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우리끼리
2교시 쉬는 시간이었어. 나는 가위로 색종이를 오리고 있었어. 그때 시현이와 동주가 내 짝꿍 준우 자리로 와 장난을 쳤지. 책상에 놓인 준우의 뽀로로 공책을 손톱으로 툭툭 튕기면서.
“넌 3학년이 뽀로로가 뭐야, 뽀로로가? 너 아침에도 뽀로로 보고 왔지?”
“아니야. 나 이제 뽀로로 안 좋아해. 이건 옛날에 사둔 거란 말이야. 유치원 때.”
“쳇, 거짓말! 너 어제 편의점에서 뽀로로 주스 사 먹는 거 내가 다 봤어.”
시현이와 동주는 준우를 계속 놀렸어. 준우 얼굴이 벌게질 때까지.
“나준우 어린이, 지금 화가 많이 났습니다. 화가 많이 났어요.”
난 딱 이렇게만 말했어. 전날 밤 아빠랑 본 축구 경기의 해설자처럼. 순간 내 눈앞에 뭔가가 반짝 빛을 내며 스쳤지. 타닥, 내 책상 끝에 자가 떨어졌어. 준우가 내게 자를 던진 거야. 어이가 없었지.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나는 다 참아도 당하는 건 절대 못 참아. 그건 합기도 유단자의 자존심이 아니거든. 주먹을 불끈 쥐었지.
“유단자는 함부로 주먹을 쓰지 않아.”
순간, 관장님 말이 떠올랐어. 쥐었던 주먹을 스르르 풀었지. 대신 책상에 올려져 있던 가위를 들었어. 그리고 싹둑, 잘랐어. 준우 필통 귀퉁이를. “으아아아아앙!” 준우가 울음을 터트렸어. 꼭 어린아이처럼. 저러니 만날 놀림이나 당하는 거지. 약해빠진 녀석 같으니라고.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왔어. 선생님이 나와 준우를 불렀어. 입을 삐죽 내밀고 앞으로 나가는데,
“선생님 쟤네들 집에 전화한다.”
“맞아. 나도 저번에 그래서 엄청 혼났잖아.”
아이들의 말이 내 귀에 쏙 박혔어. 정신이 번쩍 들었지. 얼마 전, 오빠도 엄마한테 호되게 혼이 났거든. 오빠 담임선생님한테 전화 와서. 그날 난 새로운 사실 두 가지를 알게 되었어. 하나는 엄마 목소리가 경비 아저씨보다 훨씬 크다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오빠도 울 줄 안다는 거였어. 정신을 차리려고 침을 꿀꺽 삼켰어. 어떻게든 엄마 귀엔 이 사실이 안 들어가게 해야 해.
“소유이가아아 흐으으으, 가위로오오, 으흐흐흐흐……”
준우를 얕잡아본 건 내 실수였어. 울면서도 할말은 다 했고, 귀퉁이가 잘린 필통을 증거물로 챙겨오기까지 했지. 선생님은 필통을 보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어.
“소윤이 왜 그랬어? 둘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준우가 먼저……”
나는 말을 하려다 말았어. 준우가 말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스스로 잘못한 걸 얘기할 시간을 준 거지. 준우가 자를 던진 게 원인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웬일이야? 준우가 입을 꾹 다물고만 있는 거야. 쳇, 혼이 조금이라도 덜 나보려고 그러는 거겠지 뭘. 억울했지만 그래도 꾹 참았어. 주저리주저리 말이 길어지면 어른들은 혼을 더 많이 내더라고. 우리 엄마도 그렇거든. 팽이처럼 머릴 팽팽 돌렸어. 어떻게 하면 집에 전화가 안 갈까 하고 말이야. 내게는 아주 잠깐 사이에도 수백 가지 생각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거든. 머릿속에 생각들이 둥둥 떠다녀. 그중 가장 멋져 보이는 걸로 하나 건져 올렸어.
“준우야, 미안해. 선생님, 잘못했어요. 제가 준우 필통 똑같은 걸로 사줄게요.”
