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언제 한번 뵈러 가자.”
   할머니가 요양원에 입원한 날, 명주가 말했다. 나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우리 둘 다 쉬는 날 시간을 맞춰보자고 덧붙이면서. 그러나 이후 십 개월 동안 우리는 요양원에 가지 못했다. 명주의 암이 재발했기 때문이다.
   명주가 서른아홉 살에 유방암 진단을 받았을 때, 할머니는 그녀에게 유기농 브로콜리와 파프리카를 한 상자씩 사줬다. 수술 직후에는 병문안을 하러 가는 내게 현미 떡 두 상자를 들려 보냈다. 그때 명주가 6인실에 있어서 다행이었다. 나는 손이 큰 할머니에 대해 농담을 하며 병실 환자들에게 떡을 한 움큼씩 나눠줬다. 그때 옆 침대를 쓰던 아주머니가 내게 물었다.
   “둘이 자매에요?”
   나는 대답했다. “아뇨.”
   “병원 가까운데 사나 봐요. 자주 들리고.”
   “아뇨. 지방 살아요.”
   “아우, 그럼 소꿉친구인가 보네. 식구끼리 서로 다 챙기고.”
   “아뇨. 저희는 서른 넘어 친해졌어요. 제가 왕따라서 그때까지 친구가 한 명도 없었거든요.”
   그러자 아주머니는 머쓱한 표정으로 현미 떡을 입에 집어넣었다. 사실 마지막 대답은 살짝 거짓말이었다.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낸 사이가 아니면 병문안도 자주 못 오나 싶어 약간 호들갑을 떨어본 것이었다. 명주는 그런 나를 보며 웃었다.
   “나 웃기지 좀 마. 실밥 터질 것 같잖아.”
   우리가 친구가 된 건 스물아홉 살 때였다. 그즈음 슬슬 하락세를 타고 있던 책 대여점에서 만났다. 취향이 워낙 비슷해서 경쟁하듯 만화책을 빌려보다 운명처럼 마주쳤고, 그러다 서로의 속내를 털어놓으며 다시 없을 소울 메이트로 발전했던 건 아니었고, 그냥 비슷한 시간에 책방에서 자주 마주치는 바람에 그렇게 됐다. 학원 강사였던 나는 그때 오후 3시 즈음 책방에 책을 반납하고 새 책을 빌리곤 했는데, 그 시간은 카페 직원이었던 명주에게도 출근 시간이었다. 먼저 말을 건 사람은 나였다. 몇 달 전부터 나와 같은 시간에 책방에 드나들고 있는 이 여자가 매우 궁금했던 것이다. 그래서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호기심 많고 넉살 좋지만, 인간관계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대범한 성격 덕분이었다. 물론 명주는 다르게 표현했다. 아니. 너는 그냥 쓸데없이 인간미가 넘치는 거야. 어쨌든, 우리가 친해진 건 내 성격 덕분이다.
   그날, 나는 만화책을 들여다보는 명주에게 다가가 물었다.
   “그 책 재밌어요?”
   명주는 먼저 말을 거는 유형의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말수가 적은 건 아니었다. 명주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그녀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약간 쓸데없이 열정이 넘쳐서 상대의 의사와 상관없이 길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만화책은 책방에서 가장 인기가 없는, 그러나 명주는 열 번도 넘게 빌려본 작품이었다. 명주가 대답했다.
   “진짜 재밌어요. 이전 작품보다 완성도는 떨어지지만, 감정적으로는 훨씬 깊어졌어요.”
   이후 명주는 혼자 삼십 분 정도 떠들었다. 그녀의 말이 인상적이어서 나도 그 책을 빌렸다. 그러나 나는 이후 20년 동안 그 책의 2권을 읽지 않았다. 우리의 취향은 너무도 달랐고, 오랜 세월 동안 전혀 섞이지 않았다. 영화나 드라마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장국영이나 임청하 같은 홍콩 배우들이 출현한 무협 사극 장르를 좋아했고, 명주는 <더 킬링>이나 <크리미널 마인드> 같은 미국 수사물을 좋아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상하게 죽이 잘 맞아서 잘 어울려 다녔다. 출근하기 전 한 시간 동안 카페에서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주말에 만나 맛집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희한하다. 음식 취향도 정말 달랐기 때문이다. 나는 에스프레소 중독에 면 요리와 튀김, 단 과자에 사족을 못 썼지만 명주는 한식과 드립 커피만 선호했다. 그래도 우리는 정말 잘 지냈고, 서로의 집에도 자주 놀러 갔다. 그래서 할머니가 명주를 알게 되었던 것이다. 할머니는 닮은 점이라고는 전혀 없는 우리를 보며 종종 물었다.
