꺼냈겠냐. 네가 운전대를 잡은 채로 졸까봐 그런 거지.
  “아, 배고픈 건 아니고…… 너는?”
  나는 되물었다.
  “나?”
  “어, 너는 배고파?”
  “나도 지금 배고프지는 않아. 그런데 그래도 언젠가는 살다보면 배가 고프지 않을까?”
  “그렇겠지? 살다보면 배가 고픈 날도 오겠지.”
  “그치. 꼭 지금은 아니더라도.”
  “응. 나중에라도.”
  “맞아.”
  이게 무슨 맥락 없는 이상한 대화인가, 하도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오려던 순간에 우리가 어느새 고속도로를 완전히 벗어나서 달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
  내가 소리를 내며 놀라자,
  “어? 왜?”
  운전대를 잡은 얘도 놀라며 차가 잠깐 비틀, 거렸다.
  “아, 아니야.”
  나는 지금 어디로 가는 거냐는 말을 묻지도 못했다. 모든 길은 다 이어지기 마련이니까, 어떻게든 집으로, 아니 바다로는 가게 되겠지, 라고 해탈한 듯 생각했지만 재차 이리저리 눈길을 두며 이정표든 상가 간판에서든 지금이 어디쯤인지를 확인하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고개도 두리번거리게 되었고, 이런 나를 얘도 자꾸 쳐다봤다. 그런 식의 눈치싸움 아닌 눈치싸움이 얼마나 반복되었을까. 어느새 우리는 한참 전에 조우하였던 내 학원 건물 앞에 닿아 있었다. 학원의 모든 교실은 불이 전부 꺼진 상태였다.
  “여기서 너희 집은 어느 쪽으로 가?”
  어안이 벙벙해 있는 내게 걔가 물었다. 나는 아파트 이름까지만 말을 하고 몇 동인지까지는 말하지 않았다. 얘도 묻지 않았다. 아파트 정문 앞에 다다랐을 때에야 내가 겨우 입을 떼었다.
  “그런데 바다는?”
  “뭐?”
  “바다는 왜 안 갔어?”
  흐암, 하고 늘어지는 소리를 내며 어딘가 연극적인 하품을 하더니 대답했다.
  “졸려서.”
  “어?”
  “뻥이고. 그냥.”
  “그냥?”
  “응. 너 바다 안 보고 싶잖아. 맞지 않아?”
  갑자기 훅 찔린 정곡에 마음이 따끔거린 나는 이실직고를 했다.
  “……맞아. 바다 별로 안 보고 싶어.”
  “왜?”
  “몰라. 그냥 좀 그래.”
  “그러니까 말야.”
  “어?”
  “나도 좀 그래. 너 태워보니까 뭔가 그냥 좀 그래.”
  아마도 나의 불안을 읽은 것 같았지만 그걸 내 입으로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다음에 가자.”
  “어, 그래 다음에는 꼭 가자.”
  나는 내 진심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말을 크게 내뱉었다.
  “너 근데 핸드폰 번호가 뭐야? 나 너 번호 없더라. 인스타도 안 하는 것 같고.”
  내가 차문을 열고 내리려는데 걔가 물었다.
  “어, 나 인스타 안 하지. 그냥 내가 너한테 전화를 걸게. 나도 너 번호 없어서.”
  나는 내 핸드폰이 꺼졌다는 것을 순간 까먹고 이렇게 말했다가 다시 말했다.
  “아, 내 폰 꺼졌네.”
  “아까 꺼졌잖아.”
  “맞아.”
  하는 수 없이 내 핸드폰 번호 열한 자리를 일러주었고, 얘는 피아노를 치듯 운전대를 손끝으로 두들기며 숫자 열한 개를 두 번 연속 읊조렸다. 곧장 저장을 하지 않는 게 좀 의아하기는 했지만 아마도 내 번호를 가뿐히 외웠을 것이다. 외우는 거 하나는 정말 잘하는 아이니까.
  그러고보니 얘랑 처음 가까워졌을 때가 생각났다. 모둠활동으로 4인 1조가 되었을 때였는데 사다리타기로 역할을 분담한 결과 나는 발표를 맡고 얘는 피피티 만들기를 담당하게 되었다. 나는 남들 앞에 나서서 뭔가를 하는 것, 특히 말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기 때문에 발표만은 아니기를 간절히 바랐는데 발표를 맡게 되어 정말 짜증이 났었다. 이대로 자퇴를 해버릴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야 너 아까부터 표정이 왜 그래?”
  집으로 가는 길에 내 뒤를 쫓아 달려오던 걔가 물었다. 서로의 표정에 대해 안부를 물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는 아니지 않나, 하며 나는 의미 없이 웃는 척을 했다.
  “내가 뭐?”
  “그냥. 짜증이 너무 난 표정인데?”
  그러고보니 그때도 걔는 내 마음을 단박에 읽었었다. 그런 쪽으로 타고난 기민함이 있었으니, 바다를 보러 가는 길에 내 마음에서 불안의 파도가 얼마나 높게 치솟았는지도 알았을 것이다. 아무튼 그때의 나는 걔에게 실은 발표가 싫다고, 정말 너무 싫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어? 나도 피피티 만들기 진짜 싫었는데, 나랑 바꿀래?”
  “진짜?”
  “어, 차라리 나는 발표가 나아. 아니, 훨씬 좋아.”
  진짜였다. 걔는 발표를 탁월하게 해냈고 우리 조는 만점을 받았다. 하지만 점수 확인까지 모두 끝난 후 누군가가 걔에게 발표 내용 관련 질문을 하였는데, 걔는 전혀 엉뚱한 대답을 하며 멋쩍게 웃었다. 처음에는 장난을 치는 건가 싶었지만 걔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너 그런데 발표는 어떻게 한 거냐?”
  “외워서 했지. 근데 솔직히 이해는 못 했어. 하나도.”
  걔의 웃음이 너무나 해맑아서 같이 따라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걔는 내 번호를 기억할 것이다. 외우는 것 하나는 끝내주게 잘했으니까.
  “잘 들어가.”
  “응. 너도.”
  라고 바로 인사를 마치기에는 뭔가 좀 아쉬워서 또 아무 말을 물어봤다.
  “그런데 이 차 이름이 뭐야?”
  전방의 시야 확보가 훤히 트인 차에 대하여 궁금하긴 했었다.
  “이거? 빼빼.”
  빼빼, 라는 차종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아빠가 차 계약하는 날 올빼미 꿈을 꾸었다나 뭐라나. 그래서 올빼미의 빼를 따서 빼빼라고 불러. 나름 귀엽지?”
  나는 차의 종류 대신 진짜 이름을 유래와 함께 소개받은 셈이었다.
  “응. 빼빼 잘 탔어.”
  그렇게 헤어졌다.

매일매일 조금 축축해진 마음으로 침대에 누우며 내가 걔의 연락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하루들이 쌓여갔고, 모르는 번호가 액정에 찍힐 때마다 기대와 낙담을 반복했다.
  수능이 끝나자마자 면허도 재빨리 따놓았는데. 교대로 운전을 하며 바다를 보러 갈 준비가 다 되었는데. 걔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야지, 라는 다짐도 당연히 진즉에 끝냈는데.
  축축해진 내 마음은 마를 기미가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기다림이라는 조각을 결코 잃어버리지 못했다. 작고 두툼한 그 조각을 결코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었다.

황보나

청소년소설 『네임 스티커』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2026/08/19
8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