준우가 당황한 듯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날 쳐다봤어. 내가 이렇게 나올 줄 상상도 못했다는 눈치였지. 입술을 꽉 깨물고 고개도 푹 숙였어.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고 했거든. 우리 관장님이.
“친구 물건을 자른 건 엄청 큰 잘못이야. 알지? 우선 들어가.”
속으로 ‘예스!’를 외쳤어. 입술을 안으로 말아 물었어. 입꼬리가 위로 올라가려는 걸 간신히 잡았지. 그대로 뒤돌아 자리로 들어가려는데,
“부모님께 말씀드려야겠다, 너희들.”
선생님의 말에 내 몸이 휘청거렸어. 합기도에 단련된 몸이 아니었더라면 앞으로 고꾸라졌을지도 몰라. 내 계획은 다 틀어지고 말았지.
띠리리리리, 3교시 시작종이 울렸어. 옆에 앉은 준우는 귀퉁이가 잘려나간 필통을 만지작거렸어. 코를 훌쩍이면서. 얼마 전, 새로 필통 샀다고 내게 자랑을 했던 준우였어. 마음이 따끔거렸어. 자르진 말 걸 그랬나봐.
3교가 끝나자마자 준우에게 말했어.
“내일 아침 여덟 시 반까지 똑똑 문구로 나와. 내가 사줄게.”
“……”
“내가 사준다니까. 똑같은 거. ……미안해.”
유단자의 자존심을 굽히고 한 번 더 사과했어. 그런데도 준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야. 피이, 저도 뭐 잘한 건 아니면서. 얼굴이 홧홧 달아올랐어. 뜨거운 팩을 대고 있을 때처럼. 두 눈을 부릅뜨고 준우를 노려봤지. 순간 오른쪽 눈 밑이 따끔거렸어.
“야, 너 너무한 거 아니야? 사과도 했고, 필통도 똑같은 거 사준다잖아? 그리고 잘못은 나만 한 게 아닐 텐데? 지금이라도 선생님한테 사실대로 다 말할까?”
준우는 날 노려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았어. 재빨리 생각을 고쳤어. 어차피 엄마한테 전화가 갈 거고, 그럼 난 혼날 게 뻔하니까. 혼이 날 거라면 사실대로 다 말해서 조금이라도 덜 나는 게 낫잖아.
선생님한테 갔어.
“선생님, 사실은요. 아까 준우가요……”
자를 던졌다고 말하려는데 누군가 선생님을 불렀어. 교실 뒷문이 빠졌다고.
“어머머, 너희들 그거 잡지 말고 빨리 비켜. 다쳐!”
“선생님, 이거 놓으면 더 많이 다칠 것 같은데요?”
선생님이 후다닥, 뒷문을 향해 달렸어. 4교시가 시작되고도 한참 동안 선생님은 빠진 뒷문만 고쳤어. 칠판 앞에 선 선생님이 많이 지쳐 보였어.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지. 조금 이따 급식 시간에 다시 말하기로 마음먹었어.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어. 급식 시간에 아이들이 복도로 다 나갈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데 맨 뒷자리에 앉은 솔지가 갑자기 배가 아프다며 데굴데굴 구르지 뭐야. 계획이 마구 꼬였어. 세탁기 속 엉킨 빨래처럼. 어쩔 수 없이 터덜터덜 급식실로 내려갔어.
“탕수육 많이 줄까?”
조리사 선생님이 물었어.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지.
“으응? 너 눈 밑이 왜 그리 빨개? 모기 물렸나 보구나? 긁지 마. 긁음 더 부어올라.”
양손에 식판을 들고 있어서 만져보지 못했어. 그런데 궁금하긴 했지. 아까부터 오른쪽 눈 밑이 계속 따끔거렸거든. 조리사 선생님은 모기 물린 내가 안쓰러웠는지 탕수육을 수북이 퍼줬어. 입맛도 없는데.