   “너희는 대체 왜 친하냐?”
   명주가 첫 번째 수술을 받던 여섯 시간 동안, 나는 그 이유를 생각해봤다. 시간 때문인 것 같았다. 명주가 나와 비슷한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하는 사람이어서 그렇다고 말이다. 나와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 비슷한 시간에 잠드는 사람. 언제든 만나서 수다를 떨 수 있는 같은 동네 친구. 무려 20년 동안 그랬다. 누군가와 함께 하루를 보내는 그 느낌은 매우 익숙했고, 소중했다. 잃고 싶지 않았다.
   이번 주 금요일, 우리는 드디어 시간을 맞췄다. 할머니를 보러 가기로 했다.

   요양원은 언덕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올 때마다 조금씩 더 높아지는 것 같았다. 처음에 나는 이 요양원에 할머니를 모시는 걸 반대했다. 다 허물어져 가는 폐가처럼 을씨년스러운 외관 때문이었다. 공포영화에 등장하는 정신 병동처럼 생겼던 것이다. 게다가 주위에는 편의점 하나 없었다. 그럴싸한 상점에 가려면 언덕 아래까지 한참 내려가야 했다. 그래서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도착하기 전에 다 준비해 와야 했다. 하지만 이런 불만들은 금세 사라졌다. 막상 들어가 보니 꽤 깔끔했고, 관리가 잘 되는 시설이었다. 물론 완전히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이모는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나도 다 마음에 안 들어. 어떻게 그게 가능하겠니.”
   그래도 계속 오가다 보면 익숙해져서 할머니 집처럼 느껴질 거라고 이모는 농담했다. 다른 식구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아직 그렇게 되지 않았다. 나는 할머니와 평생 함께 살았는데, 어떻게 할머니 집이 따로 있다고 생각할 수가 있겠는가. 할머니 집이 우리 집이었다. 나는 올 때마다 고민했다. 그러면 여기를 우리 집으로 상상하면 좀 편해지려나. 하지만 그렇게 믿기에는 요양원에서 소독약 냄새가 너무 많이 났다. 우리 집에서는 항상 은은한 민트향이 풍겼던 것이다. 물론 요즘은 집에서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지만. 그래서 가끔 어느 밤이면, 할머니와 내가 함께 살던 그 집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건물 상태가 별로 안 좋네.”
   요양원을 보자마자 명주가 중얼거렸다. 나는 들어가면 괜찮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약간 기분이 상했다. 명주가 꼭 우리 집을 욕한 것 같았던 것이다. 게다가 할머니가 계신 곳인데, 그런 건 좀 모른 척해줄 수 없냐는 생각도 들었고. 그러나 정말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아침부터 명주에게 살짝 화가 나 있었다. 그녀가 약속 장소에 조금 늦게 도착했던 것이다. 물론 그게 진짜 원인은 아니었다. 나는 명주가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차 속에서 20분 내내 앉아 있는 모습에 짜증이 났었다. 처음에는 걱정했다. 그녀의 두 번째 수술은 첫 번째 수술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녀는 심적으로도 이전보다 더 힘들어했다. 첫 번째 수술 때만 해도 지금보다 훨씬 젊었고, 완치하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그러나 수술하지 못하고 남겨둔 암은 용케 사라지지 않았고, 4년 동안의 항암 끝에 결국 두 번째 수술을 해야만 했다. 명주는 더 이상 완치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나는 명주의 눈치를 보게 됐다. 원래도 명주는 자신의 기분을 있는 그래도 드러내는 편이었다. 좋아하는 만화책에 대해 이야기 할 때와 비슷했다. 화를 낼 때도 쓸데없이 열정이 넘친다고 해야 할까. 명주가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성격 덕분에 상대는 명주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아프기 시작한 이후로 그런 일은 더욱 잦았다. 당연했다.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이 좋은 날보다 훨씬 많았으니까. 그리고 그럴 때면 더욱 눈치가 보였다. 몸이 좋지 않은 건지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명주의 병에 대해서도 점차 익숙해졌고, 나 역시 기분이 상하는 날이 많아졌다. 요양원으로 달려오던 삼십 분 내내, 나는 명주의 컨디션을 걱정하는 대신 아침에 서두르는 바람에 놓고 온 포도 두 송이를 계속 떠올렸다. 꼭 가져오려던 건 아니었다. 그저께 퇴근하며 사 들고 온 포도가 우연히 맛이 좋아 따로 챙겨둔 것뿐이었으니까. 할머니는 포도를 좋아했다. 명주가 그렇게 늦을 줄 알았다면 천천히 준비해서 모두 챙겨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명주가 요양원 건물에 대해 한마디 했을 때, 나는 여전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바로 만나지 못했다. 일광욕 시간이라고 했다. 우리는 안내를 받아 3층 로비로 갔다. 햇살이 들어오는 통유리창 앞에 노인들이 일렬로 앉아 있었다. 운동이 부족한 노인들에게 햇볕을 쬐게 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 했다. 노인들이 창문 앞에 나란히 줄 서 있는 모습이 약간 우스꽝스러웠다. 명주가 말했다.
