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핀, 핀, 핀
우리는 자정의 캠퍼스를 걷고 있었다. 사위는 어두운 데다 고요했다. 기숙사를 제외한 모든 건물에 불이 꺼져 있었고 몇 개의 가로등이 구석진 곳을 비추고 있을 뿐이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소란이 오가던 자리였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여섯 시가 되자마자 셔틀버스를 타고 떠났다. 등하교 시간에 맞춰 하루 두 번 운행하는 서울행 셔틀버스는 우리 학교의 몇 안 되는 자랑거리 중 하나였다. 학생들은 악착같이 버스에 올랐다. 버스를 놓쳤다간 웃돈을 주고 콜택시를 불러 읍내의 터미널까지 나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따금 셋방으로 올라가는 길에 그들을 내려다보곤 했다. 스무 대의 버스가 질서정연하게 교문을 빠져나가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서울로 향하는 차체에는 또 다른 자랑거리가 광고로 붙어 있었다. 서울까지 60분, 서울에서 가까운 우리 대학.
사방이 펜스로 막힌 테니스장에 도착했다. 입구는 자물쇠로 단단히 잠겨 있었다. 우리는 입구를 우회한 뒤 모서리 근처에 모여 앉았다. 규태가 길게 자란 잡초를 가르자 사람 한 명이 겨우 통과할 수 있을 만큼의 작은 구멍이 드러났다. 셋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매고 있던 배낭을 구멍 속으로 밀어 넘긴 뒤 몸을 구겨 넣기 시작했다. 규태와 민제는 다리부터 집어넣었고, 나는 낮은 포복으로 구멍을 통과했다.
코트 좀 같이 쓰면 덧나냐, 김진영 이 쿨하지 못한 새끼. 규태가 손을 털며 김진영을 씹었다. 김진영은 테니스 동아리 ‘텐’의 회장이었다. ‘텐’과 우리 ‘썬더 볼링즈’는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동아리실을 쓰는 이웃으로 이런저런 일을 핑계 삼아 왕래가 잦은 편이었다. 덕분에 김진영과도 왕왕 마주치곤 했는데, 저번 주엔 우연히 학생회관 앞에서 김진영을 만났다. 커다란 현수막을 혼자서 끙끙대며 설치하고 있길래 가벼운 마음으로 도와주었는데, 다 설치하고 보니 이런 문구가 쓰여 있었다. ‘영문학과 김진영 아마추어 테니스컵 우승’ 잠시 그것을 바라보던 나는 축하한다며 손을 내밀었다. 김진영은 고맙다고, 뒤풀이가 있을 예정이니 꼭 놀러오라고 대답했다.
내가 서기를 볼 차례였다. 나는 배낭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제28회 썬더 볼링즈배 정규 경기’라고 써넣었다. 각자의 배낭에서 볼링공과 핀, 소주병과 맥주 캔, 주전부리를 꺼냈다. 가위바위보로 순서를 정한 뒤 핀을 세트했다. 밑이 뚱뚱한 아메리칸 덕 핀 두 개, 스탠더드 텐 핀 여섯 개, 양초처럼 기다란 캔들 핀 하나와 유아용 완구 플라스틱 핀 하나였다. 볼링 동아리랍시고 여러 종류의 핀들을 구비한 것이 몇 년 전의 일이었는데, 그사이 벌써 몇 개가 분실되거나 파손되었다. 지난달엔 만취한 규태가 핀을 거꾸로 집어 들고 동아리실의 집기를 부쉈다. 마침 동아리방에 들른 나와 민제가 뜯어말렸지만 이미 두 개의 핀과 한 장의 거울, 세 개의 소주병이 박살 난 뒤였다.
민제는 첫 프레임부터 스트라이크를 쳤다. 힘이 실린 훅볼이었다. 꽈앙 하는 소리와 함께 핀들이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다. 나는 점수판 위에 스트라이크의 X를 그었다. 민제가 자신이 쓰러뜨린 핀들을 주워 모아 다시 세웠다. 볼을 이어받은 규태는 두 개의 핀을 남긴 뒤 커브 볼로 스페어 처리했다. 나는 스트레이트로 한가운데를 노렸지만 세 개의 핀을 남기고 말았다. 덕 핀, 캔들 핀, 플라스틱 핀이었다. 우리는 구석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첫 번째 프레임에 관한 평을 나누었다. 원래는 아마추어로써 실력을 기르자는 취지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대개는 말싸움으로 번지거나 (서로에게) 상처만 남겼다.
볼링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단다. 아버지는 티브이 속 선수들을 보며 그렇게 말씀하셨다. 저 사람은 스텝이 급한 걸 보니 성격도 그렇겠구나. 저렇게 스냅이 엉성한 인간들은 우유부단하단다. 손목을 조여야 할지, 손가락을 조여야 할지 늘 고민하기 때문이지. 사실은 둘 다 중요한 데도 말이야. 나는 물었다. 그러면 아버지는요?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그저 다리 사이에 품은 볼링공을 자식인 듯 소중히 닦고 닦을 뿐이었다. 대학에 들어온 뒤로 종종 그 말이 떠올랐다. 민제와 규태의 볼링을 보면 꽤 일리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가령 훅볼을 즐기는 민제의 경우. 일직선으로 전진하다가 핀에 가까워질수록 급한 커브를 만드는 훅볼처럼, 민제의 말은 언제나 결정적 순간에 뒤집혔다. 술을 사겠다며 불러내놓곤 뒤집어씌우질 않나, 숙소의 예약금까지 지불한 여행을 하루 앞두고 번복하질 않나. 저번에는 갑자기 여자를 소개시켜 주겠다며 나를 귀찮게 했다. 스터디에서 만난 애야. 민제는 손가락으로 핸드폰 화면을 휙휙 넘기며 사진을 보여주었다. 어떠냐? 눈이 크고 이마가 하얬다. 괜찮네, 나는 시큰둥한 척 전화번호를 넘겨받았다. 그 애와는 얼마 못 가 싱겁게 끝났다. 만날 타이밍이나 장소 따위를 고르다가 어영부영 연락이 끊어졌다. 그리고 며칠 뒤 민제가 그 애와 사귀고 있다 나에게 실토했을 때엔 정말이지 훅이라도 갈기고 싶었다. 정작 민제는 취업시즌이 되자마자 헤어졌다. 두 개의 취업 스터디와 토익 모임, 학회까지 하는 통에 시간을 낼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규태에겐 모든 동작을 크게 하는 버릇이 있었다. 스텝과 스윙과 스냅과 투구는 물론 세레모니까지 크게. 양팔을 뒤로 뻗었다 크게 휘두르는 백스윙은 마치 먹이를 낚아채는 맹금류처럼 보이기도 했다. 정작 실속은 없었음에도 말이다. 삼 년 전 규태가 돌연 유학을 선언했을 때, 그의 옆구리엔 자기계발서 한 권이 끼어있었다. 당시 너도나도 읽던 베스트셀러로, 작가는 잘나가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무일푼으로 미국 유학길에 올라 성공한 자수성가형 인물이었다. 접시닦이부터 웨이터, 청소부, 경비원까지 안 해본 일이 없는 그에게, 규태는 큰 감명을 받은 듯 했다. 나는 규태가 그 책을 끝까지 읽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있었는데, 그건 책이 진행될수록 경비원으로서 평소 친절을 베푼 사원이 알고 보니 기업의 CEO더라 하는 내용으로 흐르기 때문이었다. 만약 규태가 책을 끝까지 읽었더라면 유학을 결정하기보단 조금 더 친절한 사람이 되었을 거였다.
