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완행
처음 그가 학생으로 매칭되었을 때, 한국어가 서툰 교포일 거라 생각했다. 전화 한국어 수강생은 대부분 간단한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외국 여성이거나 교포였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경모님은 사투리를 쓰는 오십대 중반의 남자였다. 첫 수업 시간, 그는 내게 일주일에 두 번, 수업 대신 말 상대가 되어달라고 했다. 처음에는 그의 제안을 거절할 생각이었다. 묘하게 굴욕적인 기분이 들어서였다. 돈을 벌 목적으로 시작한 아르바이트이지만, 엄연히 가르치는 일이었다. 경모님의 요구는 그 일의 미약한 존엄성마저 깎아내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두번째 수업을 마친 뒤, 나는 딱 한 달만 해보자는 심정이 되었다. 들어주고 맞장구쳐주면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란 얼마나 편리한가. 거기다가 이십 분은 긴 시간도 아니었다. 몸에 달라붙는 유니폼을 입고 온종일 마권을 파는 일에 비하면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다행히 경모님은 예의 바른 수강생이었다. 그는 이 수업이 ‘한국어 연습’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해당한다면, 자기만큼 적격인 수강생은 없을 거라 했다. 그는 해전시 인근 사령부에서 근무하던 퇴역 해군 부사관이었다. 이십팔 년간 근속한 뒤 재작년 퇴직하였다. 아내와는 작년에 사별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냈다. 나와 전화하는 이십 분을 제외하면 누구와도 대화 나눌 기회가 없었다.
“말하는 법을 잊어버릴까봐 무섭습니다.”
첫 수업이 끝날 때 그가 말했다.
그는 아들의 실종에 관련된 일이라면 사소한 것도 궁금해했다. 얼핏 보기에 무관한 흔적이라도 아귀를 잘 맞추면 아들을 찾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굳게 믿었다.
“아이가 탄 좌석은 21E였어요. 왜 그 좌석을 선택했을까요?”
“그게 중요한가요?”
“중요할 수도 있지요. 불편한 자리잖아요.”
그의 말에 의하면, 21E석은 통로도 창가도 아닌, 사방이 막힌 답답한 자리였다. 사정이 있었으리라는 내 말에 경모님은 그럴 리 없다고 했다. 아들은 평소에 철두철미한 성격이라서 불편한 자리를 선택할 리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말해놓고 그는 한동안 뜸을 들였다. 그러더니 확신이 없는 듯 ‘글쎄요, 철두철미했던 것 같아요.’라고 어미를 바꾸었다.
경모님은 아들이 집을 나설 때 어떤 표정이었는지, 무슨 색깔 양말을 신었는지, 왜 여권 커버는 놔두고 여권만 가져갔는지, 사사로운 일까지 의미를 부여했다. 아들의 사소한 행동이 모두 실종과 관계된 증거라도 되는 듯. 수업 회차가 거듭될수록 나는 경모님의 근거 없는 의문과 집착에 슬슬 진력이 났다. 자주 손목시계를 들여다봤고, 얼른 이십 분이 지나가길 바라곤 했다.
그런데도 나는 경모님과의 수업을 중단하지 않았다. 나도 그에게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내 안부를 묻고 들어주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와 수업을 시작하기 전까지 누구도 내 안녕에 관심이 없었다.
우리가 꽤 가까워졌다고 믿을 만한 시점, 나는 경모님에게 경마장 매표소에서 아르바이트한다고 말했다. 돈을 벌어서 삼촌에게서 독립하고 싶다고 했다. 숙모가 술에 취해서 자꾸 집에 불을 지른다고 털어놓았다. 그녀가 성공적으로 불을 지르면, 나는 자다가 죽을 수도 있었다.
경모님은 내가 삼촌의 집에서 살게 된 이유나 숙모가 습관적으로 방화를 저지르는 이유를 캐묻지 않았다. 덕분에 채석장 사고와 아버지의 죽음, 어머니의 가출에 대해 억지로 말할 필요가 없었다. 대신 그는 ‘경마장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나는 앞으로도 절대 갈 필요 없는 곳이라고 답했다.
“거긴 주로 어떤 사람이 옵니까?”
그가 물었다.
“잃은 걸 되찾고 싶은 사람들이요.”
내가 답했다.