   “버섯 말리는 것 같네.”
   나는 웃음을 참았다. 어쩐지 오늘은 죽이 잘 맞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점잖게 대답했다.
   “왜, 보기 좋네. 햇볕이 면역력에 좋다잖아.”
   명주가 어이없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 저편에서 간병인이 할머니를 데리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덕분에 나는 명주의 시선을 모르는 척 할 수 있었다. 햇살 때문인지 할머니의 몸이 약간 따뜻하게 덥혀져 있었다. 휠체어에 앉아 있긴 했지만 할머니는 여전히 키가 크고 덩치가 좋았다. 다만 살이 조금 빠진 듯했다. 약간 걱정이 됐다. 알츠하이머를 제외하면 할머니는 아픈 곳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간병인에게 우리가 있을 테니 얼마간 밖에 다녀오셔도 좋다고 말했다. 그리고 휠체어를 넘겨받았다. 가벼웠다.
   할머니는 명주와 나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 눈빛에는 우리를 알아본다거나 그래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거나, 그런 느낌이 거의 없었다. 그렇다고 멍해 보이지도 않았다. 분명 무언가를 보고 있긴 했다. 뭐랄까, 할머니는 자신과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어떤 것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건 기억일까 아니면 상상일까. 아니면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일까. 그 순간, 볕 잘 드는 마당에 늘어놓은 표고버섯 더미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명주가 할머니를 불렀다.
   “할머니, 잘 계셨어요? 명주에요.”
   그때, 할머니가 명주의 가방을 낚아챘다. 가방 속을 뒤적거리더니, 다음에는 내 가방을 가져갔다. 할머니는 내 가방에서 크라운 산도 과자 두 개를 찾아냈다. 그녀는 그걸 곧장 뜯어 입에 몰아넣었다. 평소 할머니에게서는 전혀 볼 수 없는 행동이었다. 할머니는 군것질을 즐기는 편이 아니었고, 과자는 더더욱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할머니는 크라운 산도를 다 먹고 우리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는데, 나는 조금 전과 달리 할머니의 뜻을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할머니는 아주 확고한 표정으로 내게 뜻을 전하고 있었다. 먹을 걸 더 달라고.
   나는 병실 사람들에게 나눠줄 요량으로 동네 베이커리에서 사 온 화과자를 꺼냈다. 할머니는 과자를 거의 껍질째 입에 집어넣다시피 했다. 과자 조각이 할머니의 가슴께로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나는 할머니가 처음으로 나를 알아보지 못했던 날과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밥이 모자라서 그래요.”
   친숙한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옆 침대 환자의 딸이었다. 지난번에 왔을 때 인사를 나눈 적이 있었다. 명주가 무슨 소리냐고 물었다. 여자가 대답했다.
   “덩치가 좋으시잖아. 여기서 주는 밥은 턱도 없이 모자라지. 매일 밥 더 달라고 하셔.”
   그러더니 덧붙였다. 다른 환자들 가족들이 문병을 오면, 혹시 먹을 거라도 나눠줄까 싶어 침대 근처를 계속 배회한다고. 나는 약간 화가 났지만 어른의 품위를 지키려 노력했다. 그래서 실실 눈웃음을 치며 여자에게 말했다.
   “그러게요. 밥 좀 더 달라고 해야겠어요.”