두 번째 프레임에서도 나는 또다시 세 개의 핀을 남겼다. 이번엔 규태까지 스트라이크를 쳐 점수 차가 더욱 크게 벌어졌다. 분명 손목을 힘껏 비틀었는데 볼은 여전히 스트레이트로 나아갔다. 나는 핀들을 세우고 공을 주워 다시 한번 투구했다. 저 쿨하지 못한 새끼. 규태가 혀를 차며 새 맥주 캔을 깠다. 공은 단 하나의 핀도 맞추지 못하고 큰 소리를 내며 펜스에 부딪혔다. 레인이었다면 틀림없이 거터 행이었을 거였다.
이상하다.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소주를 삼켰다. 둘은 나를 놀려대며 즐거워했다. 우스꽝스러운 몸짓으로 나의 스텝과 스윙을 흉내 내고 천치처럼 머리를 긁적였다. 촌스럽게 요즘 누가 스트레이트 볼을 쳐. 규태가 옆에 와 앉더니 내 어깨를 툭 하고 쳤다. 누가 치긴. 민제가 이죽거리며 마찬가지로 내 어깨를 쳤다. 그 바람에 들고 있던 소주가 조금 넘쳐 내 무릎을 적셨다. 너네도 일학년 땐 다 스트레이트였어. 나는 손으로 무릎을 문질러 닦았다. 민제는 그거야 볼링 교본의 첫 장이잖아, 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세게 쳐. 세게 치라니까. 세 번째, 네 번째 프레임이 진행되는 동안 둘은 작정하고 나를 코칭했다. 나는 어깨를 풀었다가 스윙 타이밍에 맞춰 힘을 바짝 주었다. 릴리즈를 할 때엔 손가락이 아닌 손바닥을 이용해 공을 밀어냈다. 가장자리의 핀들이 하나둘씩 쓰러지고 스트라이크의 열쇠를 진 5번 핀, 그러니까 플라스틱 핀 역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머리를 가누지 못하는 듯 빙글거리던 핀은 이내 톡, 하고 캔들 핀과 덕 핀 사이에 기대서고 말았다.
바닥에 납작 엎드려 코트를 살폈다. 어딘가 경사가 져 있다거나 지면이 불균형하다던가.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까지 점수 차가 벌어질 리 없었다. 꼭 세 개의 핀이 남는 것도 어쩐지 이상했다. 나는 괜히 스코어를 기록한 종이를 구겼다. 술이나 마셔. 민제가 내 등을 떠밀었고 나는 못 이기는 척 벤치에 앉아 술병을 받아들었다. 규태는 핸드폰을 들여다보느라 바빴다. 은지냐? 민제가 슬쩍 고개를 들이밀자 규태가 인상을 쓰며 핸드폰을 거뒀다. 다음 주에 은지 생일이라며. 민제가 오징어 다리를 씹으며 물었다. 수업 째고 에버랜드에 갈 거야. 은지랑? 그럼 엄마랑 가겠냐. 규태가 눈을 흘기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좋을 때다. 민제가 낄낄 웃으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언젠가 아버지는 술상 앞에 나를 앉혀놓고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한국에도 볼링 붐이 일던 시절이 있었단다. 스포츠 센터들이 앞다투어 볼링장을 열었던 시절이. 볼링공이나 볼링화가 불티나게 팔리고 유명 볼러의 얼굴이 들어간 브로마이드와 머그컵, 티셔츠가 유행했던. 오죽했으면 볼링이 올림픽에 처음 등장한 때가 서울 올림픽이었을까. 아버지 또한 예외는 아니어서 피혁 공장의 동료들과 자주 볼링장에 갔다고 했다. 거기서 내기도 하고 여자도 꼬셨다. 정확히는 스낵바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어머니를 꼬셨다. 자연스레 볼링장에 출근 도장을 찍는 일이 늘어났고, 어머니에게 잘 보이려 열심히 볼링을 연습한 결과 프로자격을 취득하기도 했다. 이듬해 아버지는 석유 냄새가 진동하던 공장을 그만두고 프로 볼러로 전향했다. 때마침 우후죽순 구단들이 생기던 시절이었으므로 입단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고 했다. 어렵지 않았어요? 쉽지는 않았지만, 어렵지도 않았단다. 왜인지는 나도 모르지……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아버지는 어느 기업에서 주최한 국내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거두었다. 별다른 기술 없이 오직 스트레이트 볼 하나로만 따낸 우승이었다. 아버지는 본인조차 놀란 듯 한동안 레인을 떠나지 못했다. 멍하니 점수판을 바라보고 있던 아버지에게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 마이크가 돌아가고, 트로피를 전달하고, 짧은 소감이 이어졌다. 여러 구도로 사진을 찍던 기자들이 나를 불렀다. 머뭇거리던 나는 어머니의 손에 떠밀리다시피 아버지 옆에 자리를 잡았다. 공을 좀 들어보겠니. 누군가 그렇게 제안했고 아버지는 허리를 숙여 나에게 공을 건넸다. 얼떨떨한 마음으로 손을 내민 나는 그만 무게에 놀라 공을 놓쳐버렸다. 손끝이 얼얼했다. 가벼운 줄 알았어요. 아버지는 힘든 기색 하나 없이 한 손으로 공을 주워 포즈를 취했다. 수십 개의 플래시가 터지며 사방이 하얗게 반짝였다.
아버지는 적당한 양의 관심과 과분할 정도의 상금을 받았다. 당시 제지산업으로 유명했던 스폰서는 몇 년 동안 사용할 수 있을 만큼의 고급 티슈를 부상으로 증정했다. 상금으론 아파트를 샀다. 부모님은 새 이웃들에게 떡 대신 고급 티슈를 돌렸다. 남은 티슈는 새로 생긴 내 방에 쌓아놓고 천천히 소비했다. 나는 그것으로 콧물을 훔치거나 입가를 문지르고 밑을 닦았다. 어쩌면 그 시절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까닭도 다 흰 비둘기처럼 보드라운 티슈 덕인지 모른다.