경모님과 수업이 끝난 뒤에도 두 시간 동안 세 명과 수업을 더 진행했다. 마지막 수업이 끝난 뒤에는 까무러치듯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새벽 6시, 평소처럼 삼촌 집을 나섰다. 아직 사위가 어두운 시각이었다. 삼십 분에 한 대 운행하는 0번 시외버스를 타고 한 시간가량 도시의 동쪽으로 가면 종점인 런파크에 도착했다. 런파크에서 일한 지 올해로 삼 년째가 되었다. 출근하면 가장 먼저 로커에서 유니폼을 꺼내 입었다. 손목에 때가 시커멓게 탄 블라우스는 품이 작았다. 아르바이트생은 모두 전임자가 입던 유니폼을 물려받기 때문에 품이 지나치게 크거나 작았다. 유니폼은 아르바이트생을 지켜주는 유일하지만 보잘것없는 방패였다. 폐장 시간이 되면 돈을 잃은 사람들은 유니폼을 입은 여직원을 가장 먼저 공격했다. 그들은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물건을 던졌다. 말에게 물건을 던질 수 없는 노릇이니까. 나는 호치키스나 껌 붙은 구두 따위로 머리를 맞았다. 그런데도 이 일을 그만둘 수 없었다. 다른 일에 비해 보수가 월등히 높기 때문이었다. 돈을 얼른 모아야 삼촌에게서 독립할 수 있으므로 내게 더 나은 선택지는 없었다.
경모님은 단 한 번도 수업에 빠지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제시간에 전화받았고, 내 안부를 묻는 걸 잊지 않았다. 수업 시간 내내 그는 아들의 실종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마치 영영 목적지에 닿을 수 없는 여행을 떠난 기분이 들었다. 아들을 찾기 전에는 끝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야기는 희망적이기도, 절망적이기도 했다. 그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내내 온화했지만, 가끔 감정이 격해져서 호통을 치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냉정함을 되찾았고, 약속된 수업 시간은 절대 넘기지 않았다.
발권 창구에서 수속을 기다리며 항공사 직원에게 아들이 실종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긴장되었나봐요. 누구에게 무슨 이야기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습니다. 묻지 않은 사연을 불쑥 듣게 된 창구 직원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는 내 캐리어에 수하물 태그를 붙이며, 요즘 젊은이들이 혼자 H국에 입국하는 일이 잦다고 하더군요. “무사하길 바랍니다.” 직원이 저를 보며 미소 지었습니다. 제겐 그 미소마저 불길한 신호 같더군요.
H국까지 비행시간은 총 네 시간 반이었습니다. 짐을 찾아 공항을 나섰는데 지옥이 따로 없더군요. 그토록 지독한 황사는 처음이었습니다. 숨쉬거나 눈을 뜰 수 없었지요. 몇 번 숨을 들이켰더니 입에서 모래 알갱이가 씹힐 정도였습니다. 날은 또 얼마나 더운지 픽업 차량을 기다리는 오 분 동안 피부가 새빨갛게 익었습니다. 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아들은 대체 왜 이곳에 왔을까요.
처음에는 아들의 실종 사건에 배당된 현지 경찰과 동행했습니다. 그들의 도움으로 카드 사용처와 숙박 기록, CCTV에 찍힌 아들의 흔적을 따라 수색을 진행했지요. 아들의 휴대전화는 꺼져 있었습니다. 마지막 통화 상대는 다름 아닌 엄마, 제 죽은 아내였습니다. 아내가 죽기 전까지 후회하던 바로 그 통화였어요. 그때 아내는 아들에게 어디 가느냐, 무엇을 할 계획이냐고 묻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내는 아들의 성장을 인정해주는 방법의 하나가 믿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간섭하지 않고 무조건 신뢰한다는 뜻입니다. 저는 아내의 가치관이 무책임하다고 느끼곤 했습니다. 그 빌어먹을 신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게 아닙니까?
전원이 꺼지기 전 인근 기지국과 교신한 마지막 신호 위치는 G구역이었습니다. 경찰은 난색을 표했습니다. G구역은 접근하기 까다로운 곳이라고 하더군요. 며칠간 절차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수색을 차일피일 미루었습니다.
그사이 H국은 건기에서 우기로 접어들었습니다. 모래바람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온종일 비가 내리고 천둥이 쳤습니다. 저지대부터 물에 잠기기 시작했어요. 하루아침에 수십 명이 물에 떠밀려서 실종됐습니다. 경찰은 자국에 닥친 재난을 수습하느라 타국 청년의 실종에 신경 쓸 겨를이 없어 보였습니다.
저는 아들이 예약했던 숙소와 같은 곳에서 머물렀습니다. 숙소는 저지대에 위치한 비즈니스호텔이었습니다. 폭우가 내리자, 가장 먼저 물이 밀고 들어왔지요. 순식간에 프런트와 로비에 발목까지 물이 찼어요. 쥐와 바퀴벌레 사체가 검은 물 위에 떠올랐습니다. 저는 제 팔뚝만한 시궁쥐를 보자마자 놀라서 몸이 굳었습니다. 깨끗했던 호텔 내부에서 쥐를 볼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H국이 속속들이 절 속이는 기분이었습니다.