   “아유.” 아주머니가 우리를 향해 손을 내저었다. “그럼 또 소화 안 된다고 난리 피우실걸?”
   명주가 한숨을 쉬었다. 불쾌한 것 같았다. 그건 당연한 건데, 나는 또 기분이 상했다. 나는 애써서 이렇게 분노를 참고 있는데, 함께 좀 견뎌줄 수는 없나. 그러자 나도 어쩔 수 없이 기분이 확 가라앉았다. 내 얼굴에도 짜증이 한껏 드러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리의 표정이 여자에게 경고가 되었으면 했는데, 그녀는 나와 명주를 쳐다보지 않았다. 화과자를 요리조리 살피며 퍽퍽하다는 말만 두 번 반복했다. 그리고는 덧붙였다.
   “아유, 이거 너무 건강식이네. 단맛이 하나도 없다.”
   명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가? 나는 물었지만 명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휘적휘적 걸어가더니 이내 눈앞에서 사라져버렸다. 여자의 말을 듣고 있기가 피곤했던 모양이다. 그 덕에 나는 할머니 곁에 혼자 남겨진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할머니는 계속 화과자를 더 달라는 소리만 했다. 더 줘. 더 줘. 더 달라고. 아침부터 명주에게 쌓인 감정들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자기 몸 챙기는 건 어쩔 수 없다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혼자 사라져버려도 되는 건가. 아침에 두고 온 포도 두 송이가 자꾸만 생각났다. 그걸 챙겨왔다면 할머니 간식으로 적당했을 텐데. 과자 부스러기 대신, 할머니가 좋아하는 건강하고 맛있는 포도를 먹여드릴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무슨 소용인가. 지금 할머니는 계속 과자만 먹고 있었다. 그리고 여자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책을 읽고 있었다. 뭘 보나 했더니 성경이었다.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안 되겠어. 수동공격이라도 하고 가야겠다. 할머니도 다 이해하겠지. 나는 이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최대한 낮고 진지한 목소리로 이모를 불렀다.
   “이모.”
   “응?”
   “왜 말 안 했어.”
   “뭐?”
   “여기 할머니 밥이 적다며.”
   “수미 너 요양원 갔니?”
   “여기 할머니 밥이 적대잖아. 옆자리 분들 음식 뺏어 먹는다잖아.”
   “얘가 왜 이래. 누가 그래?”
   “아니, 지금 여기 왔더니 우리 할머니가 옆자리 분들 음식을 막 가져간다잖아.”
   여자가 슬쩍 고개를 돌려 나를 보는 게 느껴졌다. 나는 이모에게 더 쏘아붙였다.
   “왜 말 안 했어. 그러면 내가 먹을 걸 더 가져왔을 거 아니야. 옆자리 분들 음식도 좀 드리고. 이게 무슨 민폐야. 할머니 배고프다잖아. 할머니가 왜 구걸하게 만들어.”
   구걸은 좀 과했나. 어쩔 수 없었다. 이미 흘러나온 말이니까. 이모는 이해하겠지. 그리고 덕분에 여자가 내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그래요. 그러니까 먹는 거 가지고 노인 양반 뭐라고 좀 하지 맙시다. 그 순간, 이모가 소리를 질렀다.
   “야!”
   “응?”
   “너 내가 지난번부터 할머니 보러 가면 먹을 거 챙겨 가라고 했어 안 했어. 몇 번 말했어.”
   나는 그런 말을 들은 기억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이모가 화를 내니까 슬쩍 겁이 났다.
   “내가 그날 식구들 다 있는 데서 말했잖아. 또 지 기분에 취해서 남들이 하는 말 듣는 둥 마는 둥 했겠지.”
   “내가 언제 그랬는데!”
   “너 항상 그러잖아! 뽕 맞은 년처럼!”
   그리고 이모는 전화를 확 끊어버렸다. 나는 아직 통화가 안 끝난 척 전화기를 붙잡고 서 있었다. 하지만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뭔가 망쳤다는 기분만 밀려왔다. 하지만 태연하게 한숨을 쉬며,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척했다. 이 나이를 먹고도 이런 짓을 하다니. 그러자 다시 명주에게 짜증이 났다. 애초 명주가 일찍 나왔으면 포도도 챙겨왔을 것이고, 여자한테 쓸데없는 말을 들을 일도 없었을 것이고, 이모에게 전화해서 생떼를 부릴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할머니에게 알츠하이머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을 무렵, 친척들은 할머니가 평생 나를 돌보느라 고생해서 그렇게 됐다고 지나가듯 말한 적이 있었다. 그날을 생각하자 갑자기 온몸의 호르몬이 폭발하는 기분이 들었고 울컥, 목이 멨다. 나는 할머니의 손을 잡아끌었다.