우리는 마치 스페어를 처리하듯 술병을 비워나갔다. 처음엔 셋이 경쟁하며 술을 빠르게 비워나갔지만 얼마 못 가 속도가 줄었다.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시는 바람에 자꾸만 구역질이 일었다. 나는 계속해서 내 앞의 남은 술을 체크했다. 한 모금 마신 뒤 병을 들어 확인하고 캔을 흔들었다. 규태는 민제가 술을 버리는 걸 봤다며 시비를 걸었다. 둘은 언제나처럼 투닥거렸다. 그럼에도 규태는 민제를 좋아했다. ‘썬더 볼링즈’내에서 자신을 가장 많이 챙겨주는 사람이 민제이기 때문이었다. 민제는 졸업에 필요한 과제나 시험 족보를 넘겨주기도, 은근슬쩍 컨닝을 도와주거나 대리출석을 해주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어학연수에서 돌아온 규태에게 은지를 소개해준 사람도 다름 아닌 민제였다.
삼 년은 있을 거라 말했던 규태는 일 년 만에 돌아왔다. 코리안 바비큐 레스토랑에서 접시만 닦느라 영어는 거의 배우지 못했다고 했다. 남은 건 한인 셰프가 자주 쓰던 쿨하게, 라는 말버릇뿐이었는데 규태는 그 짧은 말조차 영어로 하지 못했다.
나 이제 그만두려고. 민제가 말했다. 뭘? 하고 물으니 볼링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곧 있으면 공채 시즌이거든. 그러냐. 나와 규태는 입을 다물었다. 너넨 이력서 좀 썼냐. 그렇지 뭐. 뜻밖에 규태가 고개를 끄덕이는 바람에 나도 덩달아 거짓말을 해버렸다. 그래도 완전히 거짓은 아닌 게 작년에 써놓은 것이 컴퓨터 어딘가에 있긴 했다. 무엇 하나 추가할 항목이 없어 당장이라도 사용할 수 있는 이력서였다. 게임이나 계속해. 나는 다 마신 맥주 캔을 구겼다. 스터디에 서른한 살짜리 형이 새로 들어왔는데 이력서를 돌려 봤거든. 그런 것도 하냐. 나는 구겨진 맥주 캔을 더욱 작게 구겼다. 아무것도 없는 거야. 인턴도 없어, 봉사활동도 없어. 토익이나 학점도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야. 있는 게 나이밖에 없어. 나이밖에 없어서 해줄 말이 없어. 민제가 맥주 캔에 소주를 부었다. 잠시 적막이 흘렀다. 이런 말이 있지. 입을 뗀 건 나였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민제가 소리 없이 웃었다. 나 또한 민제를 따라 실없이 웃었다. 규태는 웃지 않았다. 제일 중요한 게 숫자니까 그렇지. 구겨진 스코어 종이를 든 채 중얼거렸다. 제일 중요한 게 숫자니까. 잠시 정적이 흘렀다. 나는 손을 털며 일어섰다. 계속합시다, 게임.
좋은 시절은 티슈가 바닥을 보일 즈음 끝이 났다. 몇백 개의 기업이 핀처럼 꽝꽝 쓰러졌다. 대부분의 볼링장이 문을 닫았으며 사람들은 더 이상 볼링을 치지 않았다. 길거리에선 종종 버려진 볼링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세 개의 지공 구멍은 눈과 입처럼 보였다. 동그랗게 눈을 뜨고 입을 아 벌린 채 거리를 굴러다니는 공들. 마치 버려진 자신이 어리둥절하다는 표정으로.
파산한 기업들 중엔 아버지가 속해있던 구단의 스폰서도 있었다. 많은 선수들이 구단을 떠났지만 아버지는 남았다. 아버지에게 남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돈과 명예, 한때의 자부심이나 가능성마저 모두 바닥나 있었다. 그렇다고 커다란 변화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집은 여전한 채로 서서히 낡아갔으며 아버지는 공을 굴렸다. 눈에 띄는 점이라면 고급 티슈 대신 얇고 거친 두루마리 휴지를 사용하게 되었다는 것, 콧잔등과 밑이 자주 따끔거렸다는 것뿐이었다.
구단에선 아버지에 대한 지원을 아꼈다. 코치는 젊은 선수들의 경기를 쫓아다니느라 바빴고, 감독은 스폰서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아버지에게 할당된 경기란 지방에서 열리는 소규모 대회가 전부였다. 아버지는 직접 구형 소나타를 끌고 전국을 돌았다. 조수석엔 낡은 장비들을 싣고서.
드물게 아버지의 경기가 중계되는 날이면 어머니는 티브이를 틀어놓곤 나물을 다듬거나 콩을 솎았다. 느릿느릿 움직이던 손은 아버지의 차례가 되어서도 변함없었다. 일정한 박자로 콩나물 대가리를 따는 엄마 곁에서 나는 아버지의 경기를 지켜보았다. 초등학생이었던 나조차도 느낄 수 있었던 건 티브이 속 아버지는 여타 선수들과 달라도 한참 다르다는 점이었다. 훅이나 커브로 단숨에 핀 사이를 파고드는 선수들과 달리 아버지는 오직 스트레이트만을 고집했다. 많은 스페어를 남겼고,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순위는 언제나 하위권에 머물렀다. 스트레이트처럼, 빠르고도 밋밋한 추락이었다.
볼링 핀은 스무 개가 되었다가 열 개가, 또 서른 개가 되었다. 몇 번이나 눈을 끔벅이며 공을 굴렸다. 규태와 민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규태는 구멍을 찾지 못해 한참이나 공을 쓰다듬었고 민제는 공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크게 자빠졌다. 바닥을 뒹굴며 무릎을 쓰다듬던 민제가 갑자기 눈물을 보였다. 그의 오랜 주사였다. 한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공을 굴리는 모습이 꽤 우스웠다. 공은 훅도, 커브도, 스트레이트도 아닌 이상한 모양으로 구르다가 펜스에 부딪혀 멈추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규태가 킬킬대며 말했다. 기억나냐, 네가 질질 짜니까 김진영이. 손수건. 그래 손수건. 셋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 재수 없는 새끼.