자리가 꽉 찼어. 창가 바로 앞자리에 빈자리가 하나 보였지. 그런데 준우, 시현이, 동주가 바로 앞에 앉아 있는 거야. 그럼 어떻게 해? 빈자리가 달랑 거기뿐인걸.
셋은 언제 싸웠냐는 듯 조잘거렸어. 깔깔거리고 웃으면서.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더 화가 났어. 괜히 나만 손해 본 것 같아서.
급식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다 교실로 올라왔어. 선생님은 자리에 없었지. 앉지도 못한 채 우두커니 서서 선생님 오기만을 기다리는데 사물함 앞에서 아이들이 보드게임을 하는지 시끄럽게 떠들었어. 준우도, 시현이도, 동주도.
“이건 박소윤이랑 해야 재밌는데……”
“소윤이 기분 안 좋아서 이런 거 하겠냐? 안 하겠지.”
내 뒤통수에 시현이와 동주 목소리가 날아와 꽂혔어. 몸을 획 돌려 버럭 소릴 질렀지.
“야, 나 기분 좋거든? 기분 좋다고!”
하하하, 웃어야 했는데 뜻밖에도 내 눈에선 눈물이 쏟아졌어. 창피하게. 누가 볼세라 얼른 눈물을 훔쳤어.
“으윽!”
눈 밑이 쓰라렸어. 칼로 손을 베고 난 다음 손을 씻었을 때처럼. 조리사 선생님 말대로 모기에 물린 건가 했지. 필통을 열었어. 내 필통 안쪽에 동그란 거울이 하나 붙어 있거든. 얼굴을 비춰봤어. 얼마나 큰 왕 모기에 물렸기에 이렇게 쓰라리나 싶어서.
“헉, 이게 뭐야?”
내 오른쪽 눈 밑에 빨간 선이 가느다랗게 그려져 있지 뭐야? 연필 깎기에서 막 꺼낸 연필심 길이만 했지. 모기는 아닌 것 같았어. 모기 자국은 동그랗게 나잖아? 확인하고 나니 더 쓰라렸어. 상처가 왜 생겼을까 생각해보는데 순간, 내 눈에 준우 자가 들어왔어. 반짝 스쳤다고 생각만 했는데 상처가 났던 거였어.
드르륵, 교실 앞문이 열리고 선생님이 들어왔지. 난 선생님한테 갔어. 손에 준우 자를 들고서.
“소윤아, 왜? 너, 울었어? 어디 아파?”
“네, 울었어요. 아파서요. 이거 보세요. 나준우가 아까 저한테 자를 던져서 난 상처라고요. 저만 잘못한 거 아니고 나준우도 잘못했어요. 근데 저만 혼났잖아요! 나준우는 혼도 안 나고요.”
“어머, 그랬어? 미안해, 소윤아. 선생님이 몰랐지. 말을 하지 그랬어?”
“말하려고 했는데 선생님이 바빴잖아요! 문 고치러 가고, 유솔지 데리고 양호실 가고요. 그래서 말을 못 했잖아요! 아아 아아아 아아앙!”
선생님이 나를 와락 끌어안았어.
“미안해, 소윤아. 선생님이 네 얘길 안 들어줘서. 그런데 그러려고 한 건 아니었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지. 아후우, 많이 아팠겠다.”
선생님은 내 얼굴에 동그란 밴드를 붙여줬어. 그리고 준우를 불렀어.
“박소윤이 거들었단 말이에요. 오시현이랑 차동주가 저를 자꾸 놀리는데 옆에서 거들었어요. 오시현이랑 차동주 때문에 기분이 나빴는데 박소윤이 그래서 더 화가 났어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선생님이 시현이와 동주를 불렀어.
“……저번에 강현범이랑 한성현도 저 놀렸어요.”
시현이가 자리에 앉아 있는 현범이와 성현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어. 선생님이 이번엔 현범이와 성현이를 불렀어. 그다음엔 또 지우와 다솜이가 불려 나왔지. 그다음엔 시아와 나래가 나왔어. 지목 당한 아이는 앞으로 불려 나온 뒤 또다른 아이를 지목했어. 자신을 괴롭혔다면서. 끝말잇기처럼 계속 이어졌어. 결국 우리 반 아이들 전부 앞으로 불려 나왔지.