로비가 침수된 뒤부터 호텔의 출입이 통제되었습니다. 저는 방에서 사흘 동안 꼼짝할 수 없었습니다.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는 것도 지긋지긋해졌습니다. 그래서 텔레비전을 켰어요. 저는 H국의 언어를 단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합니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제 이름은 김경모입니다, 저는 아들을 찾고 있습니다, 정도의 문장이 제가 구사할 수 있는 H국 언어의 전부이지요. 영어를 배워뒀으면 조금 나았을까요. 핑계를 대자면, 저는 영어를 쓸 일이 없었습니다. 전역하고 나서 해전시 근처에서 아내와 작은 민박을 운영했는데, 외국인 관광객은 단 한 명도 찾아온 적이 없어요. 손님은 주로 바다낚시를 하는 제 또래 남자들이었거든요. 아들은 저랑 달랐어요. 지방 국립대를 졸업하고 영어와 H국의 언어를 서툴게나마 구사했습니다. 저는 그 사실이 늘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지금은요. 배움이 아들을 실종 상태로 몰고 간 게 아닌가 한탄스러울 따름입니다.
하루 종일 침대에 앉아서 텔레비전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서너 시간은 홈쇼핑을, 나머지 서너 시간은 배드민턴 경기를, 또 나머지 서너 시간은 뉴스를 틀어놓았습니다. 아들이라면 저 말을 알아들을 텐데. 양말 광고를 멍하게 바라보다가 아들 생각이 나서 기분이 울적해졌습니다. 세상과 아들 사이에서 철저히 소외된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모르는 게 너무 많았습니다. 아들도, 아들이 속한 세상에 대해서도 무지했습니다. 그걸 깨닫는 순간 저도 모르게 목놓아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아들을 찾지 못하리라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거든요.
울음을 그쳤을 때, 텔레비전에서는 아이스크림 광고가 나오는 중이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더군요. 얼굴에 덕지덕지 엉겨붙은 눈물을 닦고 커튼을 열어 밖을 내다봤습니다. 맨눈으로 형태가 또렷이 보일 정도로 빗발이 굵었습니다. 땅은 맹수처럼 입을 벌려 비를 빨아들였지요. 도시가 완전히 어둠에 잠겼는데도 저는 창문 앞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어디선가 비를 잔뜩 맞고 있을 아들의 모습이 떠올라서요. 얼마나 춥고 무서울까……
한국에서 싸 온 밑반찬과 김치, 즉석밥은 나흘 만에 거덜 났습니다. 비가 그친 날 오후, 저는 가방을 챙겨서 호텔 문을 나섰습니다. 거리 곳곳에 빗물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지요. 덥고 습해서 당장이라도 정신을 놓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가방을 고쳐 메고 트램정류장을 향해 걸었습니다. 이젠 정말 혼자라는 심정이었습니다.
호텔 앞 정류장에서 2A트램을 탔습니다. 아들이라면 트램을 이용했을 겁니다. 버스는 노선이 복잡해서 대부분의 여행객이 이용하지 않는 게 상식이었지요. 제 아들은 상식에 벗어나는 일을 하는 성격이 아니고요.
낡은 트램은 냉방이 되지 않았습니다. 지친 표정을 한 승객들은 하나같이 의자에 몸을 늘어뜨린 채 하염없이 창밖만 내다봤습니다. 저도 창밖으로 느리게 지나가는 도시의 풍경을 무심히 바라보았습니다. 실은 너무 더워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지요. 그때 동남아 여성으로 보이는 베이비시터가 교복 입은 남자아이의 손을 잡고 차량 앞쪽에 자리잡았습니다. 시터는 의자에 앉자마자 손으로 부채질했지요. 아이는 심심했는지 시터의 몸에 제 몸을 비비다가, 발로 앞좌석을 툭툭 차기 시작했습니다. 시터는 아이를 말리지 않고 고개를 창밖으로 돌렸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시트를 차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었습니다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관심이 필요했을 뿐이니까요. 저는 알아요. 아들을 키울 땐 몰랐지만요.
시터는 그사이 고개를 떨어뜨린 채 졸고 있었습니다. 열린 창으로 불어드는 습한 바람에 머리카락이 얼굴 위에서 헝클어지는 줄도 모르고요. 아이는 무료한 표정으로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저와 아이의 눈이 마주쳤지요.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시터의 팔 뒤로 얼굴을 파묻었습니다.
저는 아들의 어린 시절을 기억해보려고 애썼으나 실패했습니다. 아들이 한창 자랄 때 저는 언제나 배를 타는 중이었지요. 소말리아로, 아랍에미리트, 이집트로 출항했습니다. 한 번 배를 타면 적어도 삼 개월은 집에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그 사이 아들은 훌쩍 컸지요. 앞니가 나고, 걸음을 떼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섯 살이 되기 전에는 제가 집에 돌아오면 아들이 자지러지게 울었습니다. 새까맣게 그은 제 모습이 낯설고 무서웠겠지요. 학교에 들어간 뒤부터는 울지 않았습니다. 대신 원래 없던 사람처럼 대하더군요. 저의 존재나 부재가 자신의 삶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걸 기를 쓰고 보여주려했습니다. 지금은 압니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무시한 채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때는 아들이 야속할 뿐이었습니다. 배를 타는 건 제 선택이 아니지 않습니까. 제가 전역하면 누가 가족을 먹여 살리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아들과 시비를 가릴 생각이 없었습니다. 마음을 다치기 싫었거든요. 아들의 마음이 아닌 제 마음이요. 육지에 있을 때만이라도 속 편히 쉬고 싶었습니다. 지금은 후회합니다. 차라리 싸웠더라면 어땠을까요. 그랬다면 지금 아들의 의중을 훨씬 헤아리기 쉬웠을까요.