언제였더라, 새벽 내내 김진영과 술을 마신 적이 있었다. 일차 면접에서 떨어진 민제를 위로하고자 만든 자리였는데, 우연히 동아리실에 들른 김진영이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우리는 오래도록 술을 마셨다. 민제가 길고 느리게 푸념을 늘어놓으면 누군가 술잔을 채워주고 고개를 끄덕였다. 민제는 끝내 눈물을 보였다. 몇 번이나 잘못, 이라는 단어를 반복하며 손바닥으로 가슴을 쳤다. 나와 규태는 말없이 술잔만 만지작거렸다. 구태여 말을 보탰다간 해가 뜰 때까지 민제의 푸념이 이어지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때 김진영이 품속에 손을 집어넣었다가 무언가를 쑥 꺼내 민제에게 건넸다. 손수건이었다. 깔끔하게 다려진 와인색 체크 무늬 손수건. 우리는 그것과 김진영을 번갈아 보았다. 이미 풀린 김진영의 눈 아래로 촉촉하게 눈물이 배어있었다. 김진영은 민제에게 손수건을 쥐여준 뒤 입을 열었다. 민제야, 우리 멀리 보자. 프로가 되어 보자.
아버지의 은퇴 경기는 담양에서 치러졌다. 나는 그 경기를 볼링장의 티브이로 시청했다. 그즈음의 나는 자주 자율학습을 빼먹고 볼링장에 갔다. 언제나 하위권에 머무는 성적이었으므로 무얼 해도 시들하기만 했다. 주변을 둘러보면 책상에 코를 박고 문제를 풀거나, 얼굴을 박고 잠을 자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런 아이들을 뒤로 한 채 교문 밖을 나설 때면 가슴 속에서 도르르, 낮은 진동이 울렸다. 마치 손을 떠나버린 공처럼, 더는 손을 쓸 수 없는 무언가가 빠르게 굴러가는 듯한 떨림이었다.
볼링장은 한산했다. 손님이라곤 나뿐이었고 카운터의 남자는 무료한 표정으로 턱을 괴고 앉아 신문을 읽고 있었다. 볼링도 치고 시간도 때울 겸 해서 티브이와 가장 가까운 안쪽 레인에 자리를 잡았다. 티브이에선 볼링경기가 중계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아버지의 경기를 보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오래된 티브이는 색감이 흐리고 소리도 나오지 않아서, 마치 화성의 볼링 중계를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까지 들게 했다. 화면 속 누군가가 스탠딩 스팟에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익숙한 얼굴이다 싶었는데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한참이나 레인 너머의 핀을 노려보았다. 노란 공을 든 채, 메마른 얼굴을 하고서. 관객들은 무명의 아버지에게 별 관심이 없는 듯했다. 시큰둥한 얼굴로 경기를 관람하거나 저들끼리 이야기를 주고받는 데에 여념이 없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게, 아버지의 볼링은 형편없었다. 릴리즈의 타이밍이 부정확했고 어깨가 자꾸만 공을 따랐다. 이따금 스텝이 꼬이기도 했다. 스윙은 마치 공을 떨쳐내려 안간힘을 쓰는 것처럼 보였다. 공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듯 쉽게 중심을 잃기도 했다.
일은 마지막 프레임에서 벌어졌다. 내가 막 리턴 덱에서 공을 집어 든 때였다. 투구를 마친 아버지가 별안간 레인을 등지고 걷기 시작했다. 볼이 핀에 맞기도 전에, 정확히는 투구를 하자마자 벌어진 일이었다. 드문드문 신문 너머로 티브이를 보던 사내도 어, 소리를 냈다. 나는 들고 있는 공의 무게도 잊은 채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아버지는 그대로 직진해 철문을 연 뒤 경기장을 나가버렸다. 짧은 찰나의 일이었다. 관객들은 황당한 얼굴로 아버지가 사라진 자리를 건너다볼 뿐이었다. 카메라는 그런 관객들을 지나쳐 아버지가 닫고 사라진 문을 비추었다. 도르르. 어디선가 공이 구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호시절의 아버지. 트로피를 오른손에 쥔 채 환하게 웃고 있는 아버지. 날렵하고, 주름이 없고, 머리칼이 새까만 아버지. 장식장 속 우승 사진과 트로피는 박제처럼 생동감이 없었다. 아버지는 지금까지도 종종 그것들을 꺼내 정성스레 닦는다. 마른 천을 검지에 감아 문지른 뒤 먼지는 없는지, 손자국이 남지 않았는지 꼼꼼하게 살폈다. 아버지는 그런 방식으로나마 그 시절을 회상하는 듯했다. 본인께서 말이 없으니 그 시절이 단순한 젊음의 나날들인지 아니면 인생에 있어 유일했던 우승의 순간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좋은 생각이 났다. 우리는 펜스를 빠져나가 학생회관 앞 김진영의 현수막을 찾았다. 그리고는 그것을 해체해 돌돌 말아 품에 안은 뒤 전력 질주하여 코트로 돌아왔다. 깜깜한 캠퍼스 내에 비명 같은 웃음소리가 울렸다. 우리는 숨을 고른 뒤 현수막을 곧게 펴 바닥에 깔았다. 그리고는 그것을 레인 삼아 밟고, 짓이기고, 걷어차거나 공을 굴리고 침을 뱉은 뒤 담배 자국을 새기며 놀았다. 잠깐만. 민제가 자신의 배낭에서 매직 펜 하나를 꺼내 들며 말했다. 우리가 프로로 만들어 줘야지. 민제는 외국물을 먹은 규태에게 펜을 쥐여주었다. 규태는 현수막 위에 영자로 ‘프로페셔널(Frofessional)’이라 적었다. F가 아니라 P. 철자를 틀리긴 했지만 지적하지 않았다. 우리는 현수막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나는 사진 속 현수막의 문구를 천천히 발음했다. ‘프로페셔널 아마추어’ 마음에 들었다. 우리는 그것을 펜스에 걸었다. 내일이면 김진영에게 발견될 터였다.
지난겨울, 방학을 맞아 일주일을 집에서 머물렀던 적이 있었다.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나왔다가 거실에 앉아있는 아버지를 발견했다. 아버지는 흠집이 잔뜩 난 공과 칠이 벗겨진 트로피를 닦고 있었다. 나는 그런 아버지가 낯설었다. 너무 감상에 빠져있다거나 그 모습이 생경해서가 아니었다. 볼링공의 크고 작은 흠집들을 손가락으로 더듬어 확인하는 아버지의 시선은 허공을 향해 있었다. 무(無)에 가까운 표정의 얼굴.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있으니 다른 세대라기보단 뭐랄까, 다른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은 다른 세계라거나.