“후우우, 우리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떻게 해야 오늘 일이 해결이 되겠니? 학부모님들 전부 다 학교에 오시라 할까?”
“아니에요, 그건 안 돼요!”
동주가 두 손을 엑스 자로 만들어 보이며 말했어.
“맞아요. 그건 안 돼요!”
준우가 맞장구를 쳤어. 이번엔 내가 용기를 냈지.
“우리끼리 해결해요. 우리가 싸운 거잖아요. 우리가 놀린 거고요. 근데 왜 부모님을 불러서 해결해요?”
선생님이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어. 그러자 아이들이 너도나도 우리끼리 해결해보겠다고 했어.
“선생님, 우리끼리 해결할게요. 한 번 만요! 네? 딱 한 번 만요!”
선생님 눈빛이 흔들렸어. 마음이 약해졌다는 뜻인 거지. 난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어. 준우에게 손을 내밀었지. 시범을 보여야 할 것 같아서. 시범 보이는 건 자신 있어. 난 합기도 시범단이거든.
“미안해. 나준우. 앞으론 안 그럴게. 다른 애들이 놀려도 옆에서 안 거들게. 그리고 가위로 네 물건 자르지도 않을게. 응? 필통도 똑같은 걸로 사주고. 정말 미안해. 용서해줘.”
“나도 미안해, 박소윤. 위험한 물건 던져서. 다신 안 그럴게.”
“미안해, 나준우. 뽀로로 공책으로 너 놀려서. 앞으론 그런 걸로 놀리지 않을게.”
도미노 같았어. 줄줄이 사과를 하기 시작했지. 현범이와 성현이가, 그 다음엔 지우가 그 다음엔 다솜이가…… 사과하는 데에만 꼬박 한 시간이 걸렸어.
선생님은 준우에게 몇 번씩 다짐을 받았어. 친구에게 위험한 물건을 절대 던지지 않는다고. 준우는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지. 그런 준우 모습에 웃음이 났어.
선생님은 부모님께 연락할지 말지 좀더 고민해 본다고 했어. 우리 모두는 “와아!” 소리를 질렀어. 다들 나처럼 선생님이 집에 전화하는 건 무서웠나봐.
이틀이 지났어. 집에 전화는 오지 않은 모양이야. 엄마한테 혼이 안 났거든. 이제 슬슬 마음을 놓아도 될 것 같아. 얼굴에 난 상처도 이제 다 나았어. 그 일이 있고 난 후 우리 반 교실이 조금 조용해졌어. 서로 눈치 보고 조심하기 시작했거든.
“박소윤, 나 이거 좀 빌려 써도 돼?”
준우가 내 딱풀을 가리키며 물었어. 나는 활짝 웃으며 딱풀 뚜껑까지 따서 준우에게 내밀었지.
“고마워. 어, 어?”
“헉, 뭐야? 야! 너 뭐야?”
준우가 어제 새로 산 내 딱풀을 딱 부러뜨린 거야. 딱풀 심지를 끝까지 밀어 올려 풀칠을 하는데 그게 안 부러지고 배기겠어? 일부러 그런 것 같았어. 내가 저번에 필통 잘랐다고 복수하는 거지. 그때 다 사과하고 받아줬으면서 치사하게.
준우를 향해 풀 뚜껑을 날렸어. 탁, 이마 한가운데를 맞히고 떨어졌어.
“야! 아프잖아?”
준우 목소리로 교실이 쩌렁쩌렁 울렸어. 선생님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지.
“왜 또? 무슨 일이야?”
아, 오늘도 우리끼리 해결해야 하는데……
“넌 3학년이 뽀로로가 뭐야, 뽀로로가? 너 아침에도 뽀로로 보고 왔지?”
