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리스트
6회 꺼내 먹어요
사랑의 맛
은교 씨는 갈비탕을 좋아하나요.
좋아해요.
나는 냉면을 좋아합니다.
그런가요.
또 무엇을 좋아하나요.
이것저것 좋아하는데요.
어떤 것이요.
그냥 이것저것을.
나는 쇄골이 반듯한 사람이 좋습니다.
그렇군요.
좋아합니다.
쇄골을요?
은교 씨를요.
……나는 쇄골이 하나도 반듯하지 않은데요.
반듯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좋은 거지요.
그렇게 되나요.
계란 먹을래요?1)
쇄골이 반듯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좋은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을 위해 하나뿐인 계란을 나누어주는 사람. 계란을 반으로 나누어 먹으며 무심코 마주한 거울에 비친 것은 빨개진 얼굴의 나. “왜 그렇게 땀을 흘리냐”는 물음에 그저 “탕이 너무 뜨거워서”라고 말할 수밖에 없고, 그 어쩔 수 없음은 그저 사랑임이 분명하다. 『百의 그림자』의 두 인물 은교와 무재의 대화는 사랑을 시작하는 연인들의 그것처럼 달콤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이런저런 미사여구 없이도 그저 있는 그대로의 당신이 좋다고 말하기 때문에 오히려 여실한 사랑을 실감하게 된다. 이 사랑에 맛을 더해주는 건 담백한 대화를 나누는 시간 동안 같이 먹은 음식들이다. 눅진한 청포도 껌, 냉면과 갈비탕, 샌드위치와 우유, 닭튀김, 메밀국수, 조개탕, 군밤…… 찬 음식을 먹은 다음에는 따뜻한 것을 먹으러 가자고 약속할 수 있고, 그 약속을 지키는 사이가 되고, 그렇게 함께하는 시간을 지나면서 등뒤에서 일어나 따라오는 그림자 같은 건 더이상 그들에게 아무런 해도 되지 않는다. 이제 “따라오는 그림자 같은 것은 전혀 무섭지 않았다”고 말하며 은교와 무재는 걸음을 같이한다. 불빛이 닿지 않는 곳이라도, 그곳이 어둠의 한가운데일지라도 서로의 손을 잡고 나아간다. 이것은 계속해서 먹고 싶은 사랑의 맛인 것만 같다.
기쁨(joy)의 맛
조이의 어금니 중 하나는 박하사탕일 것이다
나는 늘 그 안쪽을 열심히 핥아 주고 싶었다2)
여기 사랑하는 이와의 첫 키스를 꿈꾸는 한 사람이 있다. 박하사탕일 것만 같은 조이의 어금니를 핥는 것으로 시작된 우리의 키스는 “조이가 매일 쏟았던 홍차의 테두리를 더 진하게, 진하게 그려 줄 것”이고, “조이와는 틀림없이 그럴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 연인과 미래의 행복을 그려보는 이의 목소리에는 더없을 만큼의 확신이 가득해서, 읽는 이조차도 ‘틀림없이 그럴 것’인 조이와의 키스를 상상해본다. 가령 “조이라고 말하면/ 그래 나는 조이”라고 “대양을 벌려 한 번 더 말해 주는 입술”(「조이라고 말하면 조이라고」)이라면 가능한 것, 그렇게 너와 내가 조이 그리고 조이, 한 번씩 서로의 기쁨을 중얼거릴 때, 우리의 입안에 번지는 박하향의 이것은 틀림없이 기쁨의 맛이라고. 사랑하는 이들의 키스가 아니더라도 『조이와의 키스』에 실린 시편들은 각기 그만큼의 맛을 낸다. 달콤하면서도 시원하고 어쩐지 서늘한 맛. 조이와 링고(조이의 개)와 당근밭을 구르며 시간을 보낼 때, 조이와의 여행에서 포도를 먹을 때는 그저 달콤한 것처럼 보이지만, ‘나’를 소개하자면 불현듯 떠오르는 유년의 기억에 내포된 서늘함이 그렇다. 기쁨을 말하는 배수연의 시는 마냥의 것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캔버스를 삶고 물감을 굽고 기름을 바르고 커튼을 담그고 앵무새를 튀기고 촛불에 양념장을 칠하는 그런 시간”(「유나의 맛」)을 건너 우리에게 닿은 여러 겹의 기억과 감정이며, 시인에게 기쁨이란 겹겹의 무언가에서 가장 깊은 곳에 깔려 있는 진실한 열망이다. 읽는 이로 하여금 “그 안쪽을 열심히 핥아 주고 싶”게끔 하는 열망을, 새로운 맛을 『조이와의 키스』에서 맛본다.
실패의 맛, 다음은 희망의 맛
우지가 내게 초밥을 내밀며 말했다. 나는 무심결에 손을 뻗어 우지가 내민 것을 받았다. 연어초밥이었다. 생전 처음 초밥을 보는 사람처럼 그것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거 싫으면 다른 걸로 줄까?”
우지가 물었다.
“오도로는 없어?”
우지가 코웃음을 쳤다.
“난 좋은 걸 먼저 해치우는 타입이야.”3)
우지와 나의 이야기는 한 편의 블랙 코미디 같다. 낮에는 페이퍼컴퍼니 투자로 그들을 등친 친구를 찾아다니고 밤에는 술을 마신다. 그마저도 얼마가지 않아 하루 종일 술을 마시고, 그러다 누군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깔깔대고 웃는 것이 그들의 일과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예 웃을 일이 없었”기 때문에. 실패의 나날에 억지로 웃음을 이어붙이던 것도 잠시, 우지는 알코올의존증 치료센터로, 나는 고시원으로 흩어져 그마저의 웃음까지도 잃는다. 서로에게 서로가 없다면, 우리에게 남은 건 무엇일까. 더이상 나에게 남은 게 있긴 한 걸까. 그리고 센터에 들어간 지 87일. 87일 만에 우지가 나를 찾는다. 그들은 작은 방에 앉아 물을 마시고, 사탕을 먹고, 껌을 씹고, 초밥을 나누어 먹는다. 술을 마시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씹고 먹는 우지와 그런 우지를 지켜보는 나. 완전하지 않지만 마주앉은 둘의 모습에서 조금의 안정이 느껴졌다면, 우지가 손을 내밀고, 내가 우지의 손을 마주잡을 때, 실패했지만 이제 막 또다른 시작을 해보려는 두 사람에게서 희망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의 무언가가 반짝이고 있다면 착각일까? 작가의 말에서 편혜영은 이 책에 “우리들의 실패”라는 제목을 붙여두었다고 했다. “우연에 미숙하고, 두려워서 모른 척하거나 오직 잃은 것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랬지만, “아픈 사람들이 많은 소설이어서 실패라는 말을 나란히 두기 힘들었다”고. 그러나 영영 몰랐으면 좋았을 실패의 맛 다음에 올 것은 더욱 달게 느껴질 것이라서, 나는 실패 이후의 이야기를 기다린다. 다음의 맛을 알고 싶다.
소유정
젤리, 젤리, 젤리. 젤리 안에 사랑과 기쁨, 실패와 희망 그 밖의 모든 것이 있다고 믿는 사람. 젤리가 세상을 구할 것입니다.
2019/07/30
20호
- 1
- 황정은, 『百의 그림자』, 민음사, 2010, 39쪽.
- 2
- 배수연, 「조이와의 키스」, 『조이와의 키스』, 민음사, 2018, 16쪽.
- 3
- 편혜영, 「우리가 나란히」, 『소년이로』, 문학과지성사, 2019, 6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