볼링을 속행했다. 내 차례야. 나는 몸을 일으켜 공을 주워들었다. 그리고는 핀들과 마주했다. 잠시 그것들을 노려보다 자세를 잡았다. 무릎을 구부리고, 허리를 기울였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스텝이 관성처럼 이어지고 슬라이딩. 볼은 이번에도 역시 스트레이트였다. 빠르게 전진한 공은 또다시 세 개의 핀을 남겼다. 덕 핀, 캔들 핀, 플라스틱 핀이었다. 다시 공을 쥐었다. 플라스틱 핀을 노려보던 나는 이내 온 힘을 다해 투구했다. 공은 일직선으로 나아갔다. 도르르. 공이 굴러가고 있었다.
사방이 펜스로 막힌 테니스장에 도착했다. 입구는 자물쇠로 단단히 잠겨 있었다. 우리는 입구를 우회한 뒤 모서리 근처에 모여 앉았다. 규태가 길게 자란 잡초를 가르자 사람 한 명이 겨우 통과할 수 있을 만큼의 작은 구멍이 드러났다. 셋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매고 있던 배낭을 구멍 속으로 밀어 넘긴 뒤 몸을 구겨 넣기 시작했다. 규태와 민제는 다리부터 집어넣었고, 나는 낮은 포복으로 구멍을 통과했다.
코트 좀 같이 쓰면 덧나냐, 김진영 이 쿨하지 못한 새끼. 규태가 손을 털며 김진영을 씹었다. 김진영은 테니스 동아리 ‘텐’의 회장이었다. ‘텐’과 우리 ‘썬더 볼링즈’는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동아리실을 쓰는 이웃으로 이런저런 일을 핑계 삼아 왕래가 잦은 편이었다. 덕분에 김진영과도 왕왕 마주치곤 했는데, 저번 주엔 우연히 학생회관 앞에서 김진영을 만났다. 커다란 현수막을 혼자서 끙끙대며 설치하고 있길래 가벼운 마음으로 도와주었는데, 다 설치하고 보니 이런 문구가 쓰여 있었다. ‘영문학과 김진영 아마추어 테니스컵 우승’ 잠시 그것을 바라보던 나는 축하한다며 손을 내밀었다. 김진영은 고맙다고, 뒤풀이가 있을 예정이니 꼭 놀러오라고 대답했다.
내가 서기를 볼 차례였다. 나는 배낭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제28회 썬더 볼링즈배 정규 경기’라고 써넣었다. 각자의 배낭에서 볼링공과 핀, 소주병과 맥주 캔, 주전부리를 꺼냈다. 가위바위보로 순서를 정한 뒤 핀을 세트했다. 밑이 뚱뚱한 아메리칸 덕 핀 두 개, 스탠더드 텐 핀 여섯 개, 양초처럼 기다란 캔들 핀 하나와 유아용 완구 플라스틱 핀 하나였다. 볼링 동아리랍시고 여러 종류의 핀들을 구비한 것이 몇 년 전의 일이었는데, 그사이 벌써 몇 개가 분실되거나 파손되었다. 지난달엔 만취한 규태가 핀을 거꾸로 집어 들고 동아리실의 집기를 부쉈다. 마침 동아리방에 들른 나와 민제가 뜯어말렸지만 이미 두 개의 핀과 한 장의 거울, 세 개의 소주병이 박살 난 뒤였다.
민제는 첫 프레임부터 스트라이크를 쳤다. 힘이 실린 훅볼이었다. 꽈앙 하는 소리와 함께 핀들이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다. 나는 점수판 위에 스트라이크의 X를 그었다. 민제가 자신이 쓰러뜨린 핀들을 주워 모아 다시 세웠다. 볼을 이어받은 규태는 두 개의 핀을 남긴 뒤 커브 볼로 스페어 처리했다. 나는 스트레이트로 한가운데를 노렸지만 세 개의 핀을 남기고 말았다. 덕 핀, 캔들 핀, 플라스틱 핀이었다. 우리는 구석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첫 번째 프레임에 관한 평을 나누었다. 원래는 아마추어로써 실력을 기르자는 취지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대개는 말싸움으로 번지거나 (서로에게) 상처만 남겼다.
볼링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단다. 아버지는 티브이 속 선수들을 보며 그렇게 말씀하셨다. 저 사람은 스텝이 급한 걸 보니 성격도 그렇겠구나. 저렇게 스냅이 엉성한 인간들은 우유부단하단다. 손목을 조여야 할지, 손가락을 조여야 할지 늘 고민하기 때문이지. 사실은 둘 다 중요한 데도 말이야. 나는 물었다. 그러면 아버지는요?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그저 다리 사이에 품은 볼링공을 자식인 듯 소중히 닦고 닦을 뿐이었다. 대학에 들어온 뒤로 종종 그 말이 떠올랐다. 민제와 규태의 볼링을 보면 꽤 일리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가령 훅볼을 즐기는 민제의 경우. 일직선으로 전진하다가 핀에 가까워질수록 급한 커브를 만드는 훅볼처럼, 민제의 말은 언제나 결정적 순간에 뒤집혔다. 술을 사겠다며 불러내놓곤 뒤집어씌우질 않나, 숙소의 예약금까지 지불한 여행을 하루 앞두고 번복하질 않나. 저번에는 갑자기 여자를 소개시켜 주겠다며 나를 귀찮게 했다. 스터디에서 만난 애야. 민제는 손가락으로 핸드폰 화면을 휙휙 넘기며 사진을 보여주었다. 어떠냐? 눈이 크고 이마가 하얬다. 괜찮네, 나는 시큰둥한 척 전화번호를 넘겨받았다. 그 애와는 얼마 못 가 싱겁게 끝났다. 만날 타이밍이나 장소 따위를 고르다가 어영부영 연락이 끊어졌다. 그리고 며칠 뒤 민제가 그 애와 사귀고 있다 나에게 실토했을 때엔 정말이지 훅이라도 갈기고 싶었다. 정작 민제는 취업시즌이 되자마자 헤어졌다. 두 개의 취업 스터디와 토익 모임, 학회까지 하는 통에 시간을 낼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규태에겐 모든 동작을 크게 하는 버릇이 있었다. 스텝과 스윙과 스냅과 투구는 물론 세레모니까지 크게. 양팔을 뒤로 뻗었다 크게 휘두르는 백스윙은 마치 먹이를 낚아채는 맹금류처럼 보이기도 했다. 정작 실속은 없었음에도 말이다. 삼 년 전 규태가 돌연 유학을 선언했을 때, 그의 옆구리엔 자기계발서 한 권이 끼어있었다. 당시 너도나도 읽던 베스트셀러로, 작가는 잘나가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무일푼으로 미국 유학길에 올라 성공한 자수성가형 인물이었다. 접시닦이부터 웨이터, 청소부, 경비원까지 안 해본 일이 없는 그에게, 규태는 큰 감명을 받은 듯 했다. 나는 규태가 그 책을 끝까지 읽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있었는데, 그건 책이 진행될수록 경비원으로서 평소 친절을 베푼 사원이 알고 보니 기업의 CEO더라 하는 내용으로 흐르기 때문이었다. 만약 규태가 책을 끝까지 읽었더라면 유학을 결정하기보단 조금 더 친절한 사람이 되었을 거였다.