“아니야. 나 이제 뽀로로 안 좋아해. 이건 옛날에 사둔 거란 말이야. 유치원 때.”
“쳇, 거짓말! 너 어제 편의점에서 뽀로로 주스 사 먹는 거 내가 다 봤어.”
시현이와 동주는 준우를 계속 놀렸어. 준우 얼굴이 벌게질 때까지.
“나준우 어린이, 지금 화가 많이 났습니다. 화가 많이 났어요.”
난 딱 이렇게만 말했어. 전날 밤 아빠랑 본 축구 경기의 해설자처럼. 순간 내 눈앞에 뭔가가 반짝 빛을 내며 스쳤지. 타닥, 내 책상 끝에 자가 떨어졌어. 준우가 내게 자를 던진 거야. 어이가 없었지.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나는 다 참아도 당하는 건 절대 못 참아. 그건 합기도 유단자의 자존심이 아니거든. 주먹을 불끈 쥐었지.
“유단자는 함부로 주먹을 쓰지 않아.”
순간, 관장님 말이 떠올랐어. 쥐었던 주먹을 스르르 풀었지. 대신 책상에 올려져 있던 가위를 들었어. 그리고 싹둑, 잘랐어. 준우 필통 귀퉁이를. “으아아아아앙!” 준우가 울음을 터트렸어. 꼭 어린아이처럼. 저러니 만날 놀림이나 당하는 거지. 약해빠진 녀석 같으니라고.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왔어. 선생님이 나와 준우를 불렀어. 입을 삐죽 내밀고 앞으로 나가는데,
“선생님 쟤네들 집에 전화한다.”
“맞아. 나도 저번에 그래서 엄청 혼났잖아.”
아이들의 말이 내 귀에 쏙 박혔어. 정신이 번쩍 들었지. 얼마 전, 오빠도 엄마한테 호되게 혼이 났거든. 오빠 담임선생님한테 전화 와서. 그날 난 새로운 사실 두 가지를 알게 되었어. 하나는 엄마 목소리가 경비 아저씨보다 훨씬 크다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오빠도 울 줄 안다는 거였어. 정신을 차리려고 침을 꿀꺽 삼켰어. 어떻게든 엄마 귀엔 이 사실이 안 들어가게 해야 해.
“소유이가아아 흐으으으, 가위로오오, 으흐흐흐흐……”
준우를 얕잡아본 건 내 실수였어. 울면서도 할말은 다 했고, 귀퉁이가 잘린 필통을 증거물로 챙겨오기까지 했지. 선생님은 필통을 보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어.
“소윤이 왜 그랬어? 둘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준우가 먼저……”
나는 말을 하려다 말았어. 준우가 말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스스로 잘못한 걸 얘기할 시간을 준 거지. 준우가 자를 던진 게 원인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웬일이야? 준우가 입을 꾹 다물고만 있는 거야. 쳇, 혼이 조금이라도 덜 나보려고 그러는 거겠지 뭘. 억울했지만 그래도 꾹 참았어. 주저리주저리 말이 길어지면 어른들은 혼을 더 많이 내더라고. 우리 엄마도 그렇거든. 팽이처럼 머릴 팽팽 돌렸어. 어떻게 하면 집에 전화가 안 갈까 하고 말이야. 내게는 아주 잠깐 사이에도 수백 가지 생각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거든. 머릿속에 생각들이 둥둥 떠다녀. 그중 가장 멋져 보이는 걸로 하나 건져 올렸어.
“준우야, 미안해. 선생님, 잘못했어요. 제가 준우 필통 똑같은 걸로 사줄게요.”
준우가 당황한 듯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날 쳐다봤어. 내가 이렇게 나올 줄 상상도 못했다는 눈치였지. 입술을 꽉 깨물고 고개도 푹 숙였어.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고 했거든. 우리 관장님이.
“친구 물건을 자른 건 엄청 큰 잘못이야. 알지? 우선 들어가.”