   “집에 가자 할머니.”
   나는 할머니를 휠체어에 앉혔다. 다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데 있어서 뭐해. 밥도 많이 안 주는 곳에서. 내가 할머니 돌봐줄게. 일은 그만두면 되지. 지금 내 행동이 과하다는 생각은 들었다. 이럴 필요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손을 멈출 수 없었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을 도저히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나는 할머니의 옷가지를 대충 집어 가방에 쑤셔 넣었다. 눈물이 나올 듯 말 듯 코끝이 아렸다. 울음을 참으려 심호흡을 하고,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러다 옆자리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여자는 모르는 척 슬쩍 눈을 감더니 성호를 그었다.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나는 휠체어를 밀며 밖으로 나왔다.
   “어디가?”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명주였다. 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명주의 발걸음이 나를 향해 빨라지는 게 느껴졌다. 바스락거리는 소리도 함께 들렸다. 얼핏 살펴보니, 그녀의 손에 무거워 보이는 검은 봉지가 들려 있었다. 명주가 물었다.
   “집에 가게?”
   “응.”
   “할머니도?”
   “응.”
   명주는 더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나직한 목소리로 덧붙였을 뿐이다.
   “그럼 포도 먹고 가자.”
   그제야 나는 그녀의 양손에 들린 검은 봉지 속에 포도가 가득 들어 있다는 걸 알았다. 언덕 아래까지 내려가서 이걸 사 온 모양이었다. 그녀는 먹을 만한 마땅한 자리를 찾아보겠다며 앞서 걸었다. 나는 할머니의 휠체어를 밀며 뒤따라 걸었다. 우리는 노인들이 햇볕을 쬐던 3층 로비로 갔다. 아직 햇살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우리는 창가 가까운 곳에 자리를 펴고 앉았다. 명주가 포도를 씻어왔다. 포도알 사이로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포도의 단내가 진하게 풍겼다. 명주는 포도 껍질을 까서 할머니의 입에 한 알씩 넣어 주었다. 할머니는 천천히 포도를 씹었다. 나는 가만히 앉아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사실 내가 왕따였다는 말은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었다. 나는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내 기분에 취해 있는 순간이 많아서 사람들을 자주 거북하게 했다. 모든 면에 있어서 나는 과했다. 할머니는 나 때문에 고생했다.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다. 나이를 먹으며 조금씩 자제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나는 나였다. 나는 여전히 누군가에게 그의 의사와 상관없이 과하게 다가섰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적당한 거리를 가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으며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내가 누군가와 결코 가까이 지낼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에 기대하지 않는 법을 익혔다는 것뿐이다. 명주를 만났을 때 그랬다. 우리는 스물아홉 살에 만났고, 가까워진 지 일주일 만에 싸웠다. 나는 이후 그녀를 다시 볼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모두가 그랬듯 그녀도 내게 거리를 두고, 끝내는 싫어하게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게 전화를 걸었고, 왜 기분이 나빴는지 차분하게 설명했다. 그리고는 말했다.
   “너도 날 봐주고 있다는 거 알아.”
   다음 날, 나는 할머니에게 집에 친구를 초대해도 되냐고 물었다. 지금 할머니의 표정은 그날과 비슷했다. 어느 곳도 바라보고 있지 않지만, 분명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할머니의 이 표정은 매우 익숙했다. 평생 봐왔던 얼굴이었다. 어쩌면 잠시 후, 할머니는 내 이름을 부를지 몰랐다. 명주를 얼마든지 데려와도 좋다고 대답했던 바로 그날처럼. 하지만 아직은 그때가 아닌지, 할머니는 포도 껍질을 까는 명주의 손끝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두 사람의 어깨에 머물러 있던 햇빛이 서서히 사라졌다.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 밀려왔다. 이번에는 과한 것 같지 않았다.

강화길

평생 아침에 못 일어났다. 나는 절대 아침형 인간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요즘은 아침에 잘만 일어난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11시에 잠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동안에는 새벽까지 깨어 있었다. 아주 단순한 원리를 이제야 깨달았다.

2018/09/25
1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