두 번째 프레임에서도 나는 또다시 세 개의 핀을 남겼다. 이번엔 규태까지 스트라이크를 쳐 점수 차가 더욱 크게 벌어졌다. 분명 손목을 힘껏 비틀었는데 볼은 여전히 스트레이트로 나아갔다. 나는 핀들을 세우고 공을 주워 다시 한번 투구했다. 저 쿨하지 못한 새끼. 규태가 혀를 차며 새 맥주 캔을 깠다. 공은 단 하나의 핀도 맞추지 못하고 큰 소리를 내며 펜스에 부딪혔다. 레인이었다면 틀림없이 거터 행이었을 거였다.
이상하다.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소주를 삼켰다. 둘은 나를 놀려대며 즐거워했다. 우스꽝스러운 몸짓으로 나의 스텝과 스윙을 흉내 내고 천치처럼 머리를 긁적였다. 촌스럽게 요즘 누가 스트레이트 볼을 쳐. 규태가 옆에 와 앉더니 내 어깨를 툭 하고 쳤다. 누가 치긴. 민제가 이죽거리며 마찬가지로 내 어깨를 쳤다. 그 바람에 들고 있던 소주가 조금 넘쳐 내 무릎을 적셨다. 너네도 일학년 땐 다 스트레이트였어. 나는 손으로 무릎을 문질러 닦았다. 민제는 그거야 볼링 교본의 첫 장이잖아, 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세게 쳐. 세게 치라니까. 세 번째, 네 번째 프레임이 진행되는 동안 둘은 작정하고 나를 코칭했다. 나는 어깨를 풀었다가 스윙 타이밍에 맞춰 힘을 바짝 주었다. 릴리즈를 할 때엔 손가락이 아닌 손바닥을 이용해 공을 밀어냈다. 가장자리의 핀들이 하나둘씩 쓰러지고 스트라이크의 열쇠를 진 5번 핀, 그러니까 플라스틱 핀 역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머리를 가누지 못하는 듯 빙글거리던 핀은 이내 톡, 하고 캔들 핀과 덕 핀 사이에 기대서고 말았다.
바닥에 납작 엎드려 코트를 살폈다. 어딘가 경사가 져 있다거나 지면이 불균형하다던가.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까지 점수 차가 벌어질 리 없었다. 꼭 세 개의 핀이 남는 것도 어쩐지 이상했다. 나는 괜히 스코어를 기록한 종이를 구겼다. 술이나 마셔. 민제가 내 등을 떠밀었고 나는 못 이기는 척 벤치에 앉아 술병을 받아들었다. 규태는 핸드폰을 들여다보느라 바빴다. 은지냐? 민제가 슬쩍 고개를 들이밀자 규태가 인상을 쓰며 핸드폰을 거뒀다. 다음 주에 은지 생일이라며. 민제가 오징어 다리를 씹으며 물었다. 수업 째고 에버랜드에 갈 거야. 은지랑? 그럼 엄마랑 가겠냐. 규태가 눈을 흘기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좋을 때다. 민제가 낄낄 웃으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언젠가 아버지는 술상 앞에 나를 앉혀놓고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한국에도 볼링 붐이 일던 시절이 있었단다. 스포츠 센터들이 앞다투어 볼링장을 열었던 시절이. 볼링공이나 볼링화가 불티나게 팔리고 유명 볼러의 얼굴이 들어간 브로마이드와 머그컵, 티셔츠가 유행했던. 오죽했으면 볼링이 올림픽에 처음 등장한 때가 서울 올림픽이었을까. 아버지 또한 예외는 아니어서 피혁 공장의 동료들과 자주 볼링장에 갔다고 했다. 거기서 내기도 하고 여자도 꼬셨다. 정확히는 스낵바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어머니를 꼬셨다. 자연스레 볼링장에 출근 도장을 찍는 일이 늘어났고, 어머니에게 잘 보이려 열심히 볼링을 연습한 결과 프로자격을 취득하기도 했다. 이듬해 아버지는 석유 냄새가 진동하던 공장을 그만두고 프로 볼러로 전향했다. 때마침 우후죽순 구단들이 생기던 시절이었으므로 입단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고 했다. 어렵지 않았어요? 쉽지는 않았지만, 어렵지도 않았단다. 왜인지는 나도 모르지……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아버지는 어느 기업에서 주최한 국내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거두었다. 별다른 기술 없이 오직 스트레이트 볼 하나로만 따낸 우승이었다. 아버지는 본인조차 놀란 듯 한동안 레인을 떠나지 못했다. 멍하니 점수판을 바라보고 있던 아버지에게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 마이크가 돌아가고, 트로피를 전달하고, 짧은 소감이 이어졌다. 여러 구도로 사진을 찍던 기자들이 나를 불렀다. 머뭇거리던 나는 어머니의 손에 떠밀리다시피 아버지 옆에 자리를 잡았다. 공을 좀 들어보겠니. 누군가 그렇게 제안했고 아버지는 허리를 숙여 나에게 공을 건넸다. 얼떨떨한 마음으로 손을 내민 나는 그만 무게에 놀라 공을 놓쳐버렸다. 손끝이 얼얼했다. 가벼운 줄 알았어요. 아버지는 힘든 기색 하나 없이 한 손으로 공을 주워 포즈를 취했다. 수십 개의 플래시가 터지며 사방이 하얗게 반짝였다.
아버지는 적당한 양의 관심과 과분할 정도의 상금을 받았다. 당시 제지산업으로 유명했던 스폰서는 몇 년 동안 사용할 수 있을 만큼의 고급 티슈를 부상으로 증정했다. 상금으론 아파트를 샀다. 부모님은 새 이웃들에게 떡 대신 고급 티슈를 돌렸다. 남은 티슈는 새로 생긴 내 방에 쌓아놓고 천천히 소비했다. 나는 그것으로 콧물을 훔치거나 입가를 문지르고 밑을 닦았다. 어쩌면 그 시절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까닭도 다 흰 비둘기처럼 보드라운 티슈 덕인지 모른다.