속으로 ‘예스!’를 외쳤어. 입술을 안으로 말아 물었어. 입꼬리가 위로 올라가려는 걸 간신히 잡았지. 그대로 뒤돌아 자리로 들어가려는데,
“부모님께 말씀드려야겠다, 너희들.”
선생님의 말에 내 몸이 휘청거렸어. 합기도에 단련된 몸이 아니었더라면 앞으로 고꾸라졌을지도 몰라. 내 계획은 다 틀어지고 말았지.
띠리리리리, 3교시 시작종이 울렸어. 옆에 앉은 준우는 귀퉁이가 잘려나간 필통을 만지작거렸어. 코를 훌쩍이면서. 얼마 전, 새로 필통 샀다고 내게 자랑을 했던 준우였어. 마음이 따끔거렸어. 자르진 말 걸 그랬나봐.
3교가 끝나자마자 준우에게 말했어.
“내일 아침 여덟 시 반까지 똑똑 문구로 나와. 내가 사줄게.”
“……”
“내가 사준다니까. 똑같은 거. ……미안해.”
유단자의 자존심을 굽히고 한 번 더 사과했어. 그런데도 준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야. 피이, 저도 뭐 잘한 건 아니면서. 얼굴이 홧홧 달아올랐어. 뜨거운 팩을 대고 있을 때처럼. 두 눈을 부릅뜨고 준우를 노려봤지. 순간 오른쪽 눈 밑이 따끔거렸어.
“야, 너 너무한 거 아니야? 사과도 했고, 필통도 똑같은 거 사준다잖아? 그리고 잘못은 나만 한 게 아닐 텐데? 지금이라도 선생님한테 사실대로 다 말할까?”
준우는 날 노려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았어. 재빨리 생각을 고쳤어. 어차피 엄마한테 전화가 갈 거고, 그럼 난 혼날 게 뻔하니까. 혼이 날 거라면 사실대로 다 말해서 조금이라도 덜 나는 게 낫잖아.
선생님한테 갔어.
“선생님, 사실은요. 아까 준우가요……”
자를 던졌다고 말하려는데 누군가 선생님을 불렀어. 교실 뒷문이 빠졌다고.
“어머머, 너희들 그거 잡지 말고 빨리 비켜. 다쳐!”
“선생님, 이거 놓으면 더 많이 다칠 것 같은데요?”
선생님이 후다닥, 뒷문을 향해 달렸어. 4교시가 시작되고도 한참 동안 선생님은 빠진 뒷문만 고쳤어. 칠판 앞에 선 선생님이 많이 지쳐 보였어.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지. 조금 이따 급식 시간에 다시 말하기로 마음먹었어.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어. 급식 시간에 아이들이 복도로 다 나갈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데 맨 뒷자리에 앉은 솔지가 갑자기 배가 아프다며 데굴데굴 구르지 뭐야. 계획이 마구 꼬였어. 세탁기 속 엉킨 빨래처럼. 어쩔 수 없이 터덜터덜 급식실로 내려갔어.
“탕수육 많이 줄까?”
조리사 선생님이 물었어.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지.
“으응? 너 눈 밑이 왜 그리 빨개? 모기 물렸나 보구나? 긁지 마. 긁음 더 부어올라.”
양손에 식판을 들고 있어서 만져보지 못했어. 그런데 궁금하긴 했지. 아까부터 오른쪽 눈 밑이 계속 따끔거렸거든. 조리사 선생님은 모기 물린 내가 안쓰러웠는지 탕수육을 수북이 퍼줬어. 입맛도 없는데.
자리가 꽉 찼어. 창가 바로 앞자리에 빈자리가 하나 보였지. 그런데 준우, 시현이, 동주가 바로 앞에 앉아 있는 거야. 그럼 어떻게 해? 빈자리가 달랑 거기뿐인걸.
셋은 언제 싸웠냐는 듯 조잘거렸어. 깔깔거리고 웃으면서.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더 화가 났어. 괜히 나만 손해 본 것 같아서.