2A트램의 종점은 G구역입니다. 관광객들에게는 위험지역으로 알려진 곳이지요. H국 동쪽 끝에 위치한 슬럼가로 마약과 인신매매, 강제 노동이 횡행한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그곳에 간 건 H국 경찰 중 하나가 귀띔해준 정보 때문이었습니다. 국경이 맞닿아 있는 사실상 치외법권이라 경찰이 수색하기 꺼리지만, 실종자가 제일 마지막에 발견되는 곳은 보통 G구역이라고요. 대부분 시신으로 발견된다는 말도 덧붙였지요.
G구역으로 진입하는 입구는 좁고 어두웠습니다. 흡사 지옥으로 향하는 문 같았지요. 입구에 서서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저는 비겁했습니다. 그 순간 두려움이, 살고 싶은 마음이 아들을 찾고 싶다는 간절함을 앞선 거지요. 머뭇거리는 동안 바닥에 고인 오수가 트래킹화 아래로 스며드는 게 느껴졌습니다. 몸에 기분 나쁜 한기가 들더군요.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본 골목은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얼굴에 떼가 잔뜩 낀 아이 한 무리가 쉰 냄새를 풍기며 빠르게 골목에서 빠져나왔습니다. 그뒤로 마르고 얼굴이 뭉그러진 사내가 밀가루 포대를 실은 수레를 끌고 다가왔습니다. 저는 놀라서 건물 벽으로 몸을 바짝 붙였습니다. 자리를 빼앗긴 고양이가 날카롭게 울더니 건물 사이로 재빠르게 몸을 감추었습니다. 수레를 끄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들고났지만, 정작 포대 자루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머리 위로 어지럽게 늘어진 전선과 향신료 냄새, 난간에 아무렇게나 걸린 옷가지에서 겨우 인적을 가늠할 뿐이었습니다.
저는 아들이 절대 이런 곳에 올 리가 없다고 생각하며 다시 트램 정류장으로 몸을 돌렸습니다. 절대 일어나지 않는 일이란 없다는 걸 알면서도요. 스스로를 기만한 거지요. 도무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더군요. 그 순간 제 머릿속에 든 생각은 오직 한 가지였습니다. 아들에 대해 아는 게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라.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아들을 찾고 싶으면 저 어둠 속으로 들어가라. 그러나 제겐 도무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얼마나 더 많은 길을 돌고 돌아야 하는 걸까요.
그는 삼고초려 끝에 만난 가이드와 세 번에 걸쳐 G구역을 수색했다. 마지막 날에는 하마터면 강도를 만나 목숨을 잃을 뻔했다. 그는 목에 칼이 들어온다는 말을 직접 경험했다. 가이드가 겨우 중재해서 현금 다발이 든 지갑을 통째로 안겨준 뒤, 가까스로 그곳을 빠져나왔다.
경모님은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아들을 찾는 데에 실패했지만, 여전히 아들이 살아 있다고 믿었다. 그는 민박집을 정리한 뒤 다시 H국으로 떠날 계획이었다. 그러나 십여 년 이어온 삶을 단 며칠 만에 정리하고 떠나는 건 불가능했다. 결국 아들을 찾는 데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외교부 직원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미련은 매 순간 경모님을 괴롭혔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는 H국에 있었다. 2A트램을 타고 아들을 찾아 나섰다.
“평생 아들이 실종된 채 살아온 기분입니다.”
그는 아들이 실종되기 전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기억할 수 없다고 했다. 이전의 삶이 모두 백지가 되어버린 것 같다고.
“저도요. 평생 경마장에서 일한 기분이 들어요.”
내가 답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나는 그 침묵의 시간을 이해의 순간이라고 여겼다. 어떤 사건은 너무나 강렬한 나머지 남은 인생을 송두리째 잡아먹는다. 내겐 칠 년 전 겨울 채석장에서 일어난 폭발 사고가 그랬다. 0번 버스의 반대편 종점인 채석장 저수지에서 나의 아버지가 죽은 채 발견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전의 삶을 전혀 기억할 수 없었다.