우리는 마치 스페어를 처리하듯 술병을 비워나갔다. 처음엔 셋이 경쟁하며 술을 빠르게 비워나갔지만 얼마 못 가 속도가 줄었다.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시는 바람에 자꾸만 구역질이 일었다. 나는 계속해서 내 앞의 남은 술을 체크했다. 한 모금 마신 뒤 병을 들어 확인하고 캔을 흔들었다. 규태는 민제가 술을 버리는 걸 봤다며 시비를 걸었다. 둘은 언제나처럼 투닥거렸다. 그럼에도 규태는 민제를 좋아했다. ‘썬더 볼링즈’내에서 자신을 가장 많이 챙겨주는 사람이 민제이기 때문이었다. 민제는 졸업에 필요한 과제나 시험 족보를 넘겨주기도, 은근슬쩍 컨닝을 도와주거나 대리출석을 해주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어학연수에서 돌아온 규태에게 은지를 소개해준 사람도 다름 아닌 민제였다.
삼 년은 있을 거라 말했던 규태는 일 년 만에 돌아왔다. 코리안 바비큐 레스토랑에서 접시만 닦느라 영어는 거의 배우지 못했다고 했다. 남은 건 한인 셰프가 자주 쓰던 쿨하게, 라는 말버릇뿐이었는데 규태는 그 짧은 말조차 영어로 하지 못했다.
나 이제 그만두려고. 민제가 말했다. 뭘? 하고 물으니 볼링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곧 있으면 공채 시즌이거든. 그러냐. 나와 규태는 입을 다물었다. 너넨 이력서 좀 썼냐. 그렇지 뭐. 뜻밖에 규태가 고개를 끄덕이는 바람에 나도 덩달아 거짓말을 해버렸다. 그래도 완전히 거짓은 아닌 게 작년에 써놓은 것이 컴퓨터 어딘가에 있긴 했다. 무엇 하나 추가할 항목이 없어 당장이라도 사용할 수 있는 이력서였다. 게임이나 계속해. 나는 다 마신 맥주 캔을 구겼다. 스터디에 서른한 살짜리 형이 새로 들어왔는데 이력서를 돌려 봤거든. 그런 것도 하냐. 나는 구겨진 맥주 캔을 더욱 작게 구겼다. 아무것도 없는 거야. 인턴도 없어, 봉사활동도 없어. 토익이나 학점도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야. 있는 게 나이밖에 없어. 나이밖에 없어서 해줄 말이 없어. 민제가 맥주 캔에 소주를 부었다. 잠시 적막이 흘렀다. 이런 말이 있지. 입을 뗀 건 나였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민제가 소리 없이 웃었다. 나 또한 민제를 따라 실없이 웃었다. 규태는 웃지 않았다. 제일 중요한 게 숫자니까 그렇지. 구겨진 스코어 종이를 든 채 중얼거렸다. 제일 중요한 게 숫자니까. 잠시 정적이 흘렀다. 나는 손을 털며 일어섰다. 계속합시다, 게임.
좋은 시절은 티슈가 바닥을 보일 즈음 끝이 났다. 몇백 개의 기업이 핀처럼 꽝꽝 쓰러졌다. 대부분의 볼링장이 문을 닫았으며 사람들은 더 이상 볼링을 치지 않았다. 길거리에선 종종 버려진 볼링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세 개의 지공 구멍은 눈과 입처럼 보였다. 동그랗게 눈을 뜨고 입을 아 벌린 채 거리를 굴러다니는 공들. 마치 버려진 자신이 어리둥절하다는 표정으로.
파산한 기업들 중엔 아버지가 속해있던 구단의 스폰서도 있었다. 많은 선수들이 구단을 떠났지만 아버지는 남았다. 아버지에게 남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돈과 명예, 한때의 자부심이나 가능성마저 모두 바닥나 있었다. 그렇다고 커다란 변화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집은 여전한 채로 서서히 낡아갔으며 아버지는 공을 굴렸다. 눈에 띄는 점이라면 고급 티슈 대신 얇고 거친 두루마리 휴지를 사용하게 되었다는 것, 콧잔등과 밑이 자주 따끔거렸다는 것뿐이었다.
구단에선 아버지에 대한 지원을 아꼈다. 코치는 젊은 선수들의 경기를 쫓아다니느라 바빴고, 감독은 스폰서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아버지에게 할당된 경기란 지방에서 열리는 소규모 대회가 전부였다. 아버지는 직접 구형 소나타를 끌고 전국을 돌았다. 조수석엔 낡은 장비들을 싣고서.
드물게 아버지의 경기가 중계되는 날이면 어머니는 티브이를 틀어놓곤 나물을 다듬거나 콩을 솎았다. 느릿느릿 움직이던 손은 아버지의 차례가 되어서도 변함없었다. 일정한 박자로 콩나물 대가리를 따는 엄마 곁에서 나는 아버지의 경기를 지켜보았다. 초등학생이었던 나조차도 느낄 수 있었던 건 티브이 속 아버지는 여타 선수들과 달라도 한참 다르다는 점이었다. 훅이나 커브로 단숨에 핀 사이를 파고드는 선수들과 달리 아버지는 오직 스트레이트만을 고집했다. 많은 스페어를 남겼고,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순위는 언제나 하위권에 머물렀다. 스트레이트처럼, 빠르고도 밋밋한 추락이었다.
볼링 핀은 스무 개가 되었다가 열 개가, 또 서른 개가 되었다. 몇 번이나 눈을 끔벅이며 공을 굴렸다. 규태와 민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규태는 구멍을 찾지 못해 한참이나 공을 쓰다듬었고 민제는 공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크게 자빠졌다. 바닥을 뒹굴며 무릎을 쓰다듬던 민제가 갑자기 눈물을 보였다. 그의 오랜 주사였다. 한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공을 굴리는 모습이 꽤 우스웠다. 공은 훅도, 커브도, 스트레이트도 아닌 이상한 모양으로 구르다가 펜스에 부딪혀 멈추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규태가 킬킬대며 말했다. 기억나냐, 네가 질질 짜니까 김진영이. 손수건. 그래 손수건. 셋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 재수 없는 새끼.
언제였더라, 새벽 내내 김진영과 술을 마신 적이 있었다. 일차 면접에서 떨어진 민제를 위로하고자 만든 자리였는데, 우연히 동아리실에 들른 김진영이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우리는 오래도록 술을 마셨다. 민제가 길고 느리게 푸념을 늘어놓으면 누군가 술잔을 채워주고 고개를 끄덕였다. 민제는 끝내 눈물을 보였다. 몇 번이나 잘못, 이라는 단어를 반복하며 손바닥으로 가슴을 쳤다. 나와 규태는 말없이 술잔만 만지작거렸다. 구태여 말을 보탰다간 해가 뜰 때까지 민제의 푸념이 이어지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때 김진영이 품속에 손을 집어넣었다가 무언가를 쑥 꺼내 민제에게 건넸다. 손수건이었다. 깔끔하게 다려진 와인색 체크 무늬 손수건. 우리는 그것과 김진영을 번갈아 보았다. 이미 풀린 김진영의 눈 아래로 촉촉하게 눈물이 배어있었다. 김진영은 민제에게 손수건을 쥐여준 뒤 입을 열었다. 민제야, 우리 멀리 보자. 프로가 되어 보자.