급식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다 교실로 올라왔어. 선생님은 자리에 없었지. 앉지도 못한 채 우두커니 서서 선생님 오기만을 기다리는데 사물함 앞에서 아이들이 보드게임을 하는지 시끄럽게 떠들었어. 준우도, 시현이도, 동주도.
“이건 박소윤이랑 해야 재밌는데……”
“소윤이 기분 안 좋아서 이런 거 하겠냐? 안 하겠지.”
내 뒤통수에 시현이와 동주 목소리가 날아와 꽂혔어. 몸을 획 돌려 버럭 소릴 질렀지.
“야, 나 기분 좋거든? 기분 좋다고!”
하하하, 웃어야 했는데 뜻밖에도 내 눈에선 눈물이 쏟아졌어. 창피하게. 누가 볼세라 얼른 눈물을 훔쳤어.
“으윽!”
눈 밑이 쓰라렸어. 칼로 손을 베고 난 다음 손을 씻었을 때처럼. 조리사 선생님 말대로 모기에 물린 건가 했지. 필통을 열었어. 내 필통 안쪽에 동그란 거울이 하나 붙어 있거든. 얼굴을 비춰봤어. 얼마나 큰 왕 모기에 물렸기에 이렇게 쓰라리나 싶어서.
“헉, 이게 뭐야?”
내 오른쪽 눈 밑에 빨간 선이 가느다랗게 그려져 있지 뭐야? 연필 깎기에서 막 꺼낸 연필심 길이만 했지. 모기는 아닌 것 같았어. 모기 자국은 동그랗게 나잖아? 확인하고 나니 더 쓰라렸어. 상처가 왜 생겼을까 생각해보는데 순간, 내 눈에 준우 자가 들어왔어. 반짝 스쳤다고 생각만 했는데 상처가 났던 거였어.
드르륵, 교실 앞문이 열리고 선생님이 들어왔지. 난 선생님한테 갔어. 손에 준우 자를 들고서.
“소윤아, 왜? 너, 울었어? 어디 아파?”
“네, 울었어요. 아파서요. 이거 보세요. 나준우가 아까 저한테 자를 던져서 난 상처라고요. 저만 잘못한 거 아니고 나준우도 잘못했어요. 근데 저만 혼났잖아요! 나준우는 혼도 안 나고요.”
“어머, 그랬어? 미안해, 소윤아. 선생님이 몰랐지. 말을 하지 그랬어?”
“말하려고 했는데 선생님이 바빴잖아요! 문 고치러 가고, 유솔지 데리고 양호실 가고요. 그래서 말을 못 했잖아요! 아아 아아아 아아앙!”
선생님이 나를 와락 끌어안았어.
“미안해, 소윤아. 선생님이 네 얘길 안 들어줘서. 그런데 그러려고 한 건 아니었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지. 아후우, 많이 아팠겠다.”
선생님은 내 얼굴에 동그란 밴드를 붙여줬어. 그리고 준우를 불렀어.
“박소윤이 거들었단 말이에요. 오시현이랑 차동주가 저를 자꾸 놀리는데 옆에서 거들었어요. 오시현이랑 차동주 때문에 기분이 나빴는데 박소윤이 그래서 더 화가 났어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선생님이 시현이와 동주를 불렀어.
“……저번에 강현범이랑 한성현도 저 놀렸어요.”
시현이가 자리에 앉아 있는 현범이와 성현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어. 선생님이 이번엔 현범이와 성현이를 불렀어. 그다음엔 또 지우와 다솜이가 불려 나왔지. 그다음엔 시아와 나래가 나왔어. 지목 당한 아이는 앞으로 불려 나온 뒤 또다른 아이를 지목했어. 자신을 괴롭혔다면서. 끝말잇기처럼 계속 이어졌어. 결국 우리 반 아이들 전부 앞으로 불려 나왔지.
“후우우, 우리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떻게 해야 오늘 일이 해결이 되겠니? 학부모님들 전부 다 학교에 오시라 할까?”
“아니에요, 그건 안 돼요!”
