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리스트
5회 이상하게 아름다운 것
#1. 당신이 쓴 것
문득 이런 장면이 떠오른다. 영화 『아가씨』의 주인공 타마코는 연인 숙희를 바라보며 속으로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나의 숙희, 나의 타마코.’ 타마코의 말은 마치 이렇게 들린다. 차라리 죽는 게 나을 법한 끔찍한 나의 삶을 파괴하러 온 나의 구원자이자 나의 모든 것. 서로의 이름으로 불릴 만큼 언제 어디서든 나를 대신할, 내가 영원히 사랑하는 당신이라는 존재. 그와 함께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될 지라도, 내가 지닌 모든 것을 포기할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당신이란 존재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일, 내 삶에 거대한 균열을 안겨다준 당신이라는 재앙을 사랑하는 일.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낯설고 위험한 당신이라는 재앙이 나에게 다가오는 그 순간은, 이상하게 아름답다. 내 삶을 망치러 온 존재로 인해 발생하는, 이상하게 아름다운 사태에 대해.
천운영의 소설에서는 이와 같이 이상하게 아름다운 사태들이 나타난다. 그녀의 등단작 「바늘」(200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을 떠올려본다. 내 몸을 가장 강력한 무기들로 가득 채워달라는 남자의 가슴에, 새끼손가락만한 바늘을 그려주는 여자 문신사 이야기. “그는 이제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무기를 가슴에 품고 있다. 얇으면서 가장 강하고 부드러운 바늘.”(「바늘」 중에서) 이후 바늘과도 같은 그녀의 언어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무기가 되어 자신만의 미학을 이루어나간다. 왜 그 순간은 이상하게 아름다울까. 왜 작가가 다가가고자 하는 그 지점은 이상하게 아름다울까. 천운영의 언어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처이자 고통스러운 장식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는 건, 대상을 향한 간절한 욕망 때문이다.
① 나는 인간의 연약한 육체에 수를 놓겠다.
육체와 그 위에 새겨진 글귀 사이에 공존하는 어떤 것. 그것은 아름다운 상처, 혹은 고통스러운 장식이다.1)
② “진화와 소멸이 함께 살고 있”는 할머니의 가슴.2)
③ 그것은 푸른 문신이거나 먼 나라에서 행해졌다는 살인자의 낙인처럼 거북하게 느껴졌지. 도발적이면서도 낯선, 네 가슴 위의 푸른 꽃.3)
어떤 대상을 아름답게 여긴다는 건, 그것을 간절히 욕망하고 있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4)
나는 아름다운 너라는 “도발적이면서도 낯선” 미지의 대상을 간절히 욕망한다. 그 대상이 영원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소유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욕망하는 일. 진화와 소멸이 함께 살고 있는 인간의 육체와, 그 위에 새겨진 글귀 사이에 공존하는 그 어떤 것을 언어로 영원히 지속하는 일. 바로 이것이 아름다움을 소유하는 천운영만의 방식이다. 그녀의 네번째 소설집 『그녀의 눈물 사용법』(창비, 2018)에서도 작가가 구현하는 아름다움의 방식은 여지없이 드러난다.
그는 조명 아래에서 노파의 몸이 살아나는 것을 본다. 그것은 그가 여태 상상하고 단정지은 추악하고 안쓰러운 늙음이 아니었다. 늘어진 젖가슴은 사막의 사구들을 닮았다. 노파의 몸은 한없이 부드러운 강물처럼, 풀과 나무와 바위까지 품어안는 대지처럼, 나뭇잎을 살랑이게 하는 시원한 바람처럼, 살아 있는 몸이었다. 소멸과 생성이 공존하는 자연 그 자체. 연한 색깔의 젖꼭지는 이제 막 이차성징을 겪고 있는 소녀의 미숙한 젖꼭지와 같았다. 조명 아래에서 노파의 몸은 부끄러워하고 시샘하고 달아오르는 소녀의 몸이었다. 소멸과 생성이 공존하는 원숙한 자연이자 소녀인 노파의 몸.5)
소년 J의 등장처럼, 자신의 삶에 균열을 안겨다준 재앙과도 같은 그 존재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다. 아내의 외도 상대가 자신의 누드 사진관에서 일한지 얼마 안 된, 열여덟 살의 소년 J가 아닐까 의심하는 나. 젊고 아름다운 아내에 비해 늙고 볼품없는 자신을 비교하며 그는, 젊음은 아름답고 늙음은 추하다고 여긴다. 그는 누드사진을 찍는 젊은 모델들을 비롯해, 아내와 J가 지닌 모든 젊음의 열기를 시기하고 동경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자신 몰래 아내의 누드를 찍고 있을 거라 예상하던 것과는 달리, 할머니의 누드 사진을 찍고 있는 J를 발견한다. 소년 J가 생각하는 가장 아름다운 육체는 소멸과 생성이 공존하는 노인의 몸이다. 가장 아름답고 특별한 그들의 몸을 카메라에 담는 J를 보는 나. 그 순간 젊음의 열기를 시기하고 동경하던 나의 불안함은 어느덧 평온을 되찾는다.