아버지의 은퇴 경기는 담양에서 치러졌다. 나는 그 경기를 볼링장의 티브이로 시청했다. 그즈음의 나는 자주 자율학습을 빼먹고 볼링장에 갔다. 언제나 하위권에 머무는 성적이었으므로 무얼 해도 시들하기만 했다. 주변을 둘러보면 책상에 코를 박고 문제를 풀거나, 얼굴을 박고 잠을 자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런 아이들을 뒤로 한 채 교문 밖을 나설 때면 가슴 속에서 도르르, 낮은 진동이 울렸다. 마치 손을 떠나버린 공처럼, 더는 손을 쓸 수 없는 무언가가 빠르게 굴러가는 듯한 떨림이었다.
볼링장은 한산했다. 손님이라곤 나뿐이었고 카운터의 남자는 무료한 표정으로 턱을 괴고 앉아 신문을 읽고 있었다. 볼링도 치고 시간도 때울 겸 해서 티브이와 가장 가까운 안쪽 레인에 자리를 잡았다. 티브이에선 볼링경기가 중계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아버지의 경기를 보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오래된 티브이는 색감이 흐리고 소리도 나오지 않아서, 마치 화성의 볼링 중계를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까지 들게 했다. 화면 속 누군가가 스탠딩 스팟에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익숙한 얼굴이다 싶었는데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한참이나 레인 너머의 핀을 노려보았다. 노란 공을 든 채, 메마른 얼굴을 하고서. 관객들은 무명의 아버지에게 별 관심이 없는 듯했다. 시큰둥한 얼굴로 경기를 관람하거나 저들끼리 이야기를 주고받는 데에 여념이 없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게, 아버지의 볼링은 형편없었다. 릴리즈의 타이밍이 부정확했고 어깨가 자꾸만 공을 따랐다. 이따금 스텝이 꼬이기도 했다. 스윙은 마치 공을 떨쳐내려 안간힘을 쓰는 것처럼 보였다. 공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듯 쉽게 중심을 잃기도 했다.
일은 마지막 프레임에서 벌어졌다. 내가 막 리턴 덱에서 공을 집어 든 때였다. 투구를 마친 아버지가 별안간 레인을 등지고 걷기 시작했다. 볼이 핀에 맞기도 전에, 정확히는 투구를 하자마자 벌어진 일이었다. 드문드문 신문 너머로 티브이를 보던 사내도 어, 소리를 냈다. 나는 들고 있는 공의 무게도 잊은 채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아버지는 그대로 직진해 철문을 연 뒤 경기장을 나가버렸다. 짧은 찰나의 일이었다. 관객들은 황당한 얼굴로 아버지가 사라진 자리를 건너다볼 뿐이었다. 카메라는 그런 관객들을 지나쳐 아버지가 닫고 사라진 문을 비추었다. 도르르. 어디선가 공이 구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호시절의 아버지. 트로피를 오른손에 쥔 채 환하게 웃고 있는 아버지. 날렵하고, 주름이 없고, 머리칼이 새까만 아버지. 장식장 속 우승 사진과 트로피는 박제처럼 생동감이 없었다. 아버지는 지금까지도 종종 그것들을 꺼내 정성스레 닦는다. 마른 천을 검지에 감아 문지른 뒤 먼지는 없는지, 손자국이 남지 않았는지 꼼꼼하게 살폈다. 아버지는 그런 방식으로나마 그 시절을 회상하는 듯했다. 본인께서 말이 없으니 그 시절이 단순한 젊음의 나날들인지 아니면 인생에 있어 유일했던 우승의 순간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좋은 생각이 났다. 우리는 펜스를 빠져나가 학생회관 앞 김진영의 현수막을 찾았다. 그리고는 그것을 해체해 돌돌 말아 품에 안은 뒤 전력 질주하여 코트로 돌아왔다. 깜깜한 캠퍼스 내에 비명 같은 웃음소리가 울렸다. 우리는 숨을 고른 뒤 현수막을 곧게 펴 바닥에 깔았다. 그리고는 그것을 레인 삼아 밟고, 짓이기고, 걷어차거나 공을 굴리고 침을 뱉은 뒤 담배 자국을 새기며 놀았다. 잠깐만. 민제가 자신의 배낭에서 매직 펜 하나를 꺼내 들며 말했다. 우리가 프로로 만들어 줘야지. 민제는 외국물을 먹은 규태에게 펜을 쥐여주었다. 규태는 현수막 위에 영자로 ‘프로페셔널(Frofessional)’이라 적었다. F가 아니라 P. 철자를 틀리긴 했지만 지적하지 않았다. 우리는 현수막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나는 사진 속 현수막의 문구를 천천히 발음했다. ‘프로페셔널 아마추어’ 마음에 들었다. 우리는 그것을 펜스에 걸었다. 내일이면 김진영에게 발견될 터였다.
지난겨울, 방학을 맞아 일주일을 집에서 머물렀던 적이 있었다.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나왔다가 거실에 앉아있는 아버지를 발견했다. 아버지는 흠집이 잔뜩 난 공과 칠이 벗겨진 트로피를 닦고 있었다. 나는 그런 아버지가 낯설었다. 너무 감상에 빠져있다거나 그 모습이 생경해서가 아니었다. 볼링공의 크고 작은 흠집들을 손가락으로 더듬어 확인하는 아버지의 시선은 허공을 향해 있었다. 무(無)에 가까운 표정의 얼굴.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있으니 다른 세대라기보단 뭐랄까, 다른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은 다른 세계라거나.
볼링을 속행했다. 내 차례야. 나는 몸을 일으켜 공을 주워들었다. 그리고는 핀들과 마주했다. 잠시 그것들을 노려보다 자세를 잡았다. 무릎을 구부리고, 허리를 기울였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스텝이 관성처럼 이어지고 슬라이딩. 볼은 이번에도 역시 스트레이트였다. 빠르게 전진한 공은 또다시 세 개의 핀을 남겼다. 덕 핀, 캔들 핀, 플라스틱 핀이었다. 다시 공을 쥐었다. 플라스틱 핀을 노려보던 나는 이내 온 힘을 다해 투구했다. 공은 일직선으로 나아갔다. 도르르. 공이 굴러가고 있었다.
한신아
하루에도 몇 번씩 스카이스캐너를 연다. 프로모션 티켓은 프리미엄 회원에게만 보이는 거라 믿는다.
2018/06/26
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