채석장을 둘러싼 일은 모두 불법이었다. 채석장은 사고 전 지반 약화로 발굴이 금지된 상태였다. 아버지는 인부들에게 몰래 야간작업하는 대가로 두 배의 금액을 약속했다. 사고 현장에서 무수히 많은 담배꽁초와 불을 땐 자국이 발견되었다. 흡연은 안전 수칙상 금지 사항이었다. 발파작업을 하려고 심어놓은 뇌관에 불이 옮겨붙을 위험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모르는 척했다. 인부들의 심기를 건드리기 싫어서였다. 누군가 홧김에 신고하면 벌금으로 때울 생각이었다. 오산이었다. 아버지는 벌금 대신 목숨으로 값을 치렀다. 사고가 났을 때 아버지는 운이 없었다고 한탄했다. 그러나 운이 없어서 일어난 사고는 대부분 예견된 일일 때가 많았다.
채석장 곳곳에 CCTV가 설치되어 있었다. 아버지가 현장을 감시하기 위해 설치한 것이었다. 인부들은 자주 게으름을 부렸고 턱없이 적은 양의 작업물을 내밀고도 뻔뻔하기 일쑤였다.
사고 장면은 CCTV에 고스란히 찍혀 있었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날이었다. 인부 다섯이 모닥불 피운 뒤 주위에 둘러앉았다. 싸움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갑자기 인부 한 명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누군가 그의 팔을 끌어 다시 자리에 앉히려고 했다. 인부들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몸싸움도 격해졌다. 누군가 발길질했고, 또다른 누군가가 돌을 집어 던졌다. 그러자 다른 인부들이 기다렸다는 듯 손에 잡히는 대로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돌이 사방으로 날아다녔다. 채석장 주위에는 널린 무기가 돌이었다.
그때 발길질하던 인부가 뇌관이 심긴 땅을 바라보았다. 그는 말릴 새 없이 그 지점을 향해 정확히 조준해서 담배를 던졌다. CCTV 화면에 손톱만한 담뱃불이 번쩍였다. 나머지 네 사람은 순식간에 얼음처럼 굳었다. 그게 마지막 장면이었다.
사고 한 달 후, 아버지는 절벽에서 저수지로 투신했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날이었다. 에메랄드빛 저수지 한가운데 아버지의 시신은 홀로 떠 있었다.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불어터진 시신 위에서 빗방울이 요란하게 부서졌다. 그날 이후 채석장은 폐쇄되었다. 경찰은 진입 금지 조치와 더불어 철조망으로 저수지 주변을 빼곡하게 둘렀다. 컨테이너, 채굴 장비, 사무 집기는 그 자리에 고스란히 버려졌다.
부모가 사고를 당하면, 아이는 누군가 떠맡아야 할 책임이 된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후 어머니가 사라지면서 내 처지도 마찬가지였다. ‘너의 어머니는 절명의 위협을 느꼈단다.’ 삼촌은 ‘절명’이라는 단어를 힘주어 말했다. 무슨 뜻인지 몰라도 무서운 단어 같았다. 어머니가 꽤 오랜 시간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뜻으로도 받아들여졌다. 네 어머니를 이해해야 한다. 삼촌은 의무적인 말투로 말했다.
우리 모녀가 처한 위기를 나도 잘 알았다. 누군가 돌을 던져 안방 유리창을 깨고 문 앞에 오물을 투척했다. 매일 미행당했기 때문에 우리는 집 근처 슈퍼마켓도 갈 수 없었다. 학교도 가지 못했다. 이해할 수 없는 건 그런 짓을 일삼는 사람이 동네 주민이라는 점이었다. 그들은 채석장 사고와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그들을 움직이게 만든 건 출처를 알 수 없는 분노였다. 익명의 분노는 저지대로 흐르는 빗물처럼 빠르고 거세게 나와 엄마의 삶 속으로 밀려들었다.
삼촌은 채석장과 한 시간 떨어진 도시 외곽의 다세대 주택에 살았다. 그는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특이한 생활용품을 만들어서 특허를 내고 그걸 팔러 시골 축제에 다니느라 바빴다. 삼촌이 파는 물건은 이쑤시개 통이나 만능 줄자 같은 쓸모없는 것들이었다. 나의 유일한 동거인은 숙모였다. 숙모는 항상 술기운 때문에 얼굴이 벌겠다. 숙모는 나의 아버지가 생전에 몰래 생활비를 부쳤다고 말했다. 무능한 동생을 둔 까닭이었다. “너희 아버지는 날 거지 취급했어.” 숙모가 중얼거렸다. 그러다가도 아버지를 원망해선 안 된다고 말을 고쳤다. 절박하면 누구나 미치기 마련이라고. 미친 사람에게 법이 다 무슨 소용이냐고 했다. 숙모는 아버지에게 증오와 연민을 동시에 느끼는 것 같았다. 정확히는 자기 스스로에게 증오와 연민을 느꼈다.