작가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은 가져서는 안 될 헛된 욕망이나 쾌락과도 같은 무책임한 자기애가 아니다. 젊음의 열기를 시기하고 동경하는 나의 모습을 확인하는 것처럼, 자신이 그 무엇을 욕망하는 대상이 되었다는 것을 실감하는 일. 더 나아가 그것이 계기가 되어 이전과는 다른 삶을 향해 나아가는 강력한 존재의 의지로 작용하는 일. 이전과는 다른 삶의 의지를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움의 가치를 이룬다. 그 이후의 삶이 죽음을 앞두고 있을지라도 말이다. 이는 존재의 현존을 뒤흔들 만큼의 큰 사건이다. 차라리 죽는 게 나을 법한, 혹은 살아 있는 것조차 잊고 지낼 만큼 불행하고 무력한 존재가 당신이라는 사건을 만나는 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특별한 누드사진을 찍는 소년 J. 고모가 사랑에 빠진 파키스탄 남자.(「알리의 줄넘기」) 뱀의 눈동자를 지닌 신비로운 여인.(「내가 데려다줄게」) 봄을 잉태하고 봄을 낳는 당신(「노래하는 꽃마차」)들이라는 존재처럼.
#2. 내가 쓴 것
소설을 쓴다는 것은 어쩌면 세상에 진 빚을 갚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외면한 세상, 내가 저지른 실수, 알게 모르게 저지른 세상에 대한 교만과 악행들. 그것에 대한 고백성사이며, 자기반성이며, 죄사함이다. 세상이 진 빚이 없으니 자유로운 소설이 나온다는 것은 그야말로 기만이고 자기합리화다. 어찌 이 세계에 무결할 수가 있겠는가. 하물며 내가 먹고 싸고 자는 동안에도 물과 공기와 나무들은 죽어가는데, 내가 사랑을 노래하는 동안 세상에는 유괴와 질서와 범죄 들이 난무하는데. 한낱 글쓰기 재능으로 세상에 제멋대로 군림하면서 죄의식도 갖지 않는다면, 그렇게 나온 소설이 과연 순수한 것일까?6)
당신을 처음 본 건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2004년의 어느 낭독회 자리에서였다. 난 당시 겨우 스무 살이 된, 문학을 지망한다고 말하는 것조차 쑥스러운 대학 1학년생이었다. 당신은 낭독회에 참석한 독자들과 함께 최근 출간한 소설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것이 아마 당신의 두번째 소설집 『명랑』(문학과지성사, 2004)이었을 것이다. 그날 당신이 말한 이야기들이 희미하게 떠오른다. 당신의 작품에 나오는 육식에 대한 이야기. (실제 당신은 새벽에 일어나 고기를 구워 먹을 정도로 육식을 즐긴다고 했다.) 실제 지인의 타투샵에서 몇 개월 동안 일하고 쓴 첫 등단작 「바늘」에 대한 일화. 그리고 무참하고 외로웠던 당신의 습작 시절에 대해. 그렇게 한 시간 남짓의 낭독회가 끝나고 사인을 받는 자리에서였다. 그날의 나는, 내 이름과 함께 자신의 이름을 적어주는 당신의 반짝이는 눈을 제일 가까이에서 보게 된다. 그날부터 난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글을 쓰는 사람은 저런 눈빛을 지녔을 거라고. 그리고 언젠가는 꼭 당신에 대한 이야기를 쓰리라고 다짐했다.
수줍게 고백하자면, 나의 첫 필사는 당신의 작품들이었다. 무참하고 외로운 습작 시절, 당신의 작품들을 또박또박 옮겨 쓰면서 난 내가 앞으로 쓸 나의 글이 아름다운 문장들로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랐다. 당신이 지닌 바늘만큼이나 나의 문장들도 세상을 향한 가장 강하고 부드러운 무기가 되길 바랐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혼자 도서관 구석에 온종일 처박혀 당신의 작품들을 하염없이 옮겨 썼던 필사의 시간들이, 나에게는 일종의 구도(求道)였다.
자, 그렇다면 당신을 향한 독자로서의 나의 즐거운 사심은 여기까지. 난 종종 울고 싶을 때. 일상마저 이어나가기 힘들 만큼 극도의 불안과 우울에 잠식당할 때. 현재의 삶이 차라리 죽는 게 나을 법할 정도로 끔찍하고 무력하게 느껴질 때. 내 안에 감춰두었던, 그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될 죄의식이 깨어나 나를 공격할 때. 당신의 말처럼 나도 모르게 저지른 세상에 대한 교만이나 악행, 기만이나 자기합리화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 나는 마치 어둡고 좁은 동굴 속을 들어가듯, 책상 아래 웅크리고 앉아 당신이 쓴 글들을 읽는다. 내 안에 여전히 살고 있는 울지 않는 또다른 나에 대한 이야기를.
