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대해 말하고 싶다. 그런데 어떻게 말해야 할까? 사랑은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데.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손을 뻗어보아도 머리를 굴려보아도 불가능이야. 그래서 나는 입이 없는 것처럼 꼭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할 수 없으니까. 말로 할 수 없는 것이니까. 백은선 시집 『가능세계』를 읽었는데 거기에 나랑 비슷하게 생각하는 것 같은 사람이 있었다.


   너랑 나는 화단에 앉아 사랑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람의 목소리를 녹음해서 틀고 그걸 다시 녹음하고 녹음한 걸 다시 틀고 다시 녹음하고 또 틀고 또 다시 녹음하고 이런 식의 과정을 계속해서 거치면 마지막에 남는 건 돌고래 울음소리 같은 어떤 음파뿐이래. 그래 그건 정말 사랑인 것 같다.1)

   연인이 사랑에 대해 말한다. 사람의 목소리를 녹음하는 과정을 반복하면 결국 돌고래 울음소리 같은 음파만 남는대. 목소리가 녹음한 목소리가 되고, 녹음한 목소리가 녹음한 목소리를 녹음한 목소리가 되면서, 더이상 사람 목소리 같지도 않게 이상하고 불분명하게 변한 소리. 조금씩 뭉개지고 희미해지고 사라져서 고막을 진동하게 만드는 공기의 운동으로만 남는 소리. 알 수 없는 흔적을 남기면서 계속 없어지고 있는 소리. 그건 정말 사랑인 것 같다고 연인은 말한다. “사랑에 관한 비유들로 낱말 놀이”(「밤과 낮이라고 두 번 말하지」)를 하는 연인도 사라진 것들을 가리키는 단어로만 사랑을 말할 수 있을 뿐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로 할 수 없는 말”을 이 사람들은 계속 말한다. “이미 실패했지만 다시 실패하고 싶”(「가능세계」)고, 어차피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또 사라지고, 한 번도 하지 못한 말이지만 새롭게 하지 못하는 말. 그래 그건 조금 사랑인 것 같다.

*

   사라짐에 대해 말하고 싶다. 그런데 어떻게 말해야 할까? 산다는 것은 나이 든다는 것이고 나이 든다는 것은 죽음과 가까워진다는 것이고 죽음과 가까워진다는 것은 결국 사라진다는 것인데. 사라지는 것은 언제나 두렵고 모르겠어. 그래서 나는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돌린 채 왜일까 생각만 하고 있었다. 박솔뫼 소설집 『사랑하는 개』를 읽었는데 거기에 사라지는 것이 두렵지 않게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오키나와에 가서 은의 일기를 다시 읽고 싶었다. 은의 시간이 다른 식으로 다가오고 이해될 것이다. 그리고 동면이 끝나면 쓰게 될 일기도 언젠가 읽게 해달라고 할 것이다. 아니 직접 이야기를 해도 좋고 나는 그 이야기를 조용히 듣는다. (…) 그때의 나는 사라지는 것이 두렵지 않게 되었다고 생각할 것이고 나는 그것을 말한다. 여름으로 향하며 잠결에.2)

   1월 1일부터 한 달 동안 동면하려는 친구 은이를 보살피기 위해서 ‘나’도 온양 호텔에 따라간다. 아이를 유산한 은이와 서울에서 매일 출근하며 일하는 생각만 해도 눈물이 흐르는 ‘나’는 서울에서 잠시 떨어져 나와 동면을 준비한다. 곧 사라질 것들, 언젠가는 끝날 인생과 임신을 하는 여자로서의 신체와 뱃속에서 죽는 아이와 흐르는 시간을 정확하게 받아들이겠다는 은이를 조심스럽게 양호하며 ‘나’도 조금씩 생활의 리듬을 찾는다. 가령 이런 것. 생각을 줄인다. 매일 할일을 정해놓는다. 세포가 생생하게 살아나는 느낌을 받을 때까지 달리기를 한다. 은이의 일기를 읽는다. 철학자 같은 고양이 차미가 머리를 다리에 부딪치고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본다. 그렇게 ‘나’는 온양에 머무는 시간을 “차가운 물에 손을 가져가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끼”려 해본다. 나의 시간과 다르게 흘러가는 너의 시간을 만져보면서, 사라지는 것들을 억지로 붙잡는 대신 나의 리듬으로 바꾸어보는 작고 귀여운 매일매일. 어쩌면 그것도 조금 사랑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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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사랑에 대해 말하고 싶다. 사랑은 사라지는 소리이고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사라지는 것들을 매일의 리듬으로 바꾸어보는 노력뿐이라면 미래는 우리에게 무엇일까. 정지돈 소설집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기억에서 살 것이다』를 읽었는데 거기에 그것을 꿈꾸는 사람이 있었다.


   그때는 미래라는 말이 너무 좋고 일기에 미래를 여러 번 반복해서 쓰며 아이를 낳게 되면 아들딸 구분 없이 미래라고 하자, 미래에는 남녀 구분이 사라질지도 모르고, 미래에는 아이를 낳지 않아도 아이가 있을지 모르고, 미래에는 미로로 만들어진 방과 건물, 도시의 길을 끊임없이 걸어도 지치지 않고 두렵지 않고 예기치 않은 조우와 나무가 우거진 광장을 가로지르는 자전거, 테라스를 맴도는 새 떼의 울음소리, 쇼윈도에 비친 초록색 베레모와 다리 아래를 오가는 작은 자동차 무리의 웅성거림에 귀 기울일지도 모르니 미래를 좋아했는지도 모릅니다.3)

   1970년 오사카 만국박람회를 앞두고 미래학 세미나에서 공부하고 박람회 안내원으로 일본에 다녀온 정태순의 목소리다. 왠지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열광적인 시대. 그 기분에 휩싸여 있는 정태순은 미래라는 말이 너무 좋다. 미래에는 남녀 구분도 두려움도 없을 것 같으니까. 미로로 만들어진 도시와 나무와 자전거와 새 떼와 베레모와 자동차 무리를 모두 만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여기에 발전과 번영을 내세우는 국가주의적인 근대 기획에 차출된 희생자의 목소리만 담겨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으로 이민 간 정태순이 40년 만에 본 한국에는 아케이드도 없고 세운상가도 허물어져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태순은 여전히 시간을 꿈꾼다. 여전히 세계는 불가해한 것투성이고 그 안에 어디에도 들어맞지 않는 기분에 시달리지만 사라지는 것들 사이에서도, 빛은 어디에서나 오니까. 그것을 보는 사람의 마음에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다.


인아영

낮아지고 있다.

2019/05/28
18호

1
백은선, 「사랑의 역사」, 『가능세계』, 문학과지성사, 2016, 100쪽.
2
박솔뫼, 「여름의 끝으로」, 『사랑하는 개』, 스위밍꿀, 2018, 101쪽.
3
정지돈, 「빛은 어디에서나 온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기억에서 살 것이다』, 워크룸프레스, 2019, 6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