삼촌과 숙모는 안전한 사람이 아니었다. 언젠가 둘 중에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일지도 몰랐다. 싸움이 붙으면 삼촌은 식칼을 찾았고, 숙모는 담배를 찾았다. 싸움이 절정에 다다르면 숙모는 불붙인 담배를 이불이나 소파에 던졌다. 집에 연기가 자욱할 때쯤 숙모는 다급히 나를 불렀다. 그제야 정신이 들어서 소화기로 불씨를 잠재우고 문을 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걸 실감했다.
나는 밤마다 바닥에 누워서 집요하게 사고 현장을 그렸다. 인부들의 싸움과 아버지가 절벽에서 몸을 던지는 모습을 몇 번이고 재생했다.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그 사고를 이해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래야만 어떻게 해서든 살아갈 수 있었다. 붕괴하는 절벽, 굉음과 파편, 찢긴 채 허공에서 흩어지는 시체, 쭈글쭈글하게 불어서 저수지에 떠 있는 아버지의 시신…… 폭발이 일어난 순간은 숨쉬듯 머릿속에서 반복되었다.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듣던 경모님은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선생님, 정말 아버지의 익사체를 보셨습니까?”
“네?”
“저는 근무할 때 두 번 봤습니다. 하나는 동료 부사관, 다른 하나는 훈련병의 것이었지요.”
“그렇군요.”
“익사체가 가장 끔찍합니다. 신원 확인이 어려울 지경이지요. 본 기억을 통째로 잊고 싶어집니다.”
경모님이 뜸을 들이다가 어렵사리 질문을 던졌다.
“정말 사고 현장에 계셨습니까?”
나는 답하지 못했다. 경모님은 내게 답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는 어떻게 알았을까. 내가 사고를 목격한 적 없다는 사실을.
그렇다. 나는 사고를 목격한 적이 없다. 심지어 한 번도 채석장에 가보지 않았다. CCTV도 본 적이 없었다. 어른들의 말과 인터넷에서 찾아본 단신 기사. 실은 그것이 내가 사고에 대해 아는 전부였다. 나는 내가 만든 이야기를 온 힘을 다해 진심으로 믿었다. 영문도 모르는 채 너무 많은 죽음이 나를 밟고 지나갔다. 그렇다. 나에겐 맹목적인 믿음이 필요했다. 그 믿음이야말로 내가 손에 쥔 유일한 돌이었다.
“외교부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곧 H국으로 출국해야 합니다.”
“정말 잘 되었네요. 축하합니다.”
“글쎄요. 축하받을 일인지 모르겠군요.”
그렇게 말하는 경모님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침울했다.
“당장 비행기표를 구해야 하는데, 방학 시즌이라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한 좌석쯤은 있을 거라는 내 말에 경모님은 ‘매진’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대기를 걸어놓아보세요.”
“소용없을 것 같군요.”
“외교부에 전화해보는 건 어떤가요?”
“외교부가 없는 좌석을 만들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도대체 어떻게 하자는 거냐’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올랐다. 그때 수화기 너머에서 잠잠히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실은요.”
그는 이윽고 울먹이기 시작했다.
“네?”
“가기 싫습니다.”
전화를 끊은 뒤, 잠이 오지 않았다. 경모님이 걱정되었다. 그가 울먹인 적은 처음이었다. 냉정함을 되찾지 못한 채 수업을 끝낸 적도 없었다. 경모님께 전화해서 괜찮냐고 묻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우리를 연결하는 통로는 오직 K링고뿐이었다. 그간 우리는 K링고에서 제공된 회선으로만 통화했으므로 서로의 연락처를 알지 못했다. 어쩌면 그 점이 이제까지 우리의 대화에 자유를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전화를 끊고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면 그만이었으니까.
경모님은 K링고 시스템을 누구보다 잘 이용했다. 그는 그저 이야기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K링고 시스템 안에서라면, 그 이야기는 굳이 사실일 필요가 없었다.
나는 그간 H국이나 G구역에 대해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의 말에 진위가 내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 이야기가 사실인지 궁금해졌다. 설령 꾸며낸 이야기라고 해도 나를 기만했다고 여기지 않을 것이다.
그날 저녁, 나는 검색창을 열어 H국을 검색했다.
H국은 사고대책반을 꾸린 뒤 유해 발굴 작업을 이어갔다. 최근에도 두 구의 유해를 발견했다. 뼛조각이나 어금니 같은 신체 일부였다. 그중에는 이십대 한국인 남성이 포함된 것으로 밝혀졌다.
나는 그 유해가 경모님의 아들일 거라고 직감했다.