그애를 보내야겠다니. 졸곧 내 옆에 머물던 그애를,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주며 훈훈한 입김을 불어넣던 그애를. 제 손으로 보내놓고 삼십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엄마 뱃속에서 칠개월, 세상에 나와 하루를 살다 죽은. 비난과 변명, 억울함과 어쩔 도리 없음, 금기와 은폐, 당한 자와 저지른 자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삼십년 동안 1.1kg의 미숙아 혹은 일곱 살 이갈이 무렵으로 남아 있는 그, 아이. 그 아이의 이름은 그냥 그애였다.7)
당신이 바라본 인간의 눈물은 이기적이다. “자기 연민, 비난과 변명, 억울함과 어쩔 도리 없음”과 같이 “자기 삶을 위협하는 데 대한 두려움과 분노”(「그녀의 눈물 사용법」, 57쪽)에서 인간의 눈물은 시작한다. 나는 당신이 쓴 것들을 읽으며 생각한다. 나의 눈물을 비롯해 내가 느끼는 극도의 불안과 우울, 무력감이 나의 삶을 위협하는 데 대한 두려움과 분노, 자기연민과 같은 철저히 이기적인 ‘나’라는 인간의 마음에서 비롯하는 것이 아닌가에 대해.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으면, 한동안 나를 괴롭히던 극도의 불안과 우울, 두려움과 분노가 차츰 사라지는 신기한 현상을 경험한다. 쏟아질 것 같은 눈물도 차츰 가라앉는다. 마치 “어떤 물기에도 풀어지지 않고 질퍽거리지 않고 무너지지 않”(「그녀의 눈물 사용법」, 57쪽)는 견고한 내가 되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나는 바란다. 나의 눈물이 나만의 안위(安慰)를 위해서가 아닌 타인을 위한 것이 되었으면 한다. 나와 무관한 자들의 아픔을 마치 나의 일인 것처럼 온전히 슬퍼하며 흘리는 눈물이기를 바란다. 더 나아가 내 글이 나와 무관한 자들의 마음 속에 남아, 어떤 물기에도 풀어지지 않고 질퍽거리지 않고 무너지지 않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특별한 무기가 되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바라는 게 있다면, 나도 당신처럼 아름다워지고 싶다. 새침하면서도 대담한, 도발적이면서도 낯선, 사랑스럽고 관능적인, 고요하게 반짝이는 문장들을 지니고 싶다. 그러고보니 나의 등단작이 되어준 글의 제목은 “이 시대 뷰티풀 엑스의 탄생기”였다. 비관주의로 무장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에서 아름다운 변종이 탄생하길 바랐다. 필멸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라면, 그들이 괴물이 아닌 아름다운 인간으로 멸종하길 바랐다. 나보다 오랜 시간을 살아갈 세대들의 삶을 위하여. ‘옳지 않은 것’을 ‘옳지 않다’고 말하는 일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세상을 위하여. 어느 날 예고 없이 찾아올 삶의 재앙들을 두려움 없이 맞이할 이기적 유전자를 지닌 아름답고 특별한 ‘인간’이라는 존재가 되는 일. 나의 ‘뷰티풀 엑스’라는 변종은 이렇게 탄생했다.
그들이 지닌 아름다움은 분명 가치가 있다. 이제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은 그들이 지닌 아름다움을 더욱 아름답고 특별한 방식으로 증명해야 할 것이다. 나는 바란다. 내가 앞으로 쓸 글이 그들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고통이나 추함까지도 감당할 수 있는 넉넉한 위장을 지니기를. 그러기 위해서는 난 어떤 위험도 감수할 것이다.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나의 숙희, 나의 타마코. 타마코가 연인 숙희를 바라보며 했던 말처럼 나도 당신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말하며 이 글을 마치고 싶다. 안녕. 내 삶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들이여. 내가 사랑하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고 특별하고 위험하고 낯선 당신들이 더욱 아름다워지기를.
전영규
그들이 지닌 아름다움의 가치를 증명하는 자. 혹은 인간이 인간답게 멸종할 수 있도록 ‘인간다운 인간’이라는 아름다운 변종들을 만들고 싶은 자.
2019/06/25
19호
- 1
- 천운영, 「바늘」, 『바늘』, 창비, 2001, 27쪽.
- 2
- 천운영, 「명랑」, 『명랑』, 문학과지성사, 2004, 15쪽.
- 3
- 천운영, 「세 번째 유방」, 앞의 책, 133쪽.
- 4
- 조르주 바타유, 조한경 옮김, 『에로티즘』, 민음사, 2009, 163쪽.
- 5
- 천운영, 「소년 J의 말끔한 허벅지」, 『그녀의 눈물 사용법 1』(큰글자 도서), 창비, 2018, 39~40쪽.
- 6
- 「내가 쓴 것」, 『그녀의 눈물 사용법 2』(큰글자 도서), 창비, 2018, 191쪽.
- 7
- 「그녀의 눈물 사용법」, 『그녀의 눈물 사용법 1』(큰글자 도서), 창비, 2018, 45쪽.