동주가 두 손을 엑스 자로 만들어 보이며 말했어.
“맞아요. 그건 안 돼요!”
준우가 맞장구를 쳤어. 이번엔 내가 용기를 냈지.
“우리끼리 해결해요. 우리가 싸운 거잖아요. 우리가 놀린 거고요. 근데 왜 부모님을 불러서 해결해요?”
선생님이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어. 그러자 아이들이 너도나도 우리끼리 해결해보겠다고 했어.
“선생님, 우리끼리 해결할게요. 한 번 만요! 네? 딱 한 번 만요!”
선생님 눈빛이 흔들렸어. 마음이 약해졌다는 뜻인 거지. 난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어. 준우에게 손을 내밀었지. 시범을 보여야 할 것 같아서. 시범 보이는 건 자신 있어. 난 합기도 시범단이거든.
“미안해. 나준우. 앞으론 안 그럴게. 다른 애들이 놀려도 옆에서 안 거들게. 그리고 가위로 네 물건 자르지도 않을게. 응? 필통도 똑같은 걸로 사주고. 정말 미안해. 용서해줘.”
“나도 미안해, 박소윤. 위험한 물건 던져서. 다신 안 그럴게.”
“미안해, 나준우. 뽀로로 공책으로 너 놀려서. 앞으론 그런 걸로 놀리지 않을게.”
도미노 같았어. 줄줄이 사과를 하기 시작했지. 현범이와 성현이가, 그 다음엔 지우가 그 다음엔 다솜이가…… 사과하는 데에만 꼬박 한 시간이 걸렸어.
선생님은 준우에게 몇 번씩 다짐을 받았어. 친구에게 위험한 물건을 절대 던지지 않는다고. 준우는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지. 그런 준우 모습에 웃음이 났어.
선생님은 부모님께 연락할지 말지 좀더 고민해 본다고 했어. 우리 모두는 “와아!” 소리를 질렀어. 다들 나처럼 선생님이 집에 전화하는 건 무서웠나봐.
이틀이 지났어. 집에 전화는 오지 않은 모양이야. 엄마한테 혼이 안 났거든. 이제 슬슬 마음을 놓아도 될 것 같아. 얼굴에 난 상처도 이제 다 나았어. 그 일이 있고 난 후 우리 반 교실이 조금 조용해졌어. 서로 눈치 보고 조심하기 시작했거든.
“박소윤, 나 이거 좀 빌려 써도 돼?”
준우가 내 딱풀을 가리키며 물었어. 나는 활짝 웃으며 딱풀 뚜껑까지 따서 준우에게 내밀었지.
“고마워. 어, 어?”
“헉, 뭐야? 야! 너 뭐야?”
준우가 어제 새로 산 내 딱풀을 딱 부러뜨린 거야. 딱풀 심지를 끝까지 밀어 올려 풀칠을 하는데 그게 안 부러지고 배기겠어? 일부러 그런 것 같았어. 내가 저번에 필통 잘랐다고 복수하는 거지. 그때 다 사과하고 받아줬으면서 치사하게.
준우를 향해 풀 뚜껑을 날렸어. 탁, 이마 한가운데를 맞히고 떨어졌어.
“야! 아프잖아?”
준우 목소리로 교실이 쩌렁쩌렁 울렸어. 선생님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지.
“왜 또? 무슨 일이야?”
아, 오늘도 우리끼리 해결해야 하는데……
이정란
매일 읽고, 매일 쓰며 제게 주어진 시간을 채워갑니다. 2024년 5.18 문학상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고, 동화 『버찌의 선택』 『볼록 풍선껌』을 썼습니다.
도무지 풀리지 않는 이야기로 마음이 답답하던 날, 우연히 들른 놀이터에서 제 속을 뻥 뚫리게 해준 대화를 듣게 되었습니다.
"나도 잘못했어. 너도 잘못했듯이. 그러니까 우리 깨끗이 사과하자.”
"그래.”
이로써 어린이에게 또 한 번의 빚을 집니다.
2025/10/15
7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