찾아본 결과, 그가 한 말이 모두 거짓은 아니었다. 일부는 분명한 사실이었다. 2A트램은 여전히 운행중이었다. 냉방이 안 되는 낡은 트램은 G구역 공원까지 가장 긴 노선을 오갔다. 삼 년 전 우기에 저지대에 위치한 비즈니스호텔이 빗물에 잠긴 것도 사실이었다. 그즈음 각종 여행 카페에는 죽은 채 부유하는 시궁쥐를 봤다는 증언이 잇달았다. 무엇보다 그의 아들이 실종 상태였다는 점. 그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나의 복잡한 마음이 무색하게 경모님은 아무 일도 없는 듯 전화를 받았다. 오늘은 그가 어떤 이야기를 할지 들어볼 생각이었다. 솔직히 나는 그의 이야기를 계속 듣고 싶었다. 그의 이야기는 어떤 사실보다 마음을 움직였다. 절실하고 진실했다. 나는 그의 이야기가 어떻게 마무리되는지 알고 싶었다.
그날도 나는 평소처럼 그의 안부를 묻는 걸로 수업을 시작했다.
“다음 수업 시간에는 H국에 있을 겁니다.”
그는 이틀 뒤 아침 H국으로 향하는 K항공을 탈 거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괜찮으면 입국할 때까지 수업을 쉬어도 좋다고 말했다. 그는 제안을 정중히 거절하며, 일주일 뒤 같은 시각에 연락하자고 했다. K링고 서비스는 전 세계 어디에서나 통화가 가능하게 설정되어 있었다.
“제가 겁이 나는 건 시신을 확인하는 게 아닙니다.”
“그럼요?”
“제가 아들을 알아볼 수 있을까요?”
경모님이 쓸쓸한 어조로 물었다. 그는 그동안 아들을 너무 많이 떠올린 나머지, 진짜 아들의 모습을 모르겠다고 했다.
“이해해요. 저도 같은 이유로 아버지가 기억나지 않거든요.”
“그렇군요.”
“반드시 알아볼 수 있을 겁니다.”
“고맙습니다.”
“유해를 어디서 발견했다던가요?”
“글쎄요. 그런 건 잘 모릅니다.”
“어쨌거나 잘 다녀오시길 바라요.”
궁금한 게 많았지만 그의 목소리가 지쳐 있었기에 더는 묻지 않기로 했다. 그가 거듭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이틀 뒤 H국으로 출발하는 비행기를 검색해보았다. 오전 9시 20분에 출발하는 K항공 한 대가 편성되어 있었다.
이튿날 새벽, 나는 0번 버스를 타는 대신 공항 리무진에 올라탔다.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집을 나섰지만 졸리지 않았다. 가슴이 뛰었다. 대책 없는 일을 벌이고 있다는 걸 알았다. 공항에서 경모님을 어떻게 알아본단 말인가. 심지어 나는 경모님의 얼굴도 몰랐다.
그런데도 내겐 경모님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있었다. 경모님을 찾는 것보다 오히려 그의 반응이 더 걱정되었다. 나는 K링고 시스템이 지닌 무언의 약속을 위반한 셈이었다. 이건 중요한 문제였다. 경모님이 K링고 측에 신고하면 나는 해고당할지도 몰랐다. 법적으로 문제가 된다면 벌금을 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에는 그런 위험까지 고려하고 싶지 않았다.
공항은 한산했다. 나는 여권이 없고 해외에 나가본 적이 없지만, 가끔 공항에 오곤 했다. 이곳에서만 맡을 수 있는 특별한 공기가 좋아서였다. 커피를 사서 한 시간 정도 수속 카운터 주변을 서성이다가 집에 돌아가면, 삼촌의 집을 떠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생기곤 했다.
K항공 수속 창구를 내다보며 공항을 서성였다. 한참 동안 기다렸지만 혼자 출국 수속하는 오십대 남자 승객은 보이지 않았다. 커피를 사서 의자에 앉았다. 형형색색의 캐리어를 바라보며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상상했다. 엄마는 맨몸으로 집을 나갔는데…… 어쩌면 캐리어는 귀환의 의지를 보여주는 건지도 모르겠다. 돌아오지 않을 사람은 가진 물건에도 미련이 없는 법이니까.
다행히 기다림은 길지 않았다. 멀리 배낭을 멘 오십대 승객이 K항공 수속 카운터로 걸어왔다. 경모님이 분명했다. 설명할 수 없지만, 그냥 알 수 있었다. 나는 남자가 출국 수속을 마칠 때까지 출구에서 기다리다가 그에게 다가갔다.
“저기, 혹시 김경모님 아니세요?”
남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그의 얼굴은 검고 주름이 많았다. 바로 이 사람이구나. 아들을 잃은 그 남자구나.
“저를 아십니까?”
“네. 저는 K링고……”
“아!”
그는 당황하며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묻고 싶은 게 있어서요.”
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나를 데리고 공항 동쪽 끝으로 갔다. 그곳은 비교적 한가했다. 우리는 나란히 의자에 앉았다. 그가 내게 알고 싶은 걸 물어보라고 했다. 나는 먼저 이렇게 불쑥 나타난 점을 사과했다. 그는 괜찮다는 말 대신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제 아들은 거짓말을 많이 했어요. 학교에 결석하는 건 우스운 수준이었죠. 제 돈과 카드를 훔쳐 며칠씩 가출하기도 했어요. 이유를 추궁하면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입을 꾹 다문 채 공허한 눈빛으로 허공을 쳐다볼 뿐이죠. 저는 아이를 다그치고 설득하고 심지어 주먹으로 때리기도 했습니다. 아무 의미 없는 짓이었지요. 아들은 제게 털어놓을 생각이 없었던 겁니다. 그런 아이였습니다. 그런데요. 제가 일전에 선생님께 말씀드린, 철두철미하고 상식적이며 겁이 많은 아이도 제 아들이 맞습니다. 탈선을 하더라도 늘 자기 궤도로 돌아왔거든요. 제게 무엇이 진짜 아들의 모습이냐고 물으신다면 모두 제 아들이라고 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경모님이 하신 이야기, 저는 거짓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거짓이 아니니까요.”
그는 부르튼 입술을 앙다문 채 정면을 응시했다.
“선생님께 들려드린 이야기는 제가 믿는 진실입니다. 그 이야기가 꼭 사실일 필요가 있나요?”
그는 끙, 소리를 내며 백팩을 어깨에 걸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감사합니다. 지루한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셔서요. 나중에 말씀드리려 했는데, 이제 더는 수업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왜요?”
“아들을 찾았으니까요. 제 이야기의 끝은 아들을 찾는 것이거든요.”
그는 보안 수속 장소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나도 그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수속장에 들어서기 전, 그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의 손을 맞잡았다.
“선생님. 채석장에 가보세요.”
“네?”
“거기서 선생님의 이야기를 끝내도록 하세요.”
그가 여권을 쥔 손을 흔들며 보안 수속장 안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채석장으로 향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굵은 빗발이 들이쳤다. 우산은 무용지물이었다. 나는 우산을 접어 가방에 넣고 비를 맞으며 채석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낮은 산 사이로 자갈이 깔린 길이 끝없이 펼쳐졌다. 그 길 끝에 채석장이 있었다. 정류장에서 채석장으로 이어지는 길 위에는 발자국은커녕 자동차 바큇자국조차 없었다. 나는 발길이 이끄는 대로 계속 안으로,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그리고 얼마나 걸었을까. 침몰한 선박을 떠올리게 하는 낡고 녹슨 장비들과 마주했다. 그것들은 유령처럼 채석장을 지켰다. 장비 옆에는 컨테이너 두 개가 문이 부서진 채 기역 자 모양으로 방치되어 있었다. 안전모, 책상, 커피포트 같은 사무용품과 용도를 알 수 없는 전선들이 컨테이너 바닥에 마구 늘어진 채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쓴 상태였다.
50미터쯤 더 걸어들어갔을 때, 절벽과 저수지가 나타났다. 저수지를 둘러싼 철조망은 내 키만큼 높았다. 이름 모를 덩굴 식물이 철조망을 촘촘히 감싸서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사고 위험. 진입 금지. 저수지의 수심이 깊습니다.’라는 낡은 팻말이 자갈 더미에 비스듬히 꽂혀 있었다.
나는 좌우를 오가며 철조망에 틈이 있는지 살폈다. 누군가는 비집고 들어간 흔적이 있을 것 같았다. 금지된 행동을 하는 사람은 어디든 존재하니까. 아니나다를까 한쪽 끄트머리에 철조망이 뜯긴 흔적을 발견했다. 어린아이가 드나들 수 있을 만한 크기의 틈이었다. 나는 몸을 둥글게 웅크린 채 틈 안으로 몸을 밀어넣었다. 팔뚝이 가시에 쓸려 생채기가 나는 줄도 모르고 안간힘을 써서 철조망을 통과했다.
절벽에 둘러싸인 에메랄드빛 저수지 표면에 빗방울이 부서지면서 물고기 비늘처럼 반짝였다. 고개를 들었을 때, 절벽 꼭대기에서 노송 한 그루를 발견했다. 내 기억에 등장한 적 없는 그 나무를 나는 낯설게 올려다보았다.
이곳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났고, 아버지가 죽었다. 그것이 전부다. 고요한 저수지가 내게 말했다. 나는 눈을 똑바로 들어 저수지와 절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 순간을 똑똑히 기억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눈물이 날 줄 알았는데,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저 크고 뭉뚝한 돌멩이들이 몸 안에서 밖으로 우르르 쏟아지는 기분이었다.
몸을 숙여 자갈을 골랐다. 가장 울퉁불퉁하고 흠이 많은 자갈을 집었다. 그리고 저수지를 향해 힘껏 던졌다. 자갈은 긴 호를 그리며 저수지를 향해 날아가더니 금세 자취를 감췄다.
전지영
2023년 조선일보 및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소설집 『타운하우스』가 있다.
당신이 슬픔의 순간을 건너는 방식을 떠올렸습니다. 긴 여정 끝에 마침내 당신의 슬픔이 나에게 닿길 바랍니다.
2026